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19)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마이(MAI) 여인(하)
[연재칼럼](19)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마이(MAI) 여인(하)
  • 박재균 기자
    박재균 기자
  • 승인 2022.02.1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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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군기는 생명이다. 작은 냄새도 금물이다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적이 와 있으리라 판단되는 지점에서 별안간 ‘땅’하면서 총소리가 났다. 그것도 단 한발의 총소리였다. 그리고는 또 조용했다. 전방의 소대장에게서 무전이 왔다. 무전으로 두서없이 “중대장님 조용히 기다리십시요”하더니 또 감감 무소식이다. 전방이 안 보였으니 소대장이 하라는 대로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한동안 적막이 흐르면서 숨소리조차 크게 쉬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를 더 기다렸더니 소대장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전방을 확인하기 위해서 수색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총에 맞아 쓰러진 여자를 들쳐 업고 왔다.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고 키는 월남 여자 중키에 유난히 눈이 새까맣고 컸으며 검정색 아오자이를 아래위로 입고 대나무로 만든 모자를 쓴 채 머리는 기다랗게 늘어져 있었다. 전형적인 월남여자 모습이었으며, 나이는 23세. 두 아이의 엄마이며 이름은 ‘마이'(MAI)였다. 병사가 쏜 실탄이 엉덩이 바로 위 부위를 맞추고 여자 음부 바로 위로 관통해 나갔다. 총을 맞고는 무의식적으로 몇 미터 뛰어 달아났으나 엉덩이뼈가 부서졌는지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오물통이 함께 터졌는지 냄새도 고약했다. 얼굴이 하얗게 되어 무서움에 질겁한 채 와들와들 떨면서 “따이한”, “따이한” 하면서 연신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살려달라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죽은 적을 보는 게 낫지 여자가 재수 없이 이 모양이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재수도 없거니와 불길한 생각마저 들었다. 여자를 끌고 중대장호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내 호 뒤쪽에 여자가 들어갈 수 있도록 널따랗게 호를 파 눕히고, 하의 바지와 피가 흥건히 고여 있는 삼각팬티도 벗겼다. 여자의 본능인지 몰라도 상처부위를 벗기지 못하게 앙탈을 부렸다. 그래도 벗겼다. 여자의 앞부분은 엉덩이를 관통하고 앞으로 튀어나온 실탄에 의해 마치 어린애가 가지고 노는 종이 팔랑개비처럼 회전하는 방향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이미 핏덩이가 굳어 엉겨있는 상처 주변을 위생병이 소독약으로 깨끗이 씻고 압박붕대로 상처부위를 묶어주고 바지만 다시 입혔다.

우리의 내무반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우리의 내무반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전장군기는 생명이다. 작은 냄새도 금물이다

사격한 병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호에 엎드려 첨병을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여자가 불쑥 나타났다. 접근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첫 번째 호 앞을 지나서 두 번째 분대장 호 앞을 지나갈 무렵(이 분대장은 권총을 찬 후미의 장교를 사격토록 임명된 사람임), 이 여자가 별안간 걸음을 멈추고 무엇이라고 중얼거리더니 뒤로 돌아섰다. 그때는 적 본대의 선두조차 첫 번째 호 앞에 다다르지 않았을 때였다.

뒤따라오는 본대를 정지시키고 AK소총을 든 녀석과 함께 앞으로 와서는, AK소총을 든 적은 우리 배치선 반대방향으로 갔고 여자는 풀 속을 뒤지면 호 쪽으로 접근했다. 계속 호 쪽으로 접근하는데 쏠 수도 없고 안 쏠 수도 없는 판에 가슴을 쏘자니 포로가 죽어버리면 안되겠고, 살려 잡기 위해 다리를 쏘자니 움직여서 조준이 흔들리고, 여자의 음부 부분을 정면으로 쏴야 하는데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어 돌아서면 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앞으로 더듬더듬 뒤지면서 오더니 풀밭에서 측방으로 깔아놓은 크레모아 선을 잡더니 “꽥”소리를 지르며 자기 쪽을 보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돌아서서 달아나려고 하는 여자의 엉덩이를 조준해서 쏴 버렸노라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소대장에게 적이 접근한 소로를 따라 포복으로 접근, 전방 400~500m 정도를 수색해 보라고 지시하고 총을 쏜 병사가 있던 호 쪽으로 포반장과 함께 가보았다. 아무리 서서보고 걸어오면서 봐도 매복지점은 발견될 수가 없었다.

여자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월남어 통역병을 통해 최초심문을 해보니 두 아이의 엄마요, 마을에서 장사를 하며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 베트콩인데 밤에 찾아와서 군인들을 안내해 달라고 해서 따라나섰으며 남편도 같이 왔다가 달아났다고 했다. 같이 숲을 뒤지던 그 녀석이 남편이었다. 그 녀석 직책도 안내원이었다. 정확히 20명이 왔는데 인솔자는 보급을 담당하는 월맹정규군 장교였다.

어떻게 알고 숲을 뒤지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코를 가리키면서 ‘냄새’라고 답변했다. 빌어먹을 것. 모두 전장정리를 잘 했는데 그놈의 냄새에 대한 정리를 잘못한 것이다. 기가 막혔다. 떡을 입안에 넣고도 삼키지 못한 꼴이 되고만 것이다. 나머지 19명의 적은 모두 도망갔고, 그 적이 우리의 위치를 알고 도망을 갔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개망신이 아닐 수 없었다. 냄새 정리를 잘못한 대원에 대한 배신감과 내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막심했다.

냄새, 숲과 나무가 울창한 정글에서는 이 냄새가 한군데 모여서 오래 머문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건조한 곳에서는 곧 냄새가 상승하고 마는데 우리가 매복하고 있던 지역은 강 좌우이기 때문에 습기가 많아 공기가 무거워 공기 유통이 안 되고 냄새가 고이는 곳이었다.

더구나 아침에는 공기가 더워지기 전이라 정글속의 공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병사들은 밤새도록 걸어왔으니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겠는가? 우선 옷에 찌든 썩은 내 나는 땀 냄새, 이 냄새가 지독했다. 밤새 걸으면서 흘린 땀에다 진지 구축 시 수통의 물을 먹고 또 땀을 흘렸으니. 게다가 아침에 싸놓은 소변, 쉬지도 못하고 호 파는 주변에다 전부 실례를 했을 테니 그놈의 지린내가 얼마나 진동했겠는가? 대변에서 퍼지는 구린내, 잡초가 많은 지대라 대충 풀과 흙으로 덮었을 것이다. 이 구린내 나는 똥냄새.

원정선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원정선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다음엔 담배였다. 군장 검사 시 전부 조사해서 한 개비도 없던 것이 헤쳤다가 다시 모이면 전투화와 철모, 소총 손잡이와 빈 깡통, 심지어는 사타구니 속에 감추어서 온다. 행군 시 한 대도 못 피웠으므로 M16 소총 손잡이 속에 감추어 가져온 담배를 호 구축할 때 피워댔을 것이 분명했다. 이놈의 담배연기 냄새! 이런 냄새를 정글지역에서는 ‘인내’라고 하는데 한국군이 월남 사람이 다니는 지역에 가면 이 냄새를 금방 알 수 있듯이 이들도 역시 우리 냄새를 잘 맡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월남 여인은 흘러 펴진 냄새구역(Smelling Pocket)을 통과하다가 우리의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냄새를 추적해서 적의 위치를 발견하기 위해,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셔서 비교적 남자보다 감각이 예민한 여자를 첨병으로 세웠던 것이다. 적이지만 참으로 영리한 놈들이었다. 거의 십 수 km를 걸어오면서 인적이 없는 야생지역에서 숲 냄새, 흙냄새, 물 냄새 등을 맡으면서 새벽길을 걸어온 이 여자에게 발견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상황을 요약해서 대대에 보고했다. 부상으로 생포된 여자포로는 첩보가치가 없다는 내용과 이왕 들어왔으니 오늘 밤을 넘겨보고 철수 여부는 내일 아침에 재판단해서 건의를 드리기로 했다.

매복위치가 노출되어 매복 장소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적이 접근하던 쪽으로 추진하는 경우와 측방이동 또는 우리가 침투한 쪽으로 옮기는 경우를 놓고 숙고해 본 결과 적이 달아난 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 병사가 단 한발만 사격했기 때문에 총성으로 인해 우리의 위치가 노출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밤에 계곡 속에서 난 단 한발의 총성은 산울림 현상으로 어디서 난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적은 통신수단이 지극히 원시적이고 부족했기 때문에 상황 전파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망간 적들이 산속으로 들어가 보고하려면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나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빠른 시간 내에 자리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대대에서는 중대장 복안대로 움직이라는 지시와 포로는 가치가 없으니 따로 복잡하게 후송하지 말고 현지에서 응급처치와 최초치료를 잘 해서 내일 아침 상황에 따라 조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마이 아줌마는 적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며 단지 남편을 따라 나왔다가 ‘따이한’ 총에 맞았다며, 남편도 남편이지만 어린 두 자식을 생각해서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위생병 판단에 의하면 상처부위의 출혈은 처음보다 좀 적은 것 같았으나 내일 아침까지 도저히 이 여자의 생명이 지탱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저격을 피하기 위해서 나는 계급장과 명찰이 없는 정글복을 입었는데도 이 여자는 내가 중대장인 것을 눈치 채고는 “따이한 따위, 따이한 따위”(한국군 대위) 하면서 자기 좀 살려 달라고 했다. 지금은 나도 결혼해서 가정이 있고 처자식이 있어서 옛날과는 생각이 다르지만, 그 당시는 총각인데다가 소대장 시절을 정글에서 보내다 보니 성격도 꽤나 거칠어져 있었고, 살생을 해봐서인지 애걸하는 모습이 그냥 덤덤하기만 했다.

새로운 매복지점을 찾기 위해 약 600m 전진했을 때, 박격포를 올려놓기에 적합한 봉우리가 있는 지역이 있어서 그 곳에 자리를 정하고 빠른 동작으로 매복준비를 했다. 60mm 박격포반도 최초 위치했던 곳과 비슷한 봉우리에 자리를 잡았다. 적을 못 잡은 분대장과 대원이 이번에는 꼭 잡을 테니 최초 위치에서 다시 근무토록 기회를 달라고 하여 배치는 처음과 똑같이 했다.

낮에는 아무런 징후나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푸캇’비행장에서 이륙한 패텀 전투기만 몇 번 상공을 지나갔다. 계속 찾아대던 대대망 무전기도 가끔 이상유뮤만 묻고는 조용했다. 각 조에서 한 명씩만 근무하고 나머지 대원은 잠을 잤다.

자체 경계는 우리눈으로 이루어진다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자체 경계는 우리 눈으로 이루어진다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포로인 마이 여인의 처리가 보통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위생병이 새로운 매복지역으로 여인을 옮겼다. 중대장 뒤쪽의 위생병 호 옆에 별도로 깊고 넓은 호를 파고, 위장도 해 놓았다.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고 지혈은 되지 않았다. 옮기면서 다리가 움직이게 되니 출혈이 다시 심해졌다. 차라리 죽었으면 묻어버리면 그만인데 아직 살아 있는 목숨을 그대로 묻어버릴 수도 없었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다. 위생병에게 여자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항시 감독하고, 소리를 지르면 입을 압박붕대로 묶어버리라고 지시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경우에는 총소리를 내지 말고 그대로 묻어 버리라고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지나치다고 여겨지나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월남어 통역병이 위생병과 함께 공모하여 마이 여인에게 소화제를 지혈제라고 속여 먹이면서 용기를 주려고 무척 애썼다. 소리를 지르면 제일 먼저 당신부터 죽이지 않을 수 없으니 제발 조용히 참아달라며 오히려 통사정을 하였고, 내일 아침이면 우리가 철수할 때 헬리콥터로 한국군 병원으로 후송 보내주겠다며 안심시키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져 갔다. 밤을 위해서 특별히 몇 가지 준비를 해야 했다. 우선 포로를 잡기 위해서 야간조준경을 장착한 소총으로 접근로를 조준하면서 계속 감시토록 해야 했다. 낮에는 포로획득이 용이했지만 밤이면 야간조준경을 장착한 소총이 아니면 적을 생포할 수 없었다. 출발하기 전에 영점사격을 실시하여 예행연습까지 시켜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전 대원이 야간조준경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조준경이 없는 대원에게는 소로를 지향해서 야간사격 구역을 정확히 명시해 주어야 했다. 살상지역을 제외한 측방지역에서는 사격 후 달아나는 적을 살상하게 위해서 크레모아를 추가로 설치했으며 야간조명 시 병사들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흙으로 얼굴을 위장했다.

마이 여인은 먹을 것을 주어도 먹지 않고, 계속 헛소리만 중얼거리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는 위생병의 보고를 들은 후, 잠시 졸고 일어나니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명복을 빌었다. 소리를 지르는 것이 걱정되어 달래려고 지어준 소화제와 말라리아 예방약을 지혈제로 알고 먹은 가련한 여자, 소리를 지르면 너 먼저 죽일 수밖에 없으니 조용히 버티다가 내일 아침에 우리와 함께 헬기로 철수해서 한국군 병원으로 후송 보내준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아프다는 앙탈 한번 없이 고통을 꾹 참아준 마이 아줌마는 죽었다.

거머리를 막으려고 몸을 둘둘 말았던 판초우의와 함께 마이 여인을 땅에 묻었다. 23세를 한 생애로 가족도 남편도 시부모도 아이들도 없는 전쟁터에서 적군인 우리들의 옆에 누워 짧은 한 생애를 끝마쳤다. 이 여자가 과연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이 싸움에 뛰어들었을까......

나는 그 후 이 마이 여인의 죽음으로 많은 심적 고통을 받았다. 거리를 지나가다가 마이 여인과 비슷하게 생긴 여자만 보며 당시 그 여인의 애처로운 죽음이 더욱 생생하게 기억되고는 했다. 전방에서 대대장 시절, GOP에서 밤새 순찰을 돌고 지친 몸으로 새벽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잠을 자면 몇 번씩 꿈에 나타나 살려달라고 애걸하다가 별안간 드라큘라같은 귀신으로 변해 달려드는 바람에, 식은땀을 흘리고 헛소리를 지르다가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떨어진 일까지 있었다. 소위 가위에 눌리는 일이 많았다. 그 당시 대대장 주변의 근무병들은 그런 나를 잘 이해해 주었다. 꿈을 꿀 때는 아예 소주를 좀 마시고 잠을 자곤 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지금도 기억은 생생하나 그 고약한 꿈은 더 이상 꾸지 않는다.

제3포반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제3포반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포위 속의 공포

마이 여인이 숨을 거두자, 시작부터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일이 걱정되면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면서 좀 졸았을까, 이상한 소리에 정신이 바짝 들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60mm 박격포반이 위치한 봉우리 뒤쪽에서 꽹과리 소리가 나지 않는가? 등골이 싸늘하고 머리털이 솟으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맞은편 산과 계곡에서도 꽹과리와 피리소리가 들렸다. 고요한 침묵만이 흐르던 계곡이 요란스런 소리 때문에 산울림과 뒤섞여서 온 천지가 진동했다.

문득 전사 시간에 중공군이 함화공작(喊話工作)-중공군이 6.25때 북과 피리 등을 사용하여 아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려는 심리전의 하나-의 한 방법으로 피리와 꽹과리를 이용한다는 기억이 났다. 이것은 필시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전위행동이거나 다른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한 기만술책이라고 판단했다.

매복위치는 정말 잘 옮겼다.

대대장님께 상황보고를 한 후 중대 잔류인원에게는 필요시 중대기지의 물차를 타고 와서 강에서부터 우리의 철수를 엄호하도록 준비명령을 하달했다. 포병에게는 적의 꽹과리 소리가 나는 지역의 좌표를 불러주었고, 요청 시 포대별로 분산사격을 실시해서 동시에 제압시킬 수 있도록 조치했다.

꽹과리 소리가 뜸해지더니 이번에는 고함을 지르고 야단들이었다. “따이한, 따이한!”하면서 포위되어 오도가도 할 수 없으니 전부 손들고 나오라는 소리였다. 날더러 항복해서 투항해 오라는 소리였다. 한편으론 겁도 났지만 오기도 생겼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여기 와 있는 나보다 대대에서 더 야단들이었다. 한국군 중대장이 적에게 포로가 되는 날이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전병 녀석이 철없이 “우리는 지금 적에게 완전히 포위 되었습니다”라고 보고를 하였기 때문에 연대에까지 보고되어 연대장님이 상황실로 나오시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연대와는 거리가 멀어서 무전교신이 되지 않았으나, 대대를 통해서 연대장님 지시라고 포로를 안 잡아도 좋으니 필요하면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또한 이 밤중에 APC와 기타 병력을 투입해서라도 중대장을 구출해야 한다고 지시하신 모양이었다.

대대 작전과장이 ‘어찌하면 좋겠냐?’고 오히려 내게 물었다. 고맙기 한이 없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움직이다가 적의 역매복에 걸리는 날이면 우리 중대를 구출하기 위해서 오는 병력마저 큰 희생을 치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적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대로 밤을 버티기로 결심했다. 두세 번 계속 물어왔으나 야간철수와 구출작전 모두를 거부했다. 단지 출동을 위한 준비만 부탁했다. 적과 싸움이 시작되면 포사격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공포와 공황(恐惶)에 대한 통제였다. 매복 도중에 종종 있는 일로서 공포와 무서움에 시달리던 병사가 공황의 단계를 넘어서면 자제력을 잃고 벌떡 일어나 소리 지르며 호에서 뛰쳐나와 신음하면서 와들와들 떨거나 총을 마구 난사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는 날이면 그때는 큰일이다.

박격포 반장에게 병사를 달래고 자신감을 넣어주라고 지시한 후, 중대원이 배치된 호를 전부 기어 다니면서 엄지손가락을 펴서 네가 최고라고 표시해 주고는 어깨를 어루만져 주면서 적이 오면 실탄을 아끼라고 귀에다 대고 이야기했다. 어깨도 토닥거려 주고 코도 잡아당겼다. 그러는 사이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무전병은 중대장이 믿음직스러웠는지 바싹 뒤에 붙어서 신나게 따라다녔다. 내가 내 호로 돌아왔을 때까지도 그놈의 꽹과리와 고함 소리는 계속되었다.

우리가 적에게 밀려서 전장을 이탈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먼저 부상자를 빼내고 배낭과 식량은 버린 후 크레모아는 전부 터뜨리며 실탄과 수류탄은 적에게 한 발도 넘겨주어선 안 된다고 지시하였다. 60mm 포탄도 다 쏘아버리고 포신은 수류탄을 넣어 파괴해 버린 뒤 이탈하도록 지시했다.

통신 상태 점검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밤 10시경으로 기억된다. 전방에 적이 출현했다. 낮은 목소리로 “마이, 마이”하면서 우리에게 포로가 되어 죽은 마이 여인을 계속 불렀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도깨비에 홀린 것이 아닌가? 죽은 마이 여인의 한이 꽹과리와 함성으로 변신해서 이 골짜기를 시끄럽게 하고, 이제는 산귀신이 되어 나타났나’ 하는 겁도 나고 불안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중대원 역시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입이 바싹 바싹 말랐고, 호 앞에 작은 돌이 굴러 떨어지는 것이 마치 바위가 구르는 소리 같았다. 이때 나의 귀는 천리 밖의 소리를, 내 눈은 천리 밖의 적을 보고, 내 코는 천리 밖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만큼 아주 예민해 있었다. 계속 부르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죽은 여자의 남편이 틀림없어 보였다. 혼자 올리는 절대 없었고, 저놈 뒤에는 분명히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서 많은 병력이 뒤따라오고 있을지도 몰랐고, 우리의 사격을 유도해서 위치를 노출시킨 다음 곡사화기 세례를 퍼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이 사격에 대한 통제였다. 적이 코앞에 올 때까지 일체 사격을 금지시켰다.

우리가 매복지점을 거의 600m 정도 옮겼는데 잘 들릴 정도로 부르는 것을 볼 때 아마 저 친구는 우리가 자리를 옮겨 여기 있는 것을 잘 모르는 것으로 판단됐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갔다. 무서움에 떨어서 자제력을 잃고 소리를 지르거나 총을 난사하는 병사가 나올까봐 걱정이 되었고, 속이 바싹바싹 타고 피가 말라 들어가는 것 같았다.

별안간 전방에 섬광이 번쩍하면서 “꽝”하고 폭음이 터졌다. 크레모아 아니면 수류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더 이상의 총소리는 나지 않았으며 ‘마이, 마이’하며 부르던 소리도 멈추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초조와 불안 속에서 침묵의 몇 분이 흐른 뒤 소대장에게 ‘마이, 마이’ 부르면서 접근하던 적을 사살했다는 무전이 날아왔다.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적은 분명히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할 것이었다.

첫째는 우리를 유린하기 위하여 총공격을 할 것이다. 이 경우 적이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고 그런 무모한 짓을 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적이 공격해오면 크레모아와 수류탄을 동시에 사용하고 일제히 기습사격을 가한 후, 짐을 버리고 X반도와 소총만 휴대한 채 철수로인 강 속으로 뛰어들어 신속히 이탈해야 한다. 적이 아무리 소총사격을 가한다 하더라도 강 속이 지면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총을 맞을 염려 없이 안전하게 이탈할 수 있다. 설령 초기에 적과 접촉하더라도 적은 노출된 상태이고, 우리는 호 안에 있기 때문에 적보다 훨씬 유리하고 안전하다. 또한 교전 시는 크레모아와 수류탄으로 집중공격하고, 소총 기습사격을 가하면 최초 제파의 격퇴가 가능하며, 적이 재편성하여 다시 공격하더라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틈을 이용해 우리는 신속히 강 속으로 뛰어들어 이탈하는 복안을 수립했다.

두 번째는 곡사화기 사격을 가할 것이다. 섬광이 번쩍하면서 상황이 종료되었고, 주간에도 사격은 한 발만 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정확히 모를 것이다. 탄약보급에 엄청난 어려움이 있는 적이 정확한 위치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곡사화기 사격을 할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만일 적들이 사격하면 호안에 엎드리고, 내가 직접 우리 포병사격을 유도하기로 했다.

세 번째로 우리에게 접근한 적이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버티고 있다면 나도 소리 내지 말고 그대로 앉아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날 밤중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제6곡사포반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제6곡사포반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마이여인 남편의 죽음

자정이 넘어서면서 적의 꽹과리와 피리, 고함소리도 조용해졌다. 첫 번째 근무자가 있던 호로 살금살금 기어가서 병사가 주는 야간조준경을 들고 가리키는 방향을 뚫어지게 보았다. 불과 15m정도 떨어진 거리에 허리 아래가 동강 난 시체 하나가 비스듬히 나뒹굴어 있었고, 양 다리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병사의 말에 의하면 전방에서 ‘마이, 마이’ 하면서 사람 부르는 소리가 나기에 야간조준경으로 전방을 계속 주시했는데, 대나무바구니와 소총을 든 적이 소로의 좌우측을 확인하면서 접근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병사가 매설해 놓은 크레모아를 잡기에 순간적으로 그 병사는 크레모아 격발기를 눌렀고 그와 동시에 그 마이 여인의 남편은 허리부분이 두 동강 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분명히 우리가 자리를 옮긴 것을 모르고 다시 자기의 아내를 찾으러 왔던 것이다. ‘마이’여인이 총에 맞아 부상당해 도주하다가 쓰러졌던 지점을 이 근처로 알고 다시 찾아왔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마이’여인과 같이 월맹정규군을 이 산속으로 안내하다가 아침에 우리 병사가 쓴 총에 아내를 잃고 그대로 도주하여 산속 어디엔가 있는 그들의 소굴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 속에서 아내를 구출하고 복수하겠다는 적개심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밤이 어두워지자 대나무 광주리에 방망이 수류탄 몇 발을 얻어 담고는 소총을 들고 찾아 나섰던 것이다. 엄청난 증오심, 아내를 찾겠다는 열망이 죽음을 초월해서 나서게 했을 것이다. 비록 적이고 우리를 쏘기 위해서 이곳에 왔지만, 그의 죽음 앞에 경건히 조의를 표하고 저승에서나마 사랑하는 내외가 다시 만나 깊은 부부애로 행복하게 살기를 빌었다.

땅거미가 걷히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버틸 수 없었다. 새벽에 전장정리를 하고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시체 주변을 수색하고 전방을 확인했다. 약 40여 명의 적이 접근했다가 철수한 흔적이 있었고, 나무 뒤쪽과 흙더미 뒤쪽 굴곡이 있는 지표면에는 적이 엎드려 있던 흔적이 있었다.

밤새도록 서로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다가 적은 덤벼들 호기를 포착하지 못해 그냥 돌아가버린 것이 분명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군인이 충돌해서 코앞에 적을 두고도 싸우지 않았으니까......

‘마이’여인의 남편 호주머니를 뒤졌다. 지갑 속에 비상금 얼마와 가족사진이 나왔다. 그 사진은 환하게 웃는 ‘마이’여인의 모습과 함께 어린 아들과 딸의 모습, 넥타이를 맨 죽은 남자의 모습이 아니던가! 두 아이는 고아가 되었다. 지금 그 애들 나이는 24~25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광주리에는 방망이 수류탄과 미제 세열수류탄이 10발 정도 있었으나 한 발도 던져보지 못했으며, 그가 갖고 있던 AK소총에는 착검된 상태에서 실탄이 장전되어 있었다. 시체를 끌어다가 ‘마이’여인을 묻었던 자리를 파고 합장해 주었다.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 머리 쪽에 박아 놓았다. 시체를 찾아다가 장사를 잘 지내주라는 표시였다.

우리는 침투한 강을 따라 철수하기 시작했다. 철수 시 적과의 조우나 역매복에 대비하기 위하여 새벽에 중대기지에서 약 20여 명의 중대원이 개활지를 통과하여 강 하류 쪽에서 중대철수를 엄호토록 했다. 약 2시간 가까이 개울을 따라 철수했을 때 우리가 매복했던 지점에서 폭음이 발생한 것을 청취했다. 시체를 뒤지다가 시체 밑에 매설한 수류탄 부비트랩이 터진 모양이었다.

전진 또 전진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중대 엄호조도 중간에서 연결되어 중대기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포로를 잡으러 출동했다가 포로는 잡지 못하고 적 사살 2명, AK소총 1정, 구멍 뚫린 수류탄 몇 발을 노획하여 돌아왔다. 비록 얻은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얼마 없었지만 많은 전장교훈을 얻었다.

중대 식당에서 분대장급 이상이 모여서 이번 작전에 대한 자체 분석과 토의를 실시했다. 전장이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전술토의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이를 통해서 싸우는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전장에서의 상황전개는 적의 행동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안개 속에 있다. 따라서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활동하는 경우,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하여 끊임없이 예측해야 한다. 이 예측은 적 진술에 기초를 두고 판단해야 하며 아주 치밀하고 건전하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지휘관에게 정확한 예측능력이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전술적 지식이나 시간과 공간의 통제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 실패를 초래한다. 정보나 예측이 오리무중일 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거나 당황하지 말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적에 대해 기습효과를 달성할 수 있고 또한 성공의 확률도 훨씬 높기 마련이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아무리 과감하게 상황에 대해 조치하더라도 적에 대한 지식과 전장의 전투기술에 기초를 두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만용이 되고 만다.

다음으로 적의 심리적인 함화공작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이는 아군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최대로 조장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여 실제보다 병력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종의 기만작전이다. 이러한 심리전은 각급 제대에서 모두 사용하며, 2~3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기만조가 측후방에서 징, 꽹과리, 북, 나팔, 피리, 함성, 횃불 등을 이용, 주력 부대의 행동인 것처럼 기만하여 정상적이고 건전한 판단을 못하도록 만든다.

이에 대한 최상의 대책 역시 적 전술에 대하여 충분한 교육과 예행연습을 통해 감각을 숙달시켜야 한다. 병사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무감각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 정도로 되려면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작전에서도 심야에 적들이 꽹과리, 피리, 징, 함성 등으로 우리를 기만하고 유인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지만 중대원이 동요하지 않고 중대장 명령대로 차질 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출동하기 전, 유사한 상황 하에서 예행연습을 하면서 전개될 상황을 미리 예측했고 공포와 불안이 엄습해 오는 심야에 직접 각 병사의 호를 기어 다니면서 격려한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사격에 대한 통제이다. 주야매복에서 성공의 열쇠는 적의 첨병을 통과시키고 본대를 살상지대까지 유인하여 대량으로 기습사격을 함에 있다. 불필요한 사격을 하거나 첨병을 보고 놀라서 사격하는 경우는 본대를 놓치게 되고 실탄을 쓸데없이 낭비하게 된다.

포로획득 작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 실패를 통하여 차기 작전 시에는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했다. 단지 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남편을 따라 나섰다가 전장에서 희생된 ‘마이’여인과 아내를 구하려다 쓸쓸한 초원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친 그의 남편에 대한 인간적인 죄책감이었다. 희생된 부부의 저승에서의 해로와 명복을 간절히 빌면서 ‘마이’ 여인 두 자녀의 훌륭한 성장을 바란다. 당시 전투를 수행하는 중대장직에 있었던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위하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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