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유적서 4∼5세기 가야 집모양토기 출토
김해 봉황동 유적서 4∼5세기 가야 집모양토기 출토
  • 박규진 기자
    박규진 기자
  • 승인 2019.01.0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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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나온 4∼5세기 집모양토기(왼쪽)와 5세기 말발걸이. [사진=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나온 4∼5세기 집모양토기(왼쪽)와 5세기 말발걸이. [사진=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박규진 기자]김해 봉황동 유적지(사적 제2호)에서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4∼5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집모양토기(家形土器)가 출토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5년부터 연차 발굴 중인 김해 봉황동 유적 내 4세기 말∼5세기 초 건물터 주변에서 지난해 가을 무렵 길이와 높이가 6∼7㎝인 집모양토기를 수습했다고 9일 밝혔다.

이 토기는 정면은 평평하지만 뒤쪽 벽체는 반원형이고, 지붕도 앞뒤가 다른데 앞쪽은 삿갓 모양 맞배지붕이지만 뒤쪽은 둥그스름하다. 

연구소는 가야 유적에서 출토된 집모양토기는 대략 9점인데, 이번에 발견된 집모양토기는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은 독특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또 집모양토기가 무덤이 아닌 생활유적에서 나왔다는 점도 특이하며, 가야 생활사와 건축사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014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이 창원 진해구 석동 유적에서 찾은 4∼5세기 집모양토기는 기둥 9개 위에 누각 같은 건물을 올렸고, 지붕은 완전한 맞배지붕이다. 가야계 집모양토기는 창원 석동 유적 외에는 창원 다호리 고분과 함안 소포리 유적에서 나온 바 있다.

지난해 봉황동 유적 조사에서는 고리 상단부에 구멍을 내고 철심을 박은 철제 말발걸이(등자)도 발견됐다. 

말발걸이는 불을 사용한 흔적이 남은 자취인 소성유구(燒成遺構) 주변 5세기 초반 문화층(특정 시대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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