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의 날씨는 참 스산하다. 기온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조량이 연중 가장 적은 때라 그렇기도 하다. 아닌가. 서로 뒤바뀐 건가?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고 그러다 보니 일조량이 줄어들어 기온이 낮아진 걸까? 아무튼 햇빛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고 기온마저 낮으니 기분도 괜스레 꿀꿀해지곤 하는 게 요맘때 계절의 특징이다.
더구나 근래엔 미세먼지가 한반도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대기를 온통 잿빛투성이로 물들여놓고 있다. 이렇듯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에 더욱 살풍경을 더하는 요소가 하나 있으니, 다름 아닌 도심을 온통 검정색의 칙칙함으로 도배하고 있는 롱패딩 열풍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검정색 롱패딩이 거의 교복과 같은 쓰임새다. 대학생들에게는 과잠 역할도 한다.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청년들까지 온통 검정색 롱패딩을 입고 다니는 판국이니 가뜩이나 칙칙한 거리는 더욱 삭막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일쑤다. 근래 겨울철 기온이 예년 같지 않고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라 추위를 막기 위한 요량으로 롱패딩을 입는 것까지야 딱히 뭐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같은 색상을 사 입기로 사전에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많고 많은 색상 중에 왜 하필이면 온통 검은색이어야 하는 걸까? 상대적으로 가장 개성이 뚜렷하다는 1020세대마저도 죄다 동일한 색상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연합뉴스의 지난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청소년의 경우 색상에 대한 경험치가 적기 때문에 검정색 패딩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검정색을 유독 좋아하는 건 비단 청소년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었다. 지난 2014년 한국갤럽이 전국 만 13세 이상 남녀 1천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옷 색깔은 바로 검은색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조사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뿐만 아니다. 미국 페인트업체 듀폰이 지난 2009년 12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들은 은색(39%) 다음으로 검정(29%)을 선호했다. 해당 조사는 자동차 색상과 관련한 것으로 옷 색깔과는 인식의 차이가 조금 있긴 했으나 어쨌든 검은색을 선호하는 것만큼은 같았다.
명지대 정보통신공학과 최창석 교수에 따르면 한국인의 무채색 선호 현상은 빙하기의 시베리아 설원에서 진화된 북방형의 시각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검정색에는 과시하려는 욕구가 담겨있으며, 흰색, 은색, 회색 계통에는 자신을 감추려는 속내가 담겨있다고 해석한다.
앞서 사례로 든 연합뉴스의 패딩 관련 기사에 의하면 청소년들이 검정색을 고르는 이유에 대해 멋있으며 세련되고 강한 색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자동차의 검정색 선호 욕구와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특별히 검정색 롱패딩이 유행하게 된 데엔 왠지 또 다른 이유가 숨어있을 것 같다. 젊은이들이 이렇듯 개성을 내팽긴 채 일제히 동일한 방향으로 향하는 데엔 분명 또 다른 원인이 존재할 것 같다. 물론 짐작 가는 바가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요즘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유행하는 신조어가 있다. 다름 아닌 ‘인싸’ ‘아싸’다. 인싸는 인사이더, 즉 주류에 속하는 사람을 일컫고, 아싸는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인싸와 대척점에 놓인 사람, 그러니까 비주류를 일컫는다.
주류에 속하고자 하는 요즘 사람들의 노력은 눈물 겹다. 유행을 빌미로 ‘인싸템’이라는 온갖 형태의 마케팅이 행해지는 이면에는 이렇듯 주류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대중들의 성향을 교묘히 이용하려는 기업의 장삿속이 자리하고 있다. 주류가 검정색 롱패딩을 입고 있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가장 손쉽게 안전을 획득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같은 옷을 입는 방식인 셈이다. 이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결과인 까닭에 개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라곤 일절 없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해소되어야 보다 상위의 욕구를 찾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래서 온통 검정색 일색인 셈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일 만큼 오밀조밀하게 붙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 주류로부터 이탈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여러 갈래로 드러나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검정색 롱패딩 현상은 어딘가 모르게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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