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9)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그것은 그림책 속의 참외가 아니야(상)
[연재칼럼](9)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그것은 그림책 속의 참외가 아니야(상)
  • 박재균 기자
    박재균 기자
  • 승인 2022.01.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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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라. 누구에게나 실수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뉘우치지 못하면 엄히 다스려야 한다.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나는 1969년 4월 1일부로 임시대위가 되자마자 그 날로 1연대 11중대장으로 부임하라는 명령을 받고 정글에서 작전 중인 대대본부로 헬기를 타고 날아갔다. 전임 중대장과 함께 대대장님께 신고를 드린 후 중대장 휘장과 견장을 달았다. 사실 당시 나에게 소원이 있었다면 소총중대장을 한번 해보는 것이었다. 

정규전시 대대장급 이상은 전투를 통제하는 임무를 주로 하는데, 월남 전투상황 역시 대대나 연대는 대부분 기지 내에서 생활했으며 작전에 투입되더라도 적이 거의 없는 안전한 곳에서 소총중대의 전투를 통제하는 일만했기 때문에 적과 마주보고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소대장, 중대장만이 정글을 누비면서 적과 부딪쳤으며 총을 맞대고 싸움을 했다.

소대장 시절 나의 중대장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스승이셨다. 그분은 본인 스스로 자신에게 엄격하면서 모든 훈련이나 작전활동간 비 전술적, 비 전투적 행동은 그대로 묵과하는 법이 없어서 우리들은 적보다 중대장님의 질책이나 교육을 더 무서워했다. 중대장님께서도 적보다 자신이 무서워 보이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중대장 실에서 열리는 상황회의 때에도 한마디조차 불필요한 말이 없었고, 꼭 필요한 말만 명쾌하게 일러주셨다. 지하 벙커는 항상 어두컴컴했고 중대장님 의자도 볼품없이 초라하였지만 거기에 앉으신 중대장님의 자세는 언제나 꼿꼿하면서 위엄이 있었다. 이처럼 엄하고 빈틈없는 분 밑에서 나는 한 전투지휘자로서 성장하고 단단하게 다져졌다.

지금도 교육훈련군기나 야외 훈련 시 전장군기를 위반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간과하는 법 없이 엄하게 꾸짖는 것은 당시 중대장님의 가르침 때문이고, 그것이 바로 전장에서 부하를 죽이지 않고 적과 싸워서 이기는 길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내가 어찌나 중대장님을 좋아했던지 평소 말씀하시는 내용은 물론 언행까지 소대원들 앞에서 흉내를 내기도 했고 소대장실에서 혼자 연습해 보기도 했다.

맹호부대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상급부대의 명령이나 지시는 철저하게 이행하고 매사를 빈틈없이 진지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토록 동경하던 소총중대장이 되어 녹색견장을 양어깨에 달았고, 난생 처음으로 지휘관 휘장을 심장이 박동하는 좌측가슴에 달게 되었다. 중대원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중대장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헬기를 타고 중대가 배치되어 있는 작전지역으로 날아와 소대장과 첫 대면을 했다.

중대에 부임하던 그날, 나는 전임자에게 소대장들과 함께 전선에 배치되어 있는 소대들을 돌아보고 필요한 곳은 수색정찰을 하면서 중대를 인계해 달라고 요구했고, 대대에서도 그렇게 하도록 지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대본부지역에서 화기소대장만 소개시켜주고는 내가 타고 왔던 헬기로 곧바로 날아가 버렸다. 처음 중대장을 나왔을 때와 임기를 마치고 떠나갈 때, 그때가 특히 적으로부터 저격을 당하거나 혹은 지뢰나 부비트랩으로 다치는 경우가 많으니 서로 위험을 피하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상급부대에서는 내가 작전지역에서 지휘권을 인수받았으니 신임중대장으로서 임무수행이 벅찰 것이라고 판단했었는지 어렵고 위험한 임무는 다른 중대가 맡도록 했고 우리 중대는 요소요소에 매복해 있다가 도망가거나 빠져나가는 적을 잡는 싱거운 임무만 부여했다. 다른 중대는 전과를 많이 올렸으나 우리 중대는 적과 한 번의 접전도 없이 중대로 복귀하는 맥 빠진 나날이 계속되었다.

나는 소대장 시절,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면 중대장님께서 직접 준비하고 주도하시는 작전회의에 숙달되어 있었다. 작전 전반을 총망라하여 토의하고 발표하면서 다음 있을 전투 준비를 위해서 연출된 모든 문제를 반드시 반복해서 숙달시키곤 했었다. 그런 반복연습에 숙달된 나는, 임무를 마치고 기지에 돌아온 장교와 하사관들에게 작전 전반에 걸쳐 반복 연습할 것을 지시했지만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더군다나 그런 복잡한 것 없이도 지금까지 잘 해왔는데 신임중대장이 중대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골치 아프게 시키냐는 태도였다.

더욱 놀랐던 것은 작전을 나가서 적과 접촉 한번 없이 복귀하는 것을 다행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자세였다. 신임 중대장으로서 너무 의욕이 앞서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 매 작전마다 신중함을 자제시키려는 의도로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상급부대의 명령이나 지시를 철저하게 이행하고 매사를 빈틈없이 진지하게 처리했던 지휘관 밑에서 엄격하게 훈련된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중대기지로 복귀 후에 중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주요 간부들과 면담하는 일이었다. 이 면담과정을 통하여 단호하게 다스리고 시정해야 할 문제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환송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첫째는 미온적인 작전활동이었다. 기지 내에 있을 때는 수시로 책임지역 내의 적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정찰활동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도, 상당한 기간 동안 책임지역 내의 정찰을 전혀 하지 않아 울타리 밖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또한 매일 1개 소대씩 매복 작전을 나가게 되어 있었는데 기지에서 멀리는 나가지 않고 단지 중대 철조망 울타리의 가까운 거리 내에서만 형식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대에는 매복 나갔다고 보고하고 실제로는 나가지 않은 채 기지에서 잠을 잤던 경우도 자주 있었다.

물론 다른 제대급에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법이 없었지만 소총중대의 경우, 중대장이 귀국 말년이 되어 몸조심을 하느라고 가끔씩 있었다. 따라서 이런 분위기를 쇄신하고 전투부대 본래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어떤 조치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두 번째는 소대장과 하사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었다. 당시 소대장인 초급장교가 부족하여 하사관 가운데 선발해서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후 장교로 임관시키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 과정을 이수하고 임관한 장교가 부중대장을 포함하여 3명이 있었다.

이들은 임관되기 전에 하사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서로 잘 이해하면서 화목하게 지내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소대 선임하사들은 소대장이 옛날 하사관 시절을 생각해서라도 잘 대해 줄만도 한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소대원들 앞에서 자기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고 불평이었고, 또 소대장들은 선임하사가 군대생활을 더 많이 했다고 으스대며 함부로 버릇없이 군다는 불만이었다.

세 번째 전투에 대한 기피현상이었다. 작전에 출동한 어느 소대장이 지휘하는 조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밤에 매복을 서고 있는데 측방에서 계속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나는데도 소대장이 크레모아 격발을 못하도록 제지했고, 소리가 다 끝날 때까지 상당한 시간동안 꼼짝도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날이 밝은 후 분대장이 확인해보니 수많은 적이 그곳을 통과해 빠져 나갔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면담과정에서 선임하사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소대장은 보고도 하지 않은 채 꿀꺽 삼켜버리고 만 것이다.

고엽제 효과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용서하라. 누구에게나 실수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뉘우치지 못하면 엄히 다스려야 한다.

나는 그간 관찰을 통해서 파악된 세 가지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먼저 전투를 기피한 책임추궁을 위해 소대장들들 불러 심한 질책을 했다. 그런데 당사자인 바로 그 소대장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면서, 분대장이 잘못 알고 보고를 들은 것을 가지고 장교인 소대장을 꾸짖고 질책한다고 오히려 화를 냈다. 그뿐 아니라 소대로 돌아가서는 기어코 자기 소대 선임하사와 해당 분대장이 소대의 일들을 중대장에게 고자질했다는 이유로 구타까지 하고 말았다. 꾸짖기도 하고 좋은 말로 타일러 보았으나 근본 바탕이 넉넉하지 못했고, 장교로서의 자질이 없었던 탓인지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었다.

그 후 대대에서 주관하는 박격포 사격대회 준비를 위해 사격연습소대장으로 임명하여 대대 사격장에 내보냈더니, 며칠 동안 병사들만 인솔한 후 자기는 급수차를 타고 대낮부터 술집을 출입하면서 뒤늦게 술이 취한 채 사격연습장으로 되돌아가 병력만 인솔하여 기지로 돌아오는 등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장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망각한 몰상식한 행동을 계속 서슴지 않았다.

나는 대대장님께 지휘보고를 하고, 헌병으로 하여금 명령위반으로 구속 조사토록 하여 본국으로 조기 귀국시켜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마지막 카드인 구속과 조기귀국이라는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내 나름대로는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소대원들은 물론이고 중대원 전체가 그 소대장은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중대를 위해 좋겠다는 일치된 의견이 있었으며, 나 또한 소대원들의 불만이 폭발직전이었으므로 더 곪기 전에 과감한 수술을 단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본인이 판 무덤이었고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까지 자기 스스로 오고 말았던 것이다.

대대에서 인사과장과 연대 헌병이 중대에 도착했다. 마침내 나에게는 괴롭고 외로운 시간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나는 부중대장과 소대장들을 중대장실로 집합시켰다. 의자에 앉지도 못하게 하고 부동자세로 세워둔 채 해당 소대장을 가리키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적을 눈앞에 두고 고의적으로 전투를 기피하는 등 이적 행위를 자행하고, 훈련장 무단 이탈, 중대장에 대한 반항과 자신을 속이는 변명과 항의, 잘못이 없는 부하를 자기의 잘못을 건의한다고 구타하는 무분별한 행위 등을 용서할 수 없으며, 반성과 뉘우침의 기회를 여러 번 부여했으나 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더 이상 함께 근무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오늘 이 시간부로 보직을 해임한다. 명령위반과 전투회피 및 이적행위는 헌병대에 가서 별도로 조사를 받도록 하라.”

그때서야 그 소대장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었다. 나는 그를 뿌리치면서, 부중대장에게 그의 사물을 챙겨서 보내주고 인사과장과 헌병에게 신병을 인계하라고 지시했다. 부중대장이 그를 일으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중대원들의 잘못된 추측이나 유언비어가 생길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전투회피와 명령불복종, 구타행위 등을 엄단하겠다는 나의 의지와 지시사항을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내가 장교를 보직 해임시킨 것은 지금까지의 군 생활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며, 중대장 보직을 받은 지 한 달 남짓한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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