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월간Fn 2020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참고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편집자 주 )
광풍이 휘몰아친 뒤인 2017년 3월 31일 구속.
그렇게 시 작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감생활이 그로부터 약 3년 7개 월 (현재는 4년 이상) 흘렀다. 11월 12일 현재 날짜로는 1323일, 햇수로는 4년 째 (현재는 5년)다. 시쳇말로 돈 한 푼 먹지 않은 대통령인데 수감생활을 한 역대 대통령 중 최장기간을 갱신중이다.
뇌물수수·직권 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13개의 무시무시한 혐의가 그에게 덧씌워져 있다. 해진 혁대와 구멍 난 러닝셔츠의 박정희 대통령과 근검절약의 상징과 같은 육영수 여사의 딸 박근혜에게 말이다.
생전 박정희 대통령 부부는 딸이지만 그의 검소한 태도를 기특해했다고 한다.
1964년의 일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근혜가 주말에 청와대로 돌아왔다. 모처럼 집으로 돌아온 딸을 위해 몇가지의 음식을 장만하였다. 저녁 식탁에 생굴이랑 평소보다 두어가지 많은 찬이 차려져 나오자, 근혜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이러다간 신당동 집에 가서 살게 될 때 어떻게 하려고....”
어른스럽게도 앞일걱정을 하며 자칫 지금의 환경에 젖어 버리기 쉬운 주변 사람의 주의를 환기시키곤 한다.
“내 딸이지만 그 소박하고 성실한 성품은 기특하고 본도 받아야 한다” 고 대통령은 흐뭇하신 표정이다.
어린 딸의 기특한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육영수여사의 수기에서)
박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나오기 위해선 사면을 받거나 형 집행정지가 이뤄져야 한다.
사면은 형이 확정된 후에나 가능해 소위 국정농단 사건 등에 대한 파기환송심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어렵다. 형집행정지를 위해선 조건이 맞아야 한다.
형 집행으로 건강을 해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염려가 있거나, 70세 이상일 때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9년 4월과 9월에 건강을 사유로 형 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문재인 정권의 검찰은 냉혹했다.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며 기각해 버렸다.
그해 9월 16일 회전근개 파열로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다음 날 수술을 받은 후 입원 78일 만에 퇴원해 다시 서울구치소로 돌아갔다.
박근혜란 세 글자는 이제 보수에게 양심을 묻는 척도가 되었다. 박정희·육영수란 큰 유산을 물려받아 보수의 정권 창출에 자신의 정치인생을 소비하고 던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저 상태로 방치할 것인가.
변치 않는 사실과 진실 그리고 커다란 허위가 뒤섞인 소위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일일이 지적 하고 싶지는 않다. 권력의 검찰과 법원이 지하 깊숙하게 묻어버린 이 사건은 훗날 역사가 진실을 오롯이 드러낼 것이다. 그의 흠은 흠대로, 빛나는 성과는 성과대로 말이다.
그와 별개로 보수는 박근혜를 저대로 두어선 안 된다.
박 전 대통령 은 2019년 4월과 9월에 건강을 사유로 형 집행정지를 신청 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혹한 심판을 받고 있어서, 도덕적 으로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얼마 후 21 일에는 “과거를 명확하게 청산해야 한다는 데 변함이 없다. 재판 중이라 기다려보는데 상황에 따라 연내에 (대국민 사과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인가.
일평생 권력의 양지만을 찾아 살아온 사람이 빛과 어둠을 겪은 뒤 자기 일생을 던진 사람의 도덕성을 청산하고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박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심판받았다. 정치적 실패는 분명하다. 그러나 박근혜의 헌신을 이용하고 그 수혜만을 누려온 정당과 정치인들은 달라야 한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청산이 아니라 석방을 이야기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아무리 유능하다 하더라도 뜨내기 정치기술자 처지로 여든 야든 그 정당의 역사를 온전히 감당할 처지는 못 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보수정당의 정치적 실패는 그 정당의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감당할 몫이다. 김 위원장이 공식적으로는 차마 하지 못하더라도 물밑으로 온정을 보여줬다면 김 위원장의 비대위 지금처럼 아슬아슬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와 박근혜의 고향 대구경북에서 민주당에 지지율이 역전당하는 냉대까지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대구경북의 민심, 그것은 보수 정당의 정치무능에 대한 냉엄한 심판이자 동시에 박정희·박근혜 부녀에 정치적 빚을 진 보수정당에 대해 인간적 양심을 묻는 커다란 종의 울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4월 총선 전 박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보내온 한 장의 손편지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것을 두고 정치적 해석이 난무했지만 메시지는 하나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 속에서도 국민이 받을 고통을 걱정한 그가 쓴 “지 난 2006년 테러를 당한 이후 저의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이고, 그 삶은 이 나라에 바친 것이라고 생각했다.”란 표현이다.
비극적으로 끝난 부모의 삶 속에서도 오로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교훈으로 삼아 자기 인생을 덤으로 여기고 걸어온 여성 대통령의 굴곡진 인생에 허울이 있다면 무슨 큰 허울이 있었겠는가. 설령 실수와 교만이 있었더라도 보수는 그를 감싸 안고 그의 상처와 실수를 보듬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된 도리고 그로부터 받은 정치적 은혜의 보답일 것이다.
지금 많은 국민은 문재인 정권의 무도한 친문 패권정치의 패악에 완전히 질려 있다.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분열의 정치에 심신이 망가진 국민은 갈라진 틈을 매우고 찢어진 결을 정성스레 꿰매는 통합의 리더십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도래할 시대정신은 통합의 정신이다. 좌파의 상징과 같은 존재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을 당선자 신분으로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전두환 신군부에 내란 음모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국민통합이란 더 큰 뜻을 앞세웠던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12월 20일 두 사람을 사면했다.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면건의가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것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김 전 대통령은 단지 통합의 리더십이란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집권기간이 상대적으로 순탄했다.
마찬가지로 차기 대선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석방 문제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살벌한 정치투쟁에서 져버린 정치인의 정치적 탄핵으로 끝나야 했을 것을 사법부로 무리하게 끌고 가서 온갖 혐의를 덧칠해 정치인이 아닌 한 여성을 마녀사냥하고 십자 가에 매달아 불태우는 수순까지 내몰았다. 그렇게 해서 박근혜를 불태우면 국민이 잘했다고 박수쳐 줄까.
민심은 다시 진보의 잔인한 악마성을 질책하고 보수에게 외면한 양심을 물을 것이다.
탄핵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차가운 그 시절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 그때 박근혜의 잘린 목을 죽창에 매달아 치켜들고 거리를 누비던 광기의 시체들이 무서워 숨었던 자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묻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춥다. 대통령의 자리에서 한 순간에 끌려 내려와 차디찬 감옥에 갇힌 그는 더 외롭고 추울 것이다.
서두르자. 이제 그만 한 개인으로 돌아 간 그녀를 고통에서 건져 모두에게서 자유롭게 해주자. 그것이 보수가 지킬 마지막 양심이다. (칼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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