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12)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구사일생
[연재칼럼](12)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구사일생
  • 박재균 기자
    박재균 기자
  • 승인 2022.01.24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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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 죽다가 다시 살아났다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중대가 진출한 전초진지인 166고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적에게 노출되었다. 고지를 중심으로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전을 하려고 했으나 근무교대와 더구나 동굴 내에서만 생활할 수 없는 병사들이 출입하다보니 노출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간의 기간이 지난 후에는 아예 적에게 노출된 것으로 간주하고 교통호 , 개인 유개호, 취침호 등을 준비해놓고 81mm와 60mm 박격포 및 57mm 무반동총을 166고지에 올려놓았다. 마대를 쌓아서 관망대를 지어 놓고 기관총을 거치하여 주야간 근무자를 배치해 두었다.

60mm와 81mm 박격포는 정확한 지원사격을 하도록 사정거리 내에 여러 개의 화집점을 선정하여 주간에 사격연습을 시켰기 때문에 직사화기만큼 정확하게 포탄이 떨어지도록 훈련되었고, 기관총사격을 위해 말뚝을 박아 놓고서 주야 예행연습까지 시켰다. 그래서 소로의 교차로 및 저명한 지형지물에는 눈을 감고 쏘더라도 거의 정확히 실탄이 날아갔으며, 이를 기점으로 전후좌우 필요한 곳에 사격을 할 수 있었다.

지역 내에 있는 미군전투기 비행장에서 사람을 탐지하는 레이더와 미군 두 명도 올라와 우리와 함께 근무했다. 이 레이더는 우리 매복조를 야간에 지원하는 데 효율적으로 이용되었고 움직이는 적이 포착되었을 경우 따라가면서 박격포 사격을 했다.

기지방어를 위해서 유개호를 준비해 두고 적이 공격을 하기 위해 포사격을 할 때는 전원이 호안에 들어가서 대피한 뒤, 적이 철조망에 달라붙을 때 기습사격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연습시켰다.

적은 주로 박격포만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 박격포 사격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으며 또한 적이 방독면을 제대로 보유하고 있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풍향을 이용한 가스공격을 하도록 준비했다. 바람의 반대 방향에는 최루탄을 터뜨려서 방독면을 쓴다든지 ‘쿨럭’ 대는 사이를 이용해 모두 두들겨 잡을 작정이었다. 유사시 기지방어가 어려울 때는 포병 진내 사격을 할 수 있도록 진지도 견고하게 구축해 두었다.

적의 기습공격은 큰 산과 연결되어 있는 능선을 따라 내려올 것이 틀림없었으므로 매일 일개 분대규모가 주야 매복 또는 수색정찰을 실시했으며 조명지뢰를 설치하기도 했고 능선 접근로 상에 불모지대를 몇 군데 만들어 적이 지나간 흔적을 확인해왔다.

관망대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이 166고지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산 위에서 적의 움직임을 내려다보면서 산 밑의 매복조에게 전투를 유도해 주기도 했고, 때때로 고지에서 뛰어 내려가 길목에서 적을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적을 두들겨 잡기도 했다. 우리 매복 자리로 오지 않는 적은 포병사격을 유도하여 달아나는 적을 따라가면서 포탄 세례를 퍼부었다. 그러고 나서 중대원들이 추격한 후 기습공격을 했다. 또한 밤이면 레이더에 포착되는 즉시 박격포를 쏘아 적이 출현한 지역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적의 목을 잡고 있었으며, 적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목구멍의 가시였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지하막사 지붕 위에서 중대원과 바둑인가 장기인가를 두고 있었다. 맨발에 반바지만 입고 뙤약볕에 아래서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적의 접근로라고 판단하여 경계를 하고 있던 능선 너머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더니 고지하단부에서 ‘쨍’ 하고 무엇이 터졌다. 계속 “쿵”하면 ‘쨍’ 하고 터졌다. 그리고서 밑에서부터 점점 위로 올라와 드디어는 철조망 근처에서 터졌다. 포탄이 터지니 병사들은 전부 호 안으로 대피해버린 뒤였다. 심지어는 관망대에 거치해 놓았던 기관총 사수조차 총을 놔두고 호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대장은 관망대 밑의 탄약고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날 보고 발리 호안으로 들어오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적의 포탄은 계속 날아왔고 철조망 주위와 지하막사 위의 마대에서 마구 터졌다. 나는 박격포사격을 지시하고 관망대의 기관총 진지로 뛰어 들어갔다. 적이 포를 쏘는 자리에서 포연이 동그랗게 만들어져 피어올라왔다. 그곳에다 대고 박격포사격을 지시한 후 나는 기관총을 갈겨댔다. 거리는 약 1200m로 정도로 잘 쏘면 기관총 실탄이 날아갈 수 있는 거리였다. 예광탄 비행을 보면서 계속 쏘아댔다.

그런데 별안간 “쨍”하는 소리가 났고 눈앞에서 뭔가가 번쩍한다. 직견탄이 날아와서 관망대 전면 벽 중앙에서 터졌다. 관망대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나는 기관총과 함께 마대더미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박격포 진지에서 탄약을 까주던 병사들의 소리가 들렸다.

“중대장님이 맞았어!”

“중대장님이 포탄에 쓰러지셨어. 야. 이 새끼들아, 빨리 와봐. 위생병 빨리 와!”

떠드는 고함소리를 어렴풋이 들으면서 나는 포탄에 맞아 죽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중대원이 ‘중대장님, 중대장님!’ 소리소리 지르면서 마대를 걷어내고 나를 안아 일으켰다. 그때까지 나는 멍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병사들이 무조건 나를 들어다가 호안으로 끌고 들어갈 때에도 내가 지금 살아있는지 죽은 것인지, 아니면 어디를 다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병사들이 놀라서 아우성치는 바람에 나는 어디가 부러졌거나 다쳤는지 알았다. 맞은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 병사들이 바지를 벗기는 바람에 나는 졸지에 발가벗겨졌다. 옷을 안 입고 맨발에 반바지만 입고 있어서 몸에 찰과상을 입었다. 피가 나는 곳에 총알이나 파편이 박혔나 확인하려고 병사들은 야단법석이었다. 나는 그때 우측 어깨에 기관총과 부딪히면서 살이 푹 팬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

적의 직격탄을 맞고 무너졌던 166고지 정상의 관측소. 다시 보수하였다.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시간대를 예측할 수 없도록 수색은 불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왜?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적의 포탄세례를 받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첫째는 오전에 수색을 하면서 능선지역을 세밀하게 확인했지만, 그때까지는 아침식사 후 고지에서 수색을 나가든지, 또는 매복을 나갔던 병력이 아침식사 능선일대를 수색하면서 고지로 철수하는 식이었다. 주로 오전에 활동했고 오후에는 야간근무와 매복을 위해서 활동을 안 하고 잠을 잤다.

우리가 조식 후 규칙적인 시간대에 움직인다는 사실을 적이 놓칠 리 없었다. 우리 병력이 오전에 수색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을 숨어서 보고 있다가 적들은 오후에 고지 가까운 곳까지 와서는 사격을 하고 달아났다. 시간대를 예측할 수 없도록 수색시간을 불규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아주 평범한 전술 상식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로는 오전과 오후를 번갈아가며 고지군 일대를 수색하여 적의 기습사격을 예방하도록 노력했으며 그 후 다시는 포탄세례를 받지 않았다.

둘째는 중대기지에 국기게양대를 높이 설치해서 대형 태극기를 게양시켜 두고 시간에 맞추어 게양식과 하기식을 하면서 애국심을 고취하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었다. 바로 그 대형 태극기가 적에게 정확한 표적의 위치를 제공해준 것 같았다. 전술 상황 하에서는 이런 점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내가 교육시킨 대로 적의 포탄이 떨어지자 전부 호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으며, 다행히 박격포 진지에도 포탄이 떨어지지 않아 다친 사람은 없었다. 포상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즉각 사격한 두 명의 병사, 적 포탄이 주변에 떨어지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침착하게 박격포를 조준해서 계속 사격을 가한 믿음직스런 나의 병사들. 나는 그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가슴깊이 솟아오르는 고마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교통호 작업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소대장에게 2개 분대의 병력으로 능선을 따라 신속히 달려가서 포를 쏜 적들을 습격하라고 지시했다. 적들은 우리 병사들의 즉각적인 반격 사격과 동시에 우리 중대원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는 박격포탄과 무반동총탄을 그대로 남겨둔 채 달아나 버렸다.

나는 그 때 죽다가 다시 살아났다.

내 몸이 가루가 될 뻔했는데 천운이 나를 보호해 준 것이 틀림없었다. 그 후 중대원들이 기관총을 쏜 중대장에게 미안해서인지 나를 보고는

“중대장님, 적 포탄이 떨어지면 호 속으로 들어가라고 우리들에게 교육시키고, 그래 미쳤다고 관망대에 올라가 기관총을 쏘십니까?”

하였다. 한두 마디 씩 건네는 이야기였지만 나와 대원들 사이에 깊은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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