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16)타계한 ‘문화 후원자’ 김이환을 아세요?
[조우석 칼럼] (16)타계한 ‘문화 후원자’ 김이환을 아세요?
  • 조우석 칼럼니스트
    조우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1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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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거장인 박생광과 전혁림의 패트런

-만년에 꽃 피우도록 지원...사진작가 김아타도 지원

-우리시대 문화 꽃피운 그 멋쟁이를 기억할 때

 

각각 펴낸 책 '수유리 가는 길'과 '통영 가는 길'을 앞에 둔 생전의 김이환(오른쪽)관장과 신영숙 부부.  권혁재 사진
각각 펴낸 책 '수유리 가는 길'과 '통영 가는 길'을 앞에 둔 생전의 김이환(오른쪽)관장과 신영숙 부부. 권혁재 사진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가(家)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피렌체의 유력 가문이던 메디치는 미술 장르는 물론 당시 유럽 문화예술을 꽃피웠던, 안목 있는 후원자의 대명사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에겐 방탄소년단 멤버인 RM(본명 김남준)이 있다. 본래 그는 미술작품의 매력에 빠져 이것저것 콜렉션하던 애호가로 출발했으나 이제는 어엿한 후원자로 통한다.

2년 전인가? 미국 뉴욕타임스가 RM을 두고 아트 패트론(Art Patron)이라며 찬사를 보냈던 것을 우린 기억한다. RM 덕을 본 건 한둘이 아니다. 현대미술사의 최고봉이었으나 대중에게는 멀었던 옛 조각가 권진규, 왕년 미니멀리즘 미술의 윤형근 등 대가의 이름도 그 덕분에 요즘 다시 떴다. 그가 소장하거나 관심 가졌다는 것 자체가 세상의 화제다.

메디치 가문 이야기에 RM 스토리를 꺼낸 건 이유가 있다. 3월 12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김이환(1936~2024) 전 이영미술관장 때문이다. 대중은 그의 이름을 잘 모를 수 있다. 지원받았던 작가는 부각되지만, 후원자는 뒤에 숨어있는 구조 탓인데, 물론 아는 이들은 안다. 김이환이야말로 우리시대 문화예술의 패트론으로 손색없는 멋쟁이다.

1980년대 이후 그의 후원을 받았던 작가는 우리미술사에 빛나는 내고(乃古) 박생광(1904~85)과, 전혁림(1916~2010)이 우선 꼽힌다. 박생광의 경우 김이환의 후원 이전에는 일본 채색화의 아류 작가로 치부됐다. 그런 변방의 비주류 작가가 만년에 ‘명성황후’ ‘전봉준’ 등 불세출의 대작을 꽃피웠던 건 김이환을 만나 안정적인 후원을 받으며 대변신에 성공한 덕분이다.

당시 박생광이 살던 서울 수유리의 집을 40대 초반의 평범한 공무원 김이환이 찾으며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가 정확하게 1977년. 김이환과 그의 아내 신영숙은 단지 흑모란 수묵화 한 점을 얻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1년 뒤 그들은 작가-후원자 관계로 발전했다. 당시 박생광이 어렵게 말머리를 꺼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소. 도와주시겠나?” 며칠을 생각한 부부가 “형편껏 해보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그건 우리 미술사의 이 명장면이다. 김이환이 쓴 <수유리 가는 길>(2004년)에 다 나오는 얘기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직후 박생광은 당시 유행하던 수묵화를 접고, 에너지 넘치는 단청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수묵화가 전부인 줄 알았던 한국화 장르가 조선 500년 동안 잊어왔던 ‘색의 옷’을 얻는 찰라였다. 현대미술이 고려불화 혹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통과 이어지는 황홀한 랑데부이기도 했다.

그 결과 박생광은 생애 만년 ‘황금의 7년’ 동안 대작을 폭포수처럼 쏟아냈지만, 지금 그 열매를 공유하는 건 이 나라 문화계 전체가 아닐까? 실은 박생광은 생애 만년 벌써 박수근·이중섭·김환기 같은 미술사의 큰 이름과 같은 반열에 올라섰다. 바로 미술사에 편입된 것이다. 당시 인기 절정의 여성화가 천경자의 깜짝 제안도 그때 나왔다.

박생광의 1982년 작  '무당'.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전봉준', '명성황후' 의 분위기가 다 녹아있다
박생광의 1982년 작 '무당'.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전봉준', '명성황후' 의 분위기가 다 녹아있다

 

그는 “선생님의 작품 ‘토함산 해돋이’를 주면, 원하시는 내 그림을 모두 드리겠다”고 박생광에게 제안했다. 김이환-신영숙 부부가 전시장에서 직접 들었던 양 거두(巨頭)의 은밀한 대화가 그러했다. 이야기는 끝없다. 박생광의 타계 10년 뒤 김이환은 박생광의 일본 유학 시절을 공부하려고 환갑 나이에 일본 연수를 결행했다. 돌아와 그는 미술관까지 세웠다. 한때 ‘경기도의 보석’으로 통하던 이영미술관의 탄생 배경이 바로 그러하다.

또 있다. 박생광 타계 뒤 김이환-신영숙 부부는 제2의 박생광을 찾아 나섰다. 그게 통영의 작가 전혁림이었다. 그는 본래 고향인 통영과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가. 코발트빛 통영 앞바다를 그린 전혁림의 그림 앞에서 부부는 “이토록 강렬하게 한국적 미감을 드러낸 작가는 없었다”는 확신을 했고, 그가 타계할 때까지 작업 비용과 생활비 전액을 지원했다.

아내 신영숙은 12년 전인 2012년 전혁림과의 인연 20년을 기록한 <통영 다녀오는 길>을 펴내기도 했다. 박생광-전혁림 두 대가가 타계했을 때 정부는 문화훈장 중 격이 높은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글쎄다. 그건 작가와 후원자가 함께 받은 영광이 아니었을까?

두 부부는 사진작가 김아타(68)를 20년 전에 지원하기도 했음을 우린 기억한다. 젊었던 그가 국제적 작가로 뜨는 배경에도 이 후원자 부부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김이환 관장은 경남 진주 출신. 1950년대 부산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가 서울시장 김현옥의 제안을 받아 서울에 올라왔고, 이후 총리실 등에서 근무한 뒤 은퇴했다. 효성그룹, LG 등에서 경영진으로도 활동했다.

분명한 건 그런 인생 전반전보다 미술 후원자로 변신했던 인생 2모작 경력이야말로 김이환 삶의 정점(頂點)이란 대목이다. 며칠 전 필자는 고인이 모셔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한창때의 미소 띤 영정이 눈에 확 들어왔다. 훤칠하게 큰 키에 영화배우 못잖은 그 좋은 외모 앞에서 분향을 하면서 작은 결심을 했다.

그래, 이 멋진 스토리를 글로 남겨야겠다. 그게 고인과, 신문사 문화부 기자 출신인 필자가 나눴던 20여 년 우정의 표현이자, 우리시대 문화사의 산 증언이 아닐까? 그게 바로 이 짧은 글이다. 그리고 나는 생전의 당신을 오야붕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아듀, 오야붕!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칼럼니스트 소개 

조우석

현) 평론가

전) KBS 이사

전)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

전)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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