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 기자 조롱화, 풍자에 대한 서울민예총의 오해
[박한명 칼럼] 기자 조롱화, 풍자에 대한 서울민예총의 오해
  • 박한명 기자
    박한명 기자
  • 승인 2022.06.1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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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풍자(諷刺)의 묘미는 대상을 비틀고 날카롭게 해부하면서도 절제미와 품격을 잃지 않는 해학에 있다. 풍자에서 해학과 품위를 잃으면 그건 진정한 풍자라고 할 수 없다. 프랑스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던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서 무함마드 풍자만화가 더 우회적이고 절제와 예의를 잃지 않았더라면 표현의 자유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다 목이 잘린 중학교 교사의 운명은 어쩌면 달라졌을지 모른다.

얕은 식견의 한계인지 몰라도 현대 미술을 간간히 접하고 느끼는 건 요즘 예술가들에게서는 옛 시대 예술가들에게서 보던 품격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한창 논란이 일었던 '굿바이 시즌2 - 언론개혁을 위한 예술가들의 행동展'을 보고 든 아쉬움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6월 15일까지 광주시에서 열리는 이 전시회가 구설에 올랐던 것은 전시 작품 중 언론인 100명 이상을 소속 회사와 실명까지 공개해 ‘가짜뉴스 생산자’로 낙인찍은 사실상의 조리돌림이었기 때문이다.

풍자는 풍자 대상을 적확하게 그리지 않으면 일종의 테러에 불과하다. 이 전시회를 현장에서 직접 관람한 것은 아니지만 언론 등 간접적으로 감상한 평을 얘기하면 풍자 예술이라고 평가해주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전시회를 주최한 서울민예총은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왜곡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일부 언론사들의 행태를 풍자하기 위해 이 전시회를 주최했다"고 한다. 가짜뉴스를 생산한 언론사와 언론인들의 행태를 풍자하기 위한 예술이라는 주장인데 이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풍자의 대상이 된 기자들이 대체 어떤 가짜뉴스를 썼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풍자가 반향을 불러일으키려면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그러나 이 전시회를 기획한 주최 측과 예술가들의 언론인 풍자화는 도리어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표적이 된 기자들은 가짜뉴스로 분노의 대상이라기보다 문재인 정권과 조국사태 때 권력을 비판, 견제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풍자가 빠진 풍자는 폭력, 테러에 불과하다

권력자가 아닌 권력의 감시자들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수상하다. 예술가들이 권력자를 풍자하지 않고 마치 권력의 홍위병이나 조국수호대와 같은 인상을 준다면 이들의 예술에 감동을 느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치기 어린 화풀이, 분노의 배설이라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그렸다고 모두 예술품이 되지 않는 것은 작품에 예술성이 빠져 있기에 그렇다.

풍자화에 풍자가 없다면 그건 쓰레기에 불과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 냉정한 평가가 아닐까. 오죽하면 언론개혁시민연대조차 "주최 측은 이번 전시회가 '권력에 줄서기 하며 언론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망각하고 권언유착을 서슴지 않는' 기자들에 대한 '소리 없는 외침'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작품을 지배하는 분노와 격정, 인권의 무시와 조롱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의 근거나 비평의 윤리를 찾아내기는 어렵다"고 했을까.

'굿바이 시즌2' 작가 일동은 물론 이렇게 반박한다. "박찬우 작가가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기자들은 왜, 어떤 이유로 캐리커처로 그려졌는지 박찬우 작가의 SNS에 기자들이 쓴 기사를 첨부해 명확하게 나와 있다" "심각한 진실 왜곡과 본질을 호도한 기자들이 과연 예술 풍자의 대상조차 돼선 안 되는 존재인가 묻고 싶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들이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논평에 불과하다는 것, 기자들이 설령 진실을 왜곡한 것이 사실이고 이들이 충분히 풍자대상감이라고 해도 정작 풍자의 묘미가 빠진 작품은 질적으로 높게 봐주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많은 국민이 절대적으로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제넘은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필자는 예술인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주길 바란다.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분노는 덜어놓고 말이다. 탄압을 받으면서도 왕정을 비판하고 가난한 서민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한 19세기 프랑스 풍자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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