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패스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구조적 유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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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 내면서 우리 국민은 '선택의 자유'를 지성적 자아의 핵심 가치로 여길 만큼 성숙해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견고하게 구축된 좌파 포퓰리즘 프레임 안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기하는 배우 같이 ‘선택의 자유’가 사라진 정서적 폐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보건 정책으로서의 ‘코로나 백신 패스’와 자본의 논리로 포장된 ‘삼전, 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각각 생명과 자산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지만, 그 심층부에는 “포퓰리즘의 자연적 방어막”인 중산층을 해체하기 위한 동일한 구조적 문법이 흐르고 있음이 보인다. 그것은 시스템의 강요된 선택에 따른 ‘책임의 비대칭적 전가’와 ‘실존적 소외’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으며, 피해자는 법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소외자인 것이다.

1. 몰랐다면 무능: 선택이라는 이름의 신화

중산층은 언론과 미디어의 암시, 감시와 통제에 따라 행동하면서 스스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믿는다. 팬데믹이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백신 패스는 사회적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불가피한 통행증으로 치부되었고, 급격한 인플레이션 시대에 레버리지 ETF는 부를 증식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지로 격상되었다. 중산층은 일상을 위해 백신패스에 순응하였고, 부의 축적을 위해 레버리지 ETF에 투자를 했다. 만약 시스템의 설계자가 이 선택이 가져올 실존적 파국—공동체의 분열과 개인 자산의 구조적 잠식—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이는 그들이 사회적 계약의 수호자를 자칭하는 정부로서 ‘무능’함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중산층에게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순응’을, 자산을 늘릴 기회를 담보로 ‘도박’을 강요하면서도, 그 선택이 초래할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끝내 선택한 ‘개인의 책임’이라는 명분 뒤로 숨어 책임을 회피하였다. 그들이 설계한 시스템의 무대 위에는 언제나 돈과 건강을 잃은 피해자만 덩그러니 남는다.

2. 알았다면 기만: 구조적 변동성을 향한 정교한 유희(遊戱)

더욱 무섭고 걱정스러운 것은 설계자가 그 결과의 치명성을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을 운용했을 가능성이다. 초헌법적 백신패스와 장기간의 마스크 의무화 등 전체주의적 방역이 소상공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리고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갖고 있는 음의 복리(Volatility Decay)가 어떻게 개미 투자자의 자본을 갉아먹는지 명확히 알면서도 시행했다면, 이는 명백하게 국민을 ‘기만(Deception)’한 것이다.

그런데 설계자들이 몰랐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왜냐면 그들은 금융, 자산, 주식에 오래 동안 몸담았던 전문가들이며 EU, 일본, 대만, 중국에서는 금지하고 있으며, 미국조차도 개인 투자자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몰랐을 가능성은 피해 규모에 대해서 일뿐이다. 한국 금융 역사상 가장 위험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품 출시는 단순한 정책의 실수가 아니다. ‘변동성’이 갖고 있는 에너지-불안정한 중산층을 복지와 무상에 의존하게 만드는 에너지-로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려는 좌파 포퓰리즘 권력의 본능, 지방선거 승리 같은 단기적인 이익을 좇는 본능이 만든 것이다. 그것은 방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본능과 같은 것이다. 본능에 충실하면 즐거움이 생기므로 피눈물 흘리는 중산층을 보는 것이 설계자에게는 충분히 유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중산층은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윤활유로서, 외부에서 주입되는 불확실성을 체내에서 흡수하고 분해하는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그들의 생존은 시스템이 설계한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안에서 발생하는 파국, 폭락한 주가, 계좌의 녹아내림,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는 오직 시스템의 견고함을 증명하는 지표로 활용될 뿐이다.

3. 우리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실존적 과제

‘무능과 기만’이라는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 안에서 울분을 토하고 답답해하는 중산층의 초상을 목격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중에는 시스템이 우리를 지키고 구원하기 위해 설계된 울타리라고 믿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은 강요하지 않고 다만 제안할 뿐이며 그 제안은 언제나 정답이라고 믿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동정심을 유발하는 착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가장 동정받는 처지에 몰린다.

강요된 선택은 선택이 아니며 따라서 제시된 선택지는 정답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방역’과 ‘투자’라는 거대 서사가 개인의 생존을 보호한다는 환상을 해체해야 한다. 설계자와 운영자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비대칭적인 리스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실존적 투쟁이다. 시스템의 트랙 위에서 맹목적으로 달리는 대신, 자신의 리스크 허용 범위를 스스로 정의하고, 시스템의 파동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사유하는 주체’가 되어야 해야 한다.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시스템이 만든 거대한 미로다. 미로를 설계한 자들이 몰랐다면 그들의 무능을 탓할 것이고, 알았다면 그 기만적인 체제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시스템의 희생양이 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설계하는 주체적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실존적 과제다.

칼럼니스트 소개

오순영 원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본지에 게재된 외부 기고 및 칼럼은 필자 개인의 견해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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