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작지만 소소한 행복 누리셨나요?
지난해 작지만 소소한 행복 누리셨나요?
  • 김봉건
    김봉건
  • 승인 2019.01.1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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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은 일종의 생물이다.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진화해나간다. 자신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둬두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에 따라 스스로를 담금질하여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참 기특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그중에서도 신조어는 진화 과정 중 일종의 돌연변이처럼 환경에 최적화되어 새로이 탄생한 어휘다.

신조어는 특정 시대의 트렌드를 가늠하게 하는 일종의 잣대다. 당대의 사회 분위기와 변화의 흐름 따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까닭이다. 덕분에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의식 구조의 흐름도 헤아려볼 수 있게 한다. 해마다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신조어를 좀 더 꼼꼼히 살펴볼 경우 우리 사회의 멀지 않은 미래 모습까지 어슴푸레 읽을 수 있다.

지난 한 해에도 다른 해처럼 신조어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나름의 사회적 함의가 담긴 것들만을 별도로 추려 살펴보고자 한다. 많은 종류의 신조어들이 출몰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쓰임새가 많았던 녀석 3개가량만 꼽아보겠다. 축약형이나 글자 형상을 이용한 언어 유희적 형태의 유행어는 말 그대로 유행어일 뿐이니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없기에 이들은 차치하고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신조어들만 별도로 추려 해석해보도록 하자.

여러분들은 무슨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내겐 ‘소확행’과 ‘워라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 어휘들이 실제로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신조어인지의 여부를 관련 통계 결과를 통해 확인해보자. 인크루트와 두잇서베이가 ‘2018 유행어’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최고의 유행어로 ‘소확행’이 선정됐다.

‘소확행’과 ‘워라밸’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다. 우선 그 의미부터 살펴보자.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일컫는다. ‘워라밸’은 일과 생활이 균형을 이루는, 즉 지나치게 일에 몰두하지 않고 생활과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언뜻 보면 서로 틀린 개념처럼 다가오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비슷한 맥락이다. 단순히 단어가 갖는 의미가 아닌 이 신조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면 두 어휘가 결국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지나칠 정도로 앞만 바라보며 성공지향의 삶을 살아온 경향이 크다. 옆과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미래를 위해 오롯이 현재를 희생시켜온 삶 말이다.

우리에게 돌아온 건 결국 무엇인가. 이에 대한 깊은 성찰로부터 얻어낸 사유를 조심스레 길어 올린 뒤 살을 붙여 탄생한 개념이 다름 아닌 ‘소확행’과 ‘워라밸’이다. 아울러 이에는 자조적 의미도 내포돼있다. 기성세대와 달리 아무리 노력해도 뜻하는 곳에 도달할 수 없고, 앞조차 보이지 않는 온통 불투명한 미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현실과의 타협점을 찾은 개념이다.

흔히 N포세대라 불리는 청년세대, 이들을 지칭하는 새로운 어휘도 등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으니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겠노라는 자포자기적 의미가 담긴 ‘무민세대’가 바로 그러하다. 반드시 의미 있는 것만 추구할 게 아니라 무의미한 것들에 눈을 돌려 그 안에서 의미를 찾자는, 앞서 살펴본 두 단어와 마찬가지로 다분히 자조적 의미가 담긴 어휘다.

지난 한 해 동안 모두들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찾자며 외치고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이면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짙게 배어있는 게 아닌가. 씁쓸한 대목이다. 2019년 올해는 과연 어떤 신조어들이 탄생하여 다시 한 번 우리를 웃기고 울릴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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