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국가보안법 3년…사라지는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
홍콩 국가보안법 3년…사라지는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
  • 정욱진
    정욱진
  • 승인 2023.06.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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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금융허브' 홍콩에서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가 사라지고 있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되면서 50년간 고도의 자치를 보장받았던 홍콩이지만, 절반이 지난 26년 만에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려왔던 자유가 상당 부분 침해됐다.

모두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중국이 이듬해 6월 30일 홍콩국가보안법을 시행한 후 3년도 안 돼 빠르게 벌어진 일이다.

◇ 30년 역사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집회 4년째 차단

오는 4일은 톈안먼 민주화 시위 34주년 기념일이지만, 홍콩에서는 올해도 추모 촛불 집회 소식은 없다.

1989년 6월 4일 중국 당국이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유혈 진압한 후 이듬해부터 홍콩에서는 매년 6월 4일 저녁이면 빅토리아 파크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이 많게는 수십만개씩 켜졌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2020년 촛불 집회를 처음으로 불허했다.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수만 명이 모이자 2021년에는 집회를 불허하는 동시에 아예 빅토리아 파크를 봉쇄해버렸다. 32년 만에 처음으로 6월 4일 저녁 빅토리아 파크에서 촛불이 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후 해당 집회를 주최해왔던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가 당국의 압박에 해산하면서 지난해에는 집회를 신청한 단체가 없었지만, 당국은 또다시 6월 4일 빅토리아 파크를 원천 봉쇄해버렸다.

올해도 촛불 집회를 신청한 곳은 없다. 대신 지난 2월 한 친중 단체가 일찌감치 빅토리아 파크에서 6월 3∼5일 쇼핑 행사를 개최하겠다며 현장을 '선점'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노동절 집회, 세계여성의 날 집회, 도교 행진 등도 불허되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취소됐다.

2019년까지만 해도 온갖 종류의 집회와 시위, 행진이 자유롭게 열리던 홍콩이다.

◇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언론인들…40년 역사 만평 퇴출

지난달 29일 홍콩 고등법원은 반중 일간지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가 불공정한 재판을 이유로 자신의 국가보안법 사건을 종결시켜달라고 한 신청을 기각했다.

결국 오는 9월 그의 국가보안법 재판이 재개되는데, 외세와 결탁한 혐의로 기소된 그는 유죄가 선고되면 최대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에 앞서 빈과일보는 2021년에 이미 폐간됐고 입장신문, 시티즌뉴스 등 다른 민주 진영 언론사들도 당국의 압박 속 줄줄이 문을 닫았다.

라이뿐만 아니라 여러 언론인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홍콩 유력지 명보에 1983년부터 '쭌지'라는 필명으로 매일 게재됐던 시사만화가 웡커이콴의 시사만평은 지난달 14일 돌연 막을 내렸다. 최근 6개월간 당국으로부터 몇차례 비판받은 끝에 결국 퇴출당한 것이다.

TV에서는 시사 프로그램이 자취를 감췄고 대신 국가안보 관련 주간 프로그램 편성이 의무화됐다.

심지어 홍콩외신기자클럽(HKFCC)의 위상도 추락했다.

지난달 24일 실시된 이 단체의 신임회장 선거에는 유력 언론사 소속 기자가 아무도 출마하지 않은 가운데 현지 외신 특파원도 아닌 한 '독립 라이프스타일 에디터'가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앞서 지난해 5월 HKFCC는 '레드 라인'이 불분명해 법적 위험이 있다며 26년 역사의 인권언론상(HRPA) 주관을 포기했다. 그해 11월 홍콩 정부는 HKFCC가 세 들어 있는 정부 소유 건물에 대한 임대 계약을 갱신하면서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즉시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9일 HKFCC는 앞으로 언론의 자유에 관한 성명을 발표할 때 법률 자문과 함께 홍콩 정부와 사전에 접촉한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HKFCC 일부 회원들은 이전까지 성명 발표에 제약이 없었다면서, 이러한 지침은 HKFCC가 성명을 뜸하게 발표할 구실을 줄 뿐이라고 지적했다고 홍콩프리프레스(HKFP)가 전했다.

◇ 홍콩판 분서갱유…"사라지기 전에 해외로 책 보내자"

책들도 사라지고 있다.

공공도서관을 시작으로 학교와 서점에서 톈안먼 시위나 홍콩 반정부 시위 등 당국이 '민감'하다고 판단한 책들이 없어지고 있다.

이에 일부 책 애호가들 사이에서 해외 대학도서관 등지로 사라질 위기의 책들을 보내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고, 홍콩 저자들은 앞으로 대만에서 책을 출판해야 할 수 있다고 홍콩 언론들이 전했다.

홍콩판 분서갱유가 벌어진다는 지적 속에서 실명으로 의견을 발표하는 학자나 전문가도 거의 찾기 힘들다. 초중고, 대학을 불문하고 많은 홍콩 교육자가 교단은 물론이고, 아예 홍콩을 떠나버렸다.

이런 가운데 2023∼2024학년도 홍콩 8개 공립대에서 역대 처음으로 중국 본토 출신 교수진이 홍콩 현지 출신 교수진보다 많아졌다.

영화 상영도 자유롭지 않다.

명보는 오는 4일 다큐 영화의 비공개 상영회가 예정됐던 한 극장이 '민감한 날'이라는 주변의 우려 속에서 고심 끝에 이를 취소했다고 1일 보도했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기념일에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열었다가 자칫 문제가 될까 염려했다는 것이다. 다큐는 엔터테인먼트업계에 관한 내용으로 알려졌다.

◇ 해체되는 정당…쪼그라드는 참정권

지난달 27일 홍콩 제2야당인 공민당이 창당 17년 만에 해산했다. 그 전에 이미 여러 군소 정당과 시민 단체, 노조들이 해산했다.

민주 진영에서는 이제 민주당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현재 입법회(의회) 의원은 한명도 없고 구의회 선거에서도 의원을 배출할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정부가 공직 선거 출마자의 자격 심사라는 장벽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월 민주당의 후원금 모금 행사는 행사 2시간 전에 강제 취소당했다. 행사 장소로 대관했던 식당이 갑자기 정비를 한다며 문을 닫아버린 탓이다. 지난해에도 유사한 일로 민주당의 기금 모금 행사는 취소됐다.

민주 진영 정당이 행사장을 빌리는 것도 어렵게 된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껏 해당 행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2021년 입법회 선거제가 개편되며 직선 의석이 줄어들더니 현재는 구의회의 직선 의석을 기존의 20%로 대폭 줄이는 개편안이 입법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홍콩인 민디(32) 씨는 "정치는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관심도 없고 TV도 보지 않지만, 점점 선택권이 사라진다는 게 슬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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