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의 시화 에세이] (8) 리어카 할머니의 특별한 소주 한잔
[신성대의 시화 에세이] (8) 리어카 할머니의 특별한 소주 한잔
  • 신성대 칼럼니스트/작가
    신성대 칼럼니스트/작가
  • 승인 2018.02.19 0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종이 박스와  신문지며 잡다한 고물들을

가득 실고 나를 못 본 척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 한쪽 귀퉁이에 있는 신문지 뭉치를 건네주며

"할머니 , 이것도 가져가세요 "하며

할머니를 불러 세웠다

할머니는 끌든 리어카를 내려놓고

내가 건낸 신문지를 넙죽 받으며 90도로 허리를 굽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어차피 버려질 신문지 뭉치일 뿐

내가 보기에 특별한 것도 아닌데

대단한 걸 준 것처럼 너무 고마워하시니 내가 더 쑥스러웠다

그러면서

추운 겨울 신문지를 받아든 할머니의 튼 손과

굵어 질대로 두툼해진 손가락이

살아온 삶의 흔적 같아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주름진 얼굴에 얼마 남지 않은 치아와 치아사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의 사람 좋은 웃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동네에 폐휴지를 주워가는 두 분의 할머니가 계신다

한 할머니는 투덜투덜되면서 신문지와 종이박스를 수거 해 가시고

한 할머니는 언제나 폐휴지나 고물을 꼭 받아들고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건넨다

아마 누구라도 신문지와 종이박스를 내어 준다면

당연 두 번째 할머니를 찾을 것이다

오늘 옆에 둔 신문지를 두고 할머니를 기꺼이 불러 세운 이유 중의 하나는

이 할머니가 바로 두 번째 해당하는 할머니시기 때문이다 .

 

그래서 평소에 시간이 없어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 여유가 있어 할머니의 나이가 궁금해서 여쭸다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그러자 낭랑한 목소리로

"이른 여덟 살이지요 "라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내가 묻는 말에 공손히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입가에서

정체를 알 것 같은 술 냄새가 흘러나와 내 코끝을 스쳤다

 

조금은 걱정스런 말로

"에이 ~ 할머니 술 드셨나 봐요 .. 도로로 다니시면 위험하실 텐데 .."

라는 제 말에

"미안합니다 너무 추워서 소주 딱 한 잔 했다오 ..."

라고 할머니는 겸연쩍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음 말을 찾지 못했다 .

그리고  

"아 ..예 ...잘하셨어요 !!"

라는 얼무버리는 말밖에는 ...

 

왜냐하면 다른 일도 아니고 추워서 소주 한잔 했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직도 차가운 얼음장 같은 길거리를 얇은 면장갑 하나를 끼고

종일 돌아다니셨을 할머니의 힘겨운 걸음이

얼굴을 사정없이 휩쓸고 갈 칼바람에 얼마나 추웠셨을까 ...

그러면서 그걸 묻는 내게

미안해하실 것도 아닌데

미안해하시는 할머니의 그 말이 내 가슴에 예리하게 날아와 박혔다

사정도 모르고 괜히 물어본 내가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바깥 날씨 영하 14도라는 일기예보와 실감나게 추운 날

얼음장 같은 길바닥에 면장갑 하나로 리어카를 끌기엔

힘이 부쳤으리라

문밖을 나서면 여전히 손이 시리고 차가 지나는 도로엔

차가 지나는 속도만큼 차가울 추운 날씨를 감안 한다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소주 한 잔 마셨다’는 할머니 말씀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내 가슴도 어느새 수긍이 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

페종이들을 리어카에 가득 실어 겨우 머리만 보이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평소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할머니의 입가에 새어나온 소주냄새는

그냥 평범한 소주 한잔이 아니고 할머니의 육신에 추위를 녹이고

하루하루 삶을 이겨내며 다독이는 친구 같은

그래서 하루를 견디는 아주 특별해 보이는

그런 의미 있는 가슴 짠한 소주 한잔으로 보였다

내일도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며 동네를 다니실 할머니,

부디 할머니의 안전과 건강을 기원해봅니다.

 

 

필자소개 

신성대

작가/ 칼럼니스트 

저서 : '별을따라가는 것과 산을 오르는 것' 

       '땅끝에서 피는 들꽃'

 

경제미디어의 새로운 패러다임, 파이낸스투데이  

후원하기

Fn투데이는 여러분의 후원금을 귀하게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파이낸스투데이
  •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사임당로 39
  • 등록번호 : 서울 아 00570 법인명 : (주)메이벅스 사업자등록번호 : 214-88-86677
  • 등록일 : 2008-05-01
  • 발행일 : 2008-05-01
  • 발행(편집)인 : 인세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인수
  • 본사긴급 연락처 : 02-583-8333 / 010-3797-3464
  • 법률고문: 유병두 변호사 (前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서울중앙지검 ,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 파이낸스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파이낸스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1@fntoday.co.kr
ND소프트 인신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