한 여름 밤의 꿈 신혼생활
한 여름 밤의 꿈 신혼생활
  • 정윤진
    정윤진
  • 승인 2019.01.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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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당일에 있었던 일이다. 솔직히 난 결혼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첫날밤만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혈기왕성한 23살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 5년 동안 혼전순결을 지켰었다. 크리스천인 탓도 있었지만 성관계는 육체적인 즐거움뿐 아니라 생명과도 연결되는 것이라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 시대에 혼전 순결을 말하면 조선시대에 사냐고, 그런 걸 지키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난 지켰다.

아침에 일어나 룰루랄라 휘파람을 부르며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여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마침 오늘 생리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전쟁이 났다고 해도 이 정도의 충격은 아닐 것 같았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인데 결혼식 날, 아니 첫날밤을 보내야 할 날에 생리를 하다니.

기뻐해야 할 결혼식이었지만 우울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아내와 해운대에 있는 한 호텔에 들어갔다. 5년간 사귀면서 같은 방, 같은 침대에 처음 누웠다. 결혼 전 얼마나 많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었는데 써먹지도 못하고 너무 슬펐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어쩔 수 없이 첫날밤은 그렇게 갔다.

다음날 차를 몰고 수원에 있는 신혼집으로 가는데 정말 조심히 운전을 했다. 혹시 교통사고가 나 첫날밤도 못 치르고 죽을까봐 무서웠던 것이다. 철저한 방어운전으로 앞차와 멀찍이 떨어져 가서 평소 5시간이면 충분히 가던 거리를 8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결혼 첫날부터 우리의 결혼생활은 심상치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결혼 전 아내는 매일 아침을 차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이렇게 상상했다.

곱게 화장한 아내가 아침을 차려놓고, “여보~! 일어나서 밥 먹어요.” 라고 말하며 나를 깨운다. 나는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난다. 아내가 내 볼에 뽀뽀를 해준다. 식탁으로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섹시하다. 짧은 핫팬츠에 흰 셔츠를 입고 머리는 뒤로 묶어 목이 매끈하고 뒤태가 예술이다.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식탁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있는지 훑어본다. 밥을 맛있게 먹고 씻고 나오면 빳빳하게 다려진 와이셔츠가 옷걸이에 걸려있다.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는 거실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아내에게 다가가 백 허그를 한다. 그리고 입맞춤을 하고 휘파람을 부르며 출근을 한다. 결혼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다.

유리가 깨지듯 내 상상도 산사조각이 났다. 결혼하고 딱 3일 아내가 해주는 아침을 먹었다. 4일째부터는 출근할 때까지 이불속에서 자고 있었다. 풀 메이크업은 고사하고 헝클어진 머리에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모습이 영락없는 군대 동기 같았다. 아니, 자는 모습은 군인보다 더 남성스러워 보였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결혼 전 매일 아침을 차려주겠다는 약속은 무심하게도 3일 만에 끝이 났다.

이뿐만 아니라 결혼하고 부딪히는 부분이 계속 생겼다. 한 공간에 같이 있다 보니 상대방의 거슬리는 행동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신혼 때 아내가 휴지통을 비우지 않는 이상한 습관? 때문에 크게 부부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 내겐 큰 충격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맞벌이를 하면서 비슷한 시간에 출근을 했다. 아내는 아침마다 화장대 앞에 앉아서 미친 듯이 화장을 하고 있었다. 화장하면서 유독 티슈와 면봉을 많이 썼는데 티슈는 화장을 닦을 때, 면봉은 아이라이너를 그리다 실패할 때 썼다. 휴지통이 차면 먼저 발견한 사람이 비우거나 발로 눌러 놓는 것이 상식이지만 아내는 달랐다. 휴지통이 가득 찬 것을 보고도 티슈와 면봉을 계속 버렸다. 산봉우리에 국기를 꽂듯 쓰레기로 탑을 쌓기 시작했다. 급기야 경사가 생겨 휴지통 밖으로 티슈와 면봉이 흘러 떨어졌다. 이런 광경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했다.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이길래 쓰레기를 이렇게 마구잡이로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빠서 그랬겠지... 못 봤겠지... 라고 생각하고 대신 쓰레기를 주워 휴지통을 비웠다. 이러길 다섯 번 드디어 내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그래서 쓰레기가 넘쳐나도 휴지통을 비우지 않고 지켜봤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휴지, 면봉, 각종 쓰레기로 탑을 쌓기 시작했다. 휴지통 주위에 면봉 수십 개와 화장 묻은 휴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1주일이 지났지만 치우지 않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나 : 자기야. 쓰레기가 이렇게 넘치면 좀 치워야 하지 않나?

아내 : 자기가 치우면 되잖아.

나 : 내가 쓴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치우는데?

아내 : 니는 쓰레기 하나도 안 버렸나? 휴지통 비우는 사람 따로 있나?

나 : 내가 버린 쓰레기는 밑에 조금 밖에 없거든. 니는 쓰레기가 이렇게 널브러져 있는데도 치울 생각이 안 드나?

아내 : 어. 안 드는데? 결혼 전에는 아빠가 다 치워줬거든.

나 : 그건 결혼 전이고. 난 니 아빠가 아니다. 당장 치워라

아내 : 싫은데?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치우면 돼지. 난 하나도 안 거슬리는데?

나 : 쓰레기 버리는 사람, 줍는 사람 따로 있나?

아내 : 니가 좀 해주면 안 되나? 쓰레기통 비우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가? 그거 몇 번 버려준 걸로 되게 생색내네. 그럴 거면 처음부터 말하지 왜 이제 와서 그러는데?

나 : (어이 없어하며) 몇 번 내가 치워주면 다음번에는 니가 치울 줄 알았다. 니는 반성할 기미가 안 보인다.

아내 : 어. 내 원래 이런 사람이다. 몰랐나? 몰랐으면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네. 휴지통 잘 버리는 여자랑 결혼하지 왜 내랑 결혼했는데?

나 : 와~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노!

피 터지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달콤한 신혼생활은 6개월을 넘지 못했다. 어느 샌가 서로의 존재는 자기 자신만큼이나 익숙해져 있었고 함께하는 시간은 더 이상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애끓던 그리움은 사라진지 오래고 이젠 그저 무미건조한 일상과 해결해야 할 일들만 잔뜩 쌓여 있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혼자’라는 고독은 점점 간절히 바라는 바가 되어갔고 사랑이란 단어로 수식하기엔, 이미 많이 바래져버린 시선만이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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