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6)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적 야전병원과 '쑤'병장(하)
[연재칼럼](6)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적 야전병원과 '쑤'병장(하)
  • 박재균
    박재균
  • 승인 2022.01.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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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에서 최초로 나오는 적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었으면 무조건 쏴라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오전은 정신없이 지나가고 오후가 되었다. 선임하사 조를 시켜 양쪽 동굴을 다시 정밀수색토록 지시하고, 나는 2개 분대를 데리고 능선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간 다음 내려오면서 하향수색을 시작했다. 소대장이 앞에 내려가고 화기분대장이 기관총조를 인솔하여 뒤에서 엄호 및 예비임무를 수행토록 했다. 선임하사는 밑에서 주변 정밀수색을 계속하고 있었다.

능선에 전개하여 산의 경사면을 따라 내려오는데, 나무가 굵고 키가 커서 밀림치고는 관측이 잘 되는 편이었다. 3명의 첨병이 전방을 개척하고 나면 의심나는 곳을 야전삽으로 파면서 수색해 내려갔다. 아래 쪽을 수색하던 선임하사로부터 다량의 적 보급품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내려가서 확인해 봤더니 혈액대용액 등 각종 약품이 숨겨져 있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대부분 미제가 많았고, 인쇄가 조잡한 북한제 페니실린 가루약도 발견되었다. 또한 타자기, 뼈 자르는 톱, 수술 칼, 주사기, 가위, 환자 명단 등 병원에서 필요한 각종 물건이 쏟아져 나왔다.

쌀자루와 소금주머니를 비롯하여 우리 병사가 먹다 버린 치즈와 땅콩버터, 미숫가루, 찐쌀 등 보잘것없는 식량에다 연기에 그을려 시커멓게 찌그러진 밥솥과 냄비 등 각종 생활도구도 상당수 발견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다 버려야 할 쓰레기 같은 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고 부식류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먹고 사는데 어지간히 허덕이고 있음이 가히 짐작되었다. 포로를 잡으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몸에 부스럼이 많이 나있었다. 이것을 보면 그들의 식생활 실태가 어떠한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잠적한 적의 인공동굴을 찾기란 어렵다.

흔적을 완전히 제거하고 위장을 철저히 하였다. 비록 적이지만 배워야 한다. 뒤에 따라 내려오던 화기분대장이 황급히 나를 불러 세웠다. 인공동굴 같은 것을 발견했다는 보고였다.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가 별안간 멍해졌다. 수색조가 그곳을 지나왔는데 뒤에 오던 엄호조가 동굴을 찾았다니……. 무전병과 함께 내려 왔던 곳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적들이 숨기 좋은 곳에 인공동굴을 팠으니 중요한 것들이 모두 숨겨져 있을 것이고, 어쩌면 함께 탈출할 수 없었던 부상당한 동료들도 숨겨두지 않았을까? 제발 그렇게 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베트콩 인공 동굴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마침 그곳은 아침 수색 전에 박격포사격을 했던 지역으로 포탄이 나뭇가지에 맞아 전부 공중폭발하여 가지와 잎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바위 옆에 뚜껑 덮은 동굴 입구가 보였다. 이것은 보통 행운이 아니었다. 이 넓은 밀림 속에서 좁게 파 들어간 인공동굴의 작은 뚜껑을 발견했다는 것은 병사들이 제 아무리 동굴을 찾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더라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 뚜껑은 열지 않은 채였다. 뚜껑을 살펴보니 널빤지를 이용하여 ‘ㅂ’자 모양으로 만들었고, 놀랍게도 흙을 넣어서 방음조치까지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설사 우리가 쇠꼬챙이로 쑤시거나 군화발로 밟아도 ‘쿵쿵’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긴 쇠꼬챙이로 쿡쿡 쑤셔도 발견하기 힘든데, 양 발로 나뭇잎을 헤치면서 확인하던 병사의 군화에 동굴 뚜껑 양옆 널빤지 쪽이 툭 걸려서 발견되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자연동굴은 쉽게 발견되어서인지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았으나 적들이 판 인공동굴에는 대부분 적이 숨어 있었다. 적들의 인공동굴은 입구를 작게 하여 굴을 파고 밑으로 들어가 공기구멍을 따로 만들거나 우리의 교통호처럼 구덩이를 파고 나서 나뭇가지로 덮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위장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인공동굴을 수색할 때에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특히 동굴 속에서 기어 나오는 적 가운데 최초로 나오는 놈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었으면 무조건 쏴야 한다. 물건보따리를 손에 들고 동굴 뚜껑 밖으로 내미는 척하다가 보따리 속에 든 가루폭약을 폭발시키든가 수류탄을 집어던지고 나서, 소총을 연발로 쏘면서, 잠시 혼잡한 틈을 이용하여 나머지 적들이 동굴 밖으로 우르르 튀어나오며 탈출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동굴수색을 하다가 적으로부터 이런 식의 교활하고 영악한 급습을 당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인공동굴 수색 시에는 적의 급습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고, 만약 적과 입장이 바뀌었을 때라면 우리도 한번쯤 이용해 볼 만한 전투기법이라고 생각한다.

포로의 기본 본능은 도주다. 항상 감시하라.

백린연막탄은 전부 사용하고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세열수류탄을 동굴 속에 집어넣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던 조용한 동굴 안에서 ‘꽝’하고 수류탄이 터지자 ‘아이고, 아’등의 비명소리가 요란했고 땅속에서 동굴 위쪽을 ‘쾅쾅’ 치면서 아우성이었다. 이제는 저항이 없겠구나 생각하고 동굴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맨 앞에 있던 적이 수류탄을 뒤집어쓴 채 상체 부분이 박살나서 동굴 안에 고꾸라져 있었고, 그 때문에 뒤에 있던 적은 나올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밑에서는 적이 밀어올리고 밖에서는 우리 병사들이 팔을 잡아당겨서 겨우 끌어냈다. 그 뒤는 키가 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였다. 그 여자는 배꼽 우측에 수류탄파편 두 개가 나란히 박혀 있었고, 내장이 파열되었는지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기어나오는 동료를 끌어당겨 주는 여자 포로 [사진:서경석 장군]

 

우리가 있는 지역에는 헬기가 착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대본부가 있는 곳까지 포로를 후송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개 분대 정도로 후송시키도록 정하고 포로들 손목을 전부 포승줄에 묶었다. 여자포로는 배의 통증을 계속 호소하였다. 먼저 잡은 포로들은 전부 파편상을 입었으므로 나중에 잡은 포로가 부상당한 포로를 업고 가도록 지시했다. 월남전에서 소대 규모로는 넉넉한 전과를 올린 편이었다.지금은 생포되어 세상에서 제일 가련한 포로 신세가 되었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비트랩을 매설해서 내 부하를 죽였고, 동굴 안에 숨어 끝까지 버티고 있던 녀석들이었다. 혹시 죽이지는 않을까 연신 굽신굽신 절을 하면서 배가 고프니 물이나 먹을 것을 달라는 시늉과 담배까지 달라고 측은하게 애걸하였지만, 나는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다. 통상 스스로 손을 들고 항복한 놈들이 아니었을 경우, 우리를 안심시키고 도주할 기회를 노리는 것이 포로들의 공통된 습성이다.

포로를 잡았을 때마다 공통적인 사실은 남자들일 경우 모든 것을 쉽게 포기했고 환심을 사기 위해 수다스럽고 비굴하게 행동했는데 반해, 여자들은 오히려 말이 없고 침착했다. 오히려 비굴하게 구는 남자 동료들을 꾸짖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독하고 질겼다. 평시라면 죄를 지은 사람이나 심지어 살인범일지라도 세 번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지만, 전투현장에서는 일선 소대장에게 붙들린 포로들은 말 그대로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싸우다가 소대원들이 적에게 전사라도 했다면, 분풀이로 보고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세워 놓고 쏴 죽여버리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포로를 잘 대우하느냐, 거칠게 대우하느냐 하는 것은 그날의 전투상황과 피해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소대장들의 전장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상급부대 지휘관이나 참모들조차 전투현장에서 생기는 인간의 묘한 심리현상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물며 일반인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적탄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고통을 참아가며, ‘소대장님, 내 걱정은 말고 소대를 지휘하세요’라며 오히려 소대장에게 용기를 주고 동료를 걱정하던 부하. 그 부하가 전우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둘 때, 과연 그 소대장의 심정이 어떠할 것인가는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거칠어지고 야만스러워지는 자연적 현상을 누가 감히 비난할 수 있겠는가!

미군에 잡힌 베트콩 용의자 [사진: 위키미디어]

 

<쑤> 병장이 되다

중대본부로 포로를 후송시키러 간 분대에서 조그만 사건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계속 통증을 호소하던 여자포로가, 바위가 뒤엉켜 있는 개울 부근에서 별안간 도주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병사가 뒤좇아 가다 실족하여 바위 밑으로 떨어져 얼굴이 내리 갈리고 코가 떨어져 나가는 중상을 입었다는 보고였다. 그리하여 부상당한 병사도 포로를 태우러 왔던 헬기와 함께 실어 후송했다는 내용이었다. 한심하고 창피스러운 일이었지만 다 끝난 일이라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기로 했다.

작전을 전부 마치고 중대기지로 돌아왔다. 전우를 잃어버린 슬픔도 있었지만 야전병원을 찾아내는 전과를 올렸다. 여자포로를 잘못 호송해서 코를 크게 다친 병사도 다친 코를 꿰매어 얼굴은 비록 보기 흉하게 되었지만 워낙 낙천적이고 쾌활하며 얼굴 모습 때문에 생기는 부담은 전혀 없이 소대원과 잘 어울려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온지 며칠이 지나자 병사들 사이에서 그 병사가 <쑤>병장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 병사는 군에 오기 전에 고향에서 목수를 했고 대패질과 톱질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소대원 중에서 팔힘이 가장 강했다. 팔씨름 대회에서 우승도 했고, 몸이 무척 날렵하고 빨랐을 뿐 아니라 성격도 활달하여 중대의 장교와 사병 사이에서도 인기가 매우 좋았다. 

얼마 후 나는 그 병사가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다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 분대원과 함께 포로를 후송하던 도중, 그 여자포로가 배의 통증으로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고 주저앉아 버렸다. 할 수 없이 손목에 묶었던 포승줄을 풀어주고 나서 분대장과 함께 교대로 여자포로를 업고 내려왔다. 복부총상의 경우, 실탄을 맞았을 경우는 창자가 미끄럽고 둥글기 때문인지 회전하는 실탄마저 이상하게도 창자와 창자사이로 피해나간다. 그러나 파편상인 경우는, 파편의 모서리가 대체로 날카롭고 뾰족하기 때문에 복부에 맞기만 하면 거의 대부분 장기가 파열되어 총상보다 더 위험한 경우가 많았다.

아마 이 여자포로도 그런 경우였음이 틀림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당시 나이 16세, 키가 작고 눈이 컸으며, 검정색 인조천으로 된 바지를 입은 전형적인 월남여자로 꽤나 귀여워 보였다. 맨 처음에 분대장이 업고 가다가 다음에는 부분대장이 업었고, 계급이 낮은 사람은 업어보지도 못하고 둘이서만 돌아가면서 업고 왔던 모양이었다. 여자를 업고 가면 젖무덤이 등에 닿으니까 기분이 좋고, 땀냄새가 푹푹 나지만 여자냄새가 더 좋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여자를 업고 나니 업은 병사의 양손은 여자의 둔부에 닿게 되고, 호기심과 함께 만져보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하게 되었을 것이다. 분대장과 부분대장은 만져서는 안될 여자의 그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치는데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여자포로는 며칠 동안 밥도 물도 먹지 못한 데다가, 부상으로 탈진되어 정신을 잃은 채 축 늘어져 있는 상태였다.

나와 함께 지냈던 당시 소대원들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마침내 바위가 뒤엉켜 있는 개울가에 도착하자 힘이 좋은 부분대장이 여자를 들쳐 업고 뛰어넘기로 했다. 그런데 개울만 통과하면 중대본부로 포로를 인계해야 하기 때문에 두 녀석은 서로 킬킬대면서 개울가 바위 위에서도 장난을 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마침 부분대장이 개울을 뛰어넘으려고 껑충 뛰는 순간, 여자는 복부의 통증으로 다리를 오므리면서 힘을 주게 되었다. 건너편 바위에 가서 닿아야 할 부분대장은 발의 균형을 잃으면서 바위 사이의 허공을 딛게 되었고, 여자를 업은 채 약 3m아래의 바위와 뽀족한 돌 위로 떨어졌다. 등에 업혀있던 여자는 크게 다친 곳 없이 타박상만 조금 입었고, 부분대장은 떨어지면서 얼굴이 바위에 갈려 얼굴 우측이 보기 흉하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포로수송 헬기가 도착하자마자 부분대장을 포로와 함께 후송을 보냈고, 소대장에게는 여자포로가 도주해서 잡으러 쫒아가다가 바위에서 실족해 부상을 당하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훗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에 의해서 사실대로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후 그 병사의 이름은 ‘쑤시게’병장에서, 우리가 성을 부르면서 김일병, 김상병 하듯이 소대원과 중대원 사이에서 늘 <쑤>병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쑤>병장은 남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고, 여전히 중대원들과 잘 어울리고 잘 떠들면서 우리와 함께 잘 지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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