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18)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마이(MAI) 여인(상)
[연재칼럼](18)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마이(MAI) 여인(상)
  • 박재균 기자
    박재균 기자
  • 승인 2022.02.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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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생포하라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나는 1965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지금까지 25년 넘게 군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임무를 수행해 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고 기억되는 임무는 눈뜨고 멀쩡하게 살아있는 적을 생포해 오는 일이었다.

1969년 10월경이다. 내가 소속되어 있던 맹호사단에서는 월남군 작전지역과 접해 있는 북쪽의 산악지대에 많은 적이 활동하고 있어서, 연대 또는 사단규모의 작전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과연 이 첩보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작전에 투입될 부대규모를 결정하고, 작전지역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 대한 적정과 지형을 판단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첩보수집이 요구되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겐 특히 계급이 높은 포로가 필요했다. 바로 이 첩보수집과 포로획득 임무가 우리 중대에 하달되었던 것이다.

원래 우리 중대가 위치한 지역은 주월 한국군 중에서도 가장 북쪽이었으며, ‘루시엠(Lusiem)’강을 전투지경선으로 하여 월남 정규군과 인접해 있었다. 원래 부대와 부대간의 전투지경선 근처에는 상급부대 지휘관의 입장에서 보면 거리가 멀뿐더러 관심도 적었기 때문에 대부분 많은 취약점을 갖고 있었다. 이 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적의 움직임이 많았다. 우리 한국군보다 기동력이 열세인 월남군은 전투지경선 지역에 대한 수색활동이 적극적이지 못하여, 우리나라의 폭이 큰 하천 정도에 불과한 ‘루시엠’강 건너편에는 활동 중인 적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지역을 황금밭이라고 불렀다.

우선 어디를 가야 적을 잡을 수 있을까? 적도 똑같은 군인인데다, 두 눈을 뜨고 총을 갖고 있는데 생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대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 본 결과 먼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자는 결론이었다.

강 건너 월남군 담당지역엔 산세도 험했지만 웅크리면 밤톨만한 검은 산거머리가 많았다. 이놈은 나무위에 붙어 있다가 땀 냄새나 동물 냄새를 맡으면 땅으로 툭 떨어져서 슬금슬금 기어와 피를 빤다. 입 빨판에 마취제가 섞여 있어서 빨아댈 때 느끼지를 못한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징그러웠으나 이놈이 있음으로 매복요원이 잠에 빠져들지 않았고, 근무자는 거머리 공포 때문에 기어들어오는 거머리를 적보다 더 지겨워했으니 중대장인 내 입장에서 보면 잠을 쫓아주는 감시병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오히려 유리한 조건으로 판단하였다.

수중에서 은신 중인 적을 추격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수중에서 은신 중인 적을 추격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천혜의 정글지역에는 나무숲이 울창하여 해만 지면 바로 밤이 되었고 행동과 주야 관측이 제한되었다. 특히 밤에는 별빛조차 차단되어 우리가 갖고 있던 야시장비인 야간투시경(starlightscope)으로도 잘 보이지 않았으며, 사격을 하더라도 움직이는 적이 가까이 있어도 나무에 가려 명중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계곡의 개활지 지역을 포로포획 지점으로 선정하였다.

개활지 역시 산속과 같이 제한사항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갈대와 비슷한 풀들이 무성하여 주야로 관측에 제한을 받았으며, 호를 파고 들어가게 되면 주간에도 10m정도의 거리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개활지는 비교적 산속보다 관측과 사격이 용이했고, 유사시 최저표척사가 가능하며 살상지대의 폭넓은 구성과 상호지원 및 지원부대의 접근이 수월한 점 등 많은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들어가려고 하는 ‘캇숀’계곡은 폭이 약 1~1.5km에 길이가 약 10km로서 양쪽 계곡의 산세가 험하고 높아서 개활지가 완전히 관측되었기 때문에 매복지점이 적에게 발각되는 날이면 적의 박격포 및 직사화기 세례를 받게 되고, 적이 독한 마음만 먹으면 우리를 섬멸시킬 수도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디로 어떻게 침투할 것인가?

침투로를 선정하는 데는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극복해야만 했다. 첫째는 침투 도중에 적과 조우해서는 절대 안 되었다. 적을 사살하든가 우리 측에 사상자가 발생하면 기지로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며, 더욱 곤란한 것은 총성으로 인해 우리의 활동이 노출되기 때문에 적이 활동을 제한한다거나 경계를 철저히 하면, 출동 목적인 포로획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침투로는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적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 침투로를 선정해야만 했고, 적이 우리가 침투하리라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침투해야만 했다.

두 번째 극복해야 할 문제는 우리 자체의 문제로서, 이동 간에 발생하는 행군 소음을 어떻게 없애느냐 하는 것이었다. 중대기지에서 매복지점까지는 약 10km로서 주간에 정상적인 행군을 하더라도 약 3시간은 족히 걸렸는데, 야간에 이동하면 날이 밝아야 매복지점에 간신히 도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매복 준비시간이 없게 되고, 자칫하면 적에게 발각되기 때문에 매복준비 시간을 최소한도로 잡더라도 먼동이 트기 한 시간 전에는 반드시 매복지점에 도착해야 했다.

빠르게 이동하자니 소음이 생기고, 완전히 은밀침투를 하자니 시간이 부족하고 매복 준비시간에 제한을 받았다. 총 멜방에서 생기는 덜그덕 소리, 수통에 매달은 정수제 달그락 소리, 조심성 없이 내딛는 군화소리 등 적막하고 고요한 들판에서 아무리 조심을 시켜도 발생하는 이런 종류의 소음은 극복하기 매우 힘들었다. 어쨌든 포로를 잡기 위해서는 소음을 극복하고 적과 조우를 피하는 한편, 매복 준비시간을 충분히 보장받기 위해 어느 정도의 모험은 감수하기로 했다.

중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작은 강이 흘렀고 그 강은 산속으로 올라가다가 우리가 침투하려는 매복지점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강을 따라 침투하기로 했다. 강을 따라가게 되면, 강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때문에 조심해서 걸으면 우리의 이동소리를 은폐할 수 있었고 조우도 피할 수 있었다.

출발시간은 매복준비 완료시간을 고려해서 선정해야 했다. 최소한 새벽 5시까지는 매복준비가 완료되어야 적에게 관측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추어서 기지 출발시간을 결정했다. 이동시간, 전투준비시간, 그 외의 어떤 지체시간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감안하여 석식 후 밤 8시부터 이동하기로 하고 출동준비를 했다.

시누크로 포 공중 이동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시누크로 포 공중 이동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정확한 매복지점은 어떤 곳에 선정하나?

매복지점 선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습을 달성할 수 있는 지점을 잡아야 하고, 적이 반드시 통과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목을 선정하되 살상지대 구성이 용이하며, 아군의 개인 및 공용화기의 화력집중이 가능하고 퇴로 차단이 용이해야 한다.

강가에는 대나무와 잡목이 무성하여 우선 은신하기가 용이했고, 주야를 불문하고 물소리가 있어서 우리들의 행동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은폐시킬 수 있었으며, 특히 적과 접촉 시 우발적으로 긴급히 철수할 때나 중대로 복귀 시 침투해 들어온 강을 이용하면 주간에도 적에게 관측당하지 않고 신속히 움직일 수 있었다. 적진 속 계곡에 들어와 있으면 산 위의 적으로부터 관측되어 박격포 세례를 받는 것이 제일 큰 위험요소였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몸을 숨길 수 있는 강가가 제일 적소였다.

통상 야간매복을 나갈 때는 즉각 조명을 위해 수타식 조명탄만 휴대하고 나가는데, 이번에는 자체 생존을 위해 60mm 박격포를 휴대하기로 했다. 포탄은 고폭탄과 조명탄을 포함하여 각 개인이 배낭 속에 한발씩 휴대했다. 개인당 크레모아 한발, 수류탄 두발, 식량은 배낭무게 때문에 2박3일분을 휴대하기로 했고, 필요시 매복이 연장될지도 몰랐기 때문에 과자류는 전부 빼고 주식인 육류 중심으로 휴대하여 4박5일 이상 버틸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중대장의 군장검사가 끝나고 잠시 휴식을 하는 사이에 분대별 또는 개인별로 전투 시 필요한 물품을 더 휴대하고 출동했다. 예를 들면 수류탄, 크레모아, M16 실탄 등을 규정보다 더 많이 휴대하고 출동했다. 적과 교전 후 탄약이 소모되어도 즉각 재보급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야간의 경우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밤을 버티게 되면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것은 인접 전우와 자기 자신이 휴대하고 있는 총과 실탄뿐이기 때문에, 군장검사 시 휴대하고 나왔던 장비나 탄약류를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남모르게 덜어 놓고 나가는 행동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요즈음 부대에서 실시하는 천리행군이나 동계 행군 훈련 시, 많은 사람들이 배낭 속에 내용물을 가볍게 해서 행군 시 짐이 무거워 고생하는 것을 피하려는 모습이 가끔 발견된다. 그것은 적과 교전이 없기 때문이다.

적을 생포하기 위해서 매복자리를 정한 후, 중대기지에서 군장검사를 마치고 중대의 작은 연병장에서 매복지역과 유사하게 지형을 그려 놓고 실제 매복하듯이 병력과 화기를 배치해 보았다. 현지 지형을 가상하고, 지역에 예상되는 적정과 적의 접근로, 우리가 정한 예상 살상지역과 예측되는 각종 상황전개 등을 잘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첫째는 현지에 가서 생기는 어둠 속에서의 혼란을 예방하고, 둘째는 시간 절약은 물론 여러 가지 사항을 사전에 예측해 봄으로써 마음의 준비와 상황에 알맞게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다.

쌀을 분배받고 웃고 가는 여인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쌀을 분배 받고 웃고 가는 여인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적이 접근하는 방향에 따라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 적에게 위치가 노출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분대, 소대의 대략적 위치는 어디에 할 것인가? 살상지대는 어디에 설정할 것인가? 각 화기의 위치는? 적에게 박격포 사격을 받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 모든 예측되는 사항을 전부 들추어내서 출동하는 대원들과 워게임을 해보아야 한다. 적 앞에서 활동 시의 과오는 실패를 의미하며 작은 과오가 작전 자체의 실패를 초래함은 물론, 죽거나 부상당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최선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기지에서 강까지의 개활지만 무사히 통과하여 강 속으로 들어가면 적에게 발견되지 않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것으로 믿고 야간이동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출동한 인원은 2, 3소대장이 각각 2개 분대씩, 60mm 박격포 1개반, 중대본부 등 합쳐서 50여명이었고 중대기지는 화기소대장이 맡아서 지휘하기로 했으며, 인접해 있는 155mm 포대에 연락하여 기지방어 및 화력지원에 대한 세부적인 협조를 모두 마쳤다.

중대기지 근처에 위치한 마을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무 없는 개활지는 피하고, 나무숲과 풀숲을 따라 강 쪽으로 이동해 갔다. 떠나기 전에 그토록 단단히 주의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배낭속의 깡통 삐걱거리는 소리, 총 부딪치는 소리, 군화소리 등 온갖 소음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집합시켜서 또다시 교육을 시킬 수도 없고......

이제부터는 강을 따라 접근해야 했다. 강가 대숲에서 잠시 쉬면서 본대의 엄호조 3명을 먼저 강 건너로 보냈다. 소형 무전기를 휴대하고 물속을 기어가듯 건너가더니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중대는 강을 따라 전진을 시작했다. 강 양편으로 3명 1개조로 된 엄호조가 본대보다 약 20~30m 정도 전방에서 물속의 본대를 보호 및 유도해 주었고, 강을 따라 전진하는 본대도 강 양쪽으로 전개하여 서로 상대편 전진부대의 머리 위쪽을 경계해 주면서 전진하였다. 중대장인 나도 강을 따라 본대와 행동해 보았더니 처음 생각했던 대호 침투의 성공률은 높을지 몰라도 일단 상황이 발생하면 지휘통제가 힘들 것으로 판단되었다.

예상대로 전진속도는 느렸으며, 시간당 2km이상 전진해야 하는데 깊은 소(沼)가 있는 지역이나 바위지역에 봉착하면 잠시 정지하여 한 사람씩 장애물을 극복하자니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되었다. 더구나 중대장을 초조하게 만든 것은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앞뒤의 병력들이 한 곳에 오물오물 모이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손짓으로 정리를 했다. 본대의 전진속도는 늦어지는데 엄호조는 정지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니 이에 대한 통제도 쉽지 않았다. 전진속도가 늦다고 해서 이제는 뭍으로 올라갈 수도 없었다.

엄호조 전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개활지로 올라가면 엄호조에 의해서 사격당할 위험마저 있었다. 아군끼리 교전이 발생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감은 물론, 중대원들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낙인찍혀 부대지휘도 못할 정도로 크게 창피를 당하게 될 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걱정하던 적과의 조우도, 엄호조와의 오인도 일체 발생하지 않았고 계획한 대로 새벽 4시경 매복 지점에 무사히 도착했다.

야자수에 덮인 제2포대 정문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야자수에 덮인 제2포대 정문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적을 생포하라

도착해 보니 예상했던 대로 풀이 너무도 무성하여 매복지점 선정이 용이하지 않았다. 강폭도 좁아져서 폭이 5~7m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수량도 적었으며 계곡이라 물 흐름도 완만했다. 주변을 수색해 보았더니 강 양쪽은 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길이 반들반들하게 나 있었으며 강가에는 대나무 및 잡목이 우거져서 은신 매복하기에는 좋은 장소였고, 소로의 흔적과 상태로 보아서 먼동이 트면 곧 적의 왕래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밤을 이용하여 마을에 다녀오는 적이 있다면 먼동이 트기 전에 반드시 통과할 것이므로 양쪽 소로에 고참병을 중심으로 경계병을 배치하는 등 부지런히 매복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통상 적의 첨병은 말단 사병이나 안내원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첩보를 갖고 있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여 첨병은 그대로 통과시키고 본대를 습격하기로 했다.

적이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살상지대에 적의 중심제대가 들어오면 엉덩이 아랫부분을 쏴서 쓰러뜨리고, 반항하지 않는 이상 확인사살이나 제 2탄, 제 3탄의 사격을 못하도록 철저하게 사전교육을 했다. 또한 통로별로 살상지역의 최초 사격자를 분대장 급에서 임명하고, 소대장은 전체적인 지휘를 위해서 최초사격을 못 하도록 했다. 휴대하고 간 박격포는 지형 여건상 관측소와 사격진지를 따로 운영하지 않고 우리가 위치한 좌측의 산 능선 돌출부에 위치시켰다. 적의 접근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하여 박격포 반원에게는 관측요령에 대한 많은 준비를 시켰다.

통상 우리가 배운 관측요령은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좌에서 우로, 의심나는 곳은 중첩해서......등 원칙적인 점도 중요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소로가 계곡을 따라 종으로 나있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횡적 소로망도 거의 없을뿐더러, 지역 전부가 원시림이요 잡초가 무성하여 소로가 아닌 곳은 사람이 다닐 수 없었다. 설령 적이 접근하고 있다 해도 자세히 관측하지 않으면 아무리 산 위에서 내려다보더라도 큰 나무와 키를 넘는 숲을 통해 적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을 발견하고 보고 후 준비시간까지 포함하더라도 10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중대의 매복지역에서 500m정도 떨어진 곳의 소로지역을 선정, 쌍안경 두 개를 이용해서 두 명의 병사가 고정감시토록 했다. 나무와 풀이 키를 넘는 이런 숲속에서는 움직이는 적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매복지점에서 가까운 소로 상에 쌍안경의 초점을 고정시켜 놓고 감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매복작전 시 장애물 구축에 관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통상 주야를 막론하고 장애물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의해야 할 사항은, 장애물 설치로 인해서 매복위치가 노출당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로 조명지뢰를 설치하는데 야간에 설치하였다가 주간으로 전환되기 직전에 제거하고 밤이 되면 다시 설치하는 것이 현명하다. 가끔 야간에서 주간매복으로 또는 주간에서 야간으로 전환 시 부주의로 터뜨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의 경우 조명지뢰는 일체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적이 밟아 터뜨리든, 우리의 실수로 터뜨리든 적의 안방에 들어와 앉아 있는 우리로서는 위치 노출로 인한 포탄세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경험 없는 초급지휘자들은 적의 접근을 조기에 경보한다는 생각에서 적 예상접근로나 계획한 살상지대 중앙에 조명지뢰를 설치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통상 소부대 전술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나면 거의 습관적으로 사계청소를 실시한다. 이는 정규전에서 방어 시 적 포병의 공격 준비사격, 항공기 공격, 박격포 사격 등으로 방어진지가 혼란하고 어수선한 상황이라든가 이미 진지가 적에게 노출되어 돌격부대가 진지에 돌입하는 그러한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사계청소를 해야 하지만, 이번과 같이 정밀매복을 실시하는 경우, 과도한 사계청소는 야간에는 문제가 없지만 주간매복으로 전환 시 주위환경과 조화가 되지 않으므로 적 첨병에 의해서 발각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시들어 버린 나뭇가지나 풀도 정리되지 않으면 적 첨병에게 곧 발각되므로 사소한 것이지만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용머리 5호 작전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용머리 5호 작전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마이(MAI)여인의 출현

매복준비를 거의 먼동이 트고 난 새벽 5시 반 정도에 마무리가 되었다. 한 시간 남짓할 동안 위치 선정에서부터 호파기까지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조였는지 모른다. 전혀 전투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가장 취약한 시간이라 준비도중에 제발 조우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경계병을 철수시키고 나니 전투준비가 다 끝나 어느 정도 안심이 되면서 어떤 적이든 올 테면 와보라 하는 자신감이 새로워졌다.

각 호별로 근무하면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부는 가면(假眠)을 취하면서 주간 매복근무에 들어갔다. 포로를 잡기 위한 준비를 내 나름대로는 다 했다고 생각했다. 과감하게 조명지뢰는 한 발도 설치하지 않았으며 기타 측면 방호나 경계를 위한 장애물도 일체 설치하지 않았다. 크레모아 또한 살상지대(포로획득 지역)에는 한 발도 설치하지 않았으며 살장지대 전후로 하여 적의 접근방향에 따라 바깥쪽으로만 설치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무모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적의 첨병을 쏘는 병사는 가장 비겁한 행동이라고 교육도 철저히 시켰다. 피아 공히 첨병은 어렵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므로 비록 적이라 하더라도 그의 용감성과 희생정신을 존경해야 하며 절대 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교육시켰다. 장교나 지휘관을 포로로 획득하기 위해서 짐을 짊어지거나 AK소총 또는 공용화기를 소지한 자는 쏘지 말고, 권총을 휴대했거나 전투복을 입었으되 군복이 깨끗한 사람을 골라서 쏘도록 했다.

대대와 협조한 후 155mm 포대를 포함하여 사거리가 미치는 포병으로 하여금 각종 상황에 맞는 화력지원 계획을 수립하였고, 유사시 탈출을 위해서 우리가 침투할 때 이용한 강을 따라 탈출로와 재집결지도 선정한 뒤 미리 교육시켰다.

아침 햇살이 몹시도 따가웠다. 정글화를 벗어서 햇볕에 말리고 퉁퉁 부은 발가락도 말렸다. 호 안에서 다리를 쭉 펴고 드러누웠다. 옆 능선의 뾰족한 돌출부에 올라가 있던 화기소대 60mm 박격포 포반장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이 왔다. 약 2km 전방에서 강 옆 소로를 따라 수 명의 적이 우리 쪽으로 이동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쌍안경으로 500m 지점을 고정감시 하면서 강을 따라 전방을 관측한 결과, 풀이 이상하게 흔들리기에 자세히 따라가면서 살펴보니 사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미 기지에서 출발하기 전, 월남군부대와 협조했기 때문에 우군일리는 없으니 적이 분명했다. 약 20여 명으로 맨 앞의 첨병과 본대와의 거리는 약 10~20m 정도이고 개인간격도 전술적으로 유지하지 않은 채 마음 놓고 접근한다는 것이었다.

산 위에서 운동장의 축구 중계방송 하듯이 보고해 왔다. 본대는 짐을 진 사람이 많고 일부는 짐을 지지 않았으며, 정규군 복장에 AK 소총을 휴대하고 권총을 찬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다. 권총을 찬 녀석은 접근하는 쪽의 분대장이 사격하도록 하고 만일 실패 시 다음 매복조에 선임하사가 위치하고 있으므로 그에게 쏘도록 지시했다.

우거진 정글과 늪지로의 이동은 오뚜기를 이용한다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우거진 정글과 늪지로의 이동은 오뚜기를 이용한다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산 위에서는 다시 “400m 전방, 300m 전방, 200m 전방, 100m전방”하면서 중계를 계속했고, 100m 전방에 왔다는 보고와 함께 사격준비를 위해서 무선중계를 끝냈다. 이제 수 분 내에 상황이 전개되고 ‘탕탕탕’ 총소리가 나면 불과 몇 초 사이에 전투가 전부 끝난다. 죽을 녀석은 죽고 살 녀석은 살아서 도망가게 된다. 긴장된 순간이 흐르면서, 소총을 잡은 손은 떨렸지만 소로를 향한 M16 소총의 조준구가 매섭게 표적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 분이 흘러갔다. 소로를 응시하면서 한 순간 한 순간 지나갈 때마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기대와 사람을 죽인다는 두려움마저 엄습해왔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100m 전방까지 왔다는 적이 나타나질 않는다. 적이 오다가 별안간 방향을 바꾸었나? 우리의 매복진지가 노출되어 도망가고 있는가? 아니면 전방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여 무엇을 확인하고 있는가? 별의별 생각이 다 나면서도 도대체 상황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코앞에 적이 있으니 무전기로 ‘소대장, 분대장’을 부를 수도 없었고, 큰 소리로 적이 어디 갔느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중대장인 나로서도 뾰족한 대책이 만무했다.

‘수색을 해야 하나? 사격을 해야 하나? 예상되는 적의 위치에 박격포 사격을 할까?’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러나 적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접근하고 있는 이상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방법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기다리기로 했다. 나도 소대장도 박격포 반장도, 옆에 긴장하고 엎드려 있는 전령도, 무전병도, 숨죽이며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모두 중대장의 명령이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적이 준동하는 지역에 왔다 뿐이지 적보다 훨씬 유리한 상황에 있고 더구나 우리는 호를 파고 그 속에서 기다리고 있으며, 적은 완전히 노출되어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 처지는 불리하지도 겁을 먹을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것 자체를 즐겨야할 판이었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과 공포 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지나 않는지, 두려움 속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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