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2)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두고 온 철모(하)
[연재칼럼](2)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두고 온 철모(하)
  • 박재균
    박재균
  • 승인 2022.01.03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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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다양하게 예측하고 예측한 대로 훈련시켜라, 훈련한 대로 싸운다.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생지옥 같은 밀림

월남의 밀림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키가 우리 사람 정도로 자란 소위 관목지대(觀木地帶)다. 이곳은 나무에 가시가 많고 사람 키 정도의 작은 나무들이 뒤엉켜 있어서 이런 곳을 헤쳐 나가기란 여간 힘이 들지 않으며, 특히 그늘이 없어서 더위와 땀으로 고통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곳에는 물도 없고 고약한 전갈이 많아 아무 곳에 함부로 엎드리거나 드러눕다가는 전갈에 물리기 쉬우며, 또한 윤이 반들반들하게 나는 새까만 독개미가 많아서 노출된 손이나 목, 얼굴 등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독사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놈들이 달밤이 되면 키 작은 나무 위에 척 드러누워서 달빛을 즐기는 광경을 여러 번 보았다.

다른 하나는, 나무가 굵고 크게 자라있는 관목지대로서 나무 위쪽에 나뭇잎들이 하늘이 잘 안보일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 있는 곳이 있다.

이런 곳은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목화송이같이 푹신푹신해 보인다. 또한 여기에는 산세가 험하고 나무가 많아 가물어도 물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야생물소, 산돼지, 고라니 등의 산짐승이 많고 물가에는 민물게와 고기들도 많다.

뱀은 주로 길이가 3~4m씩 되는 구렁이와, 짙은 초록색을 내는 덩치 큰 도마뱀이 있어 우리를 가끔 놀라게 하지만 독이 없고 온순해서 별 경계심 없이 지나쳐도 된다.

월남에서 우리를 제일 괴롭혔던 것 중에 하나는 모기였다. 그런데 그 모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물가 습기가 있는 곳에 가면 거머리가 많은 곳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깊은 산에 들어가면 어떤 골짜기에는 자라가 우글우글하고, 어떤 골짜기에는 남생이가, 어떤 골짜기에는 게가, 어떤 골짜기에는 거머리가 우글대는 곳이 있다. 물줄기를 따라서 번식하는 것이 틀림없다.

거머리가 우글대는 계곡을 들어가게 되면 완전히 고생만 하고 허탕을 쳤다. 적들도 거머리 계곡에는 그들의 은거지를 구축하지 않았다. 덥다고 하여 멋모르고 물에 들어가면 전투복을 입었더라도 땀내와 피 냄새를 맡고 새까맣게 몰려드는 습성이 수 천 년을 지나면서 잘 숙달되어 있었다.

이 거머리는 물 속 뿐만 아니라 나무위에도 있었다. 나무 밑에 잠시 앉아 있노라면 나뭇잎이나 가지에 붙어 있던 거머리들이 땀내와 피 냄새를 맡고 밤톨만 하게 똘똘 뭉쳐 땅으로 툭툭 떨어져서 엉금엉금 기어와 살갗이고 어디고 아무데나 달라붙었다. 전투복은 이놈들의 빨아대는 흡입력에 속수무책이었고 심지어 판초 우의를 둘둘 말고 있어도 헤진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서 밤새도록 피를 빨아댔다.

밤에는 플래시로 확인하거나 손으로 만져서 찾아내기 전까지는 대책이 없었다. 이 고약한 거머리가 피를 빨아대는 순간, 입에서 빠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소량의 마취제가 함께 분비되기 때문에 잠들지 않고 앉아서 근무서는 병사까지도 이놈들에게 피를 빨렸다.

여하튼 세상 만물이 제 나름대로 다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작은 미물도 귀신이 놀랄만한 특기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밀림 속에는 평소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밀림 속에는 아름드리나무가 고사하거나 벼락을 맞아 쓰러져 썩은 것이 많이 있었는데 이런 썩은 나무 가운데 아주 오래된 것은 자연적으로 인(燐)이 발생되어 달빛에 훤하게 비쳤다.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플래시 불을 비추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겁에 질려 있거나 야간에 공포심이 많은 사람은 적으로 오인하고 총을 쏘는 일이 왕왕 발생하기도 했다.

나무가 크고 울창한 곳에는 나무 위쪽의 가지와 잎은 무성하나 밑에는 햇빛이 차단되어 작은 나무들이 자라지 않는다.

소리를 내지 않고 침투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며 특히 침투부대에게 유리한 것은 나무가 굵고 조밀하여 움직이는 물체가 나무에 가려서 조준사격을 할 수가 없고, 50m만 거리가 생겨도 실탄은 대부분 나무에 박혀 집중사격을 받더라도 총소리만 요란할 뿐 어지간해서는 맞지 않는다. 100m 정도 떨어질 경우, 안심하고 행동해도 된다.

 

푸갓산에서. 서경석 장군 제공.
푸캇산에서. 1968년 5월 경. 1연대 6중대 소대장 때다.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멀리 보이는 바위가 젖바위 산이다. 어머니 젖을 닮았다해서.... 우린 저 산을 기점으로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포탄도 유도했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다양하게 예측하고 예측한 대로 훈련시켜라, 훈련한 대로 싸운다.

달도 산 반대편으로 기울었고 머지않아 날이 새게 되니 주간 관측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때까지는 계속해서 올라갔기 때문에 경사진 곳이라 관측장소로 하기에는 경계병 배치가 적절하지 못했고, 적과 마주치면 밑에서 올라오는 적을 피하고 싸우기에는 유리했으나, 위에서 내려오는 적을 만나면 피하기 어렵고 싸우기에도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조금 더 올라가서 능선의 중간 정상부분이 나타나면 자리를 잡으려고 마음먹고 부지런히 걸었다.

날이 밝기 시작하면서 20m 정도까지 희미하게 물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되자 나는 자리를 아직 잡지 못한 불안감에 약간 당황하게 되었다. 멀리 아래에 있는 계곡을 감시해야 했으므로 나무가 별로 없는 곳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마침 이때에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평평한 작은 풀밭지역이 나타났다. 이곳을 첫날 주간 감시 지역으로 정하기로 마음먹고, 배도 고프고 너무 지쳤기 때문에 쉬면서 C-레이션 깡통을 꺼내 먹기로 했다.

큰 나무 아래에 기대앉아 배낭을 풀어놓고 두 다리를 쭉 편 채 철모를 우측에 놓고는 그 위에 소총을 비스듬히 눕혀 놓았다. 통로 개척조로 나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2명의 대원에게 내가 앉은 자리에서 우측으로 2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경계를 서도록 하고 모든 대원들을 쉬게 했다.

말이 야간 침투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도박을 한 셈이다. 적과 밤중에 마주치면 큰일 난다는 걱정 때문에 짐이 무겁다거나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정신없이 기어올랐다. 플래시를 켤 수 없어 머릿속에 익혀둔 지도대로 올라왔으니 제대로 왔는지 알 수도 없었다.

도저히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없을 때에는 항공기를 불러서 확인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우리가 주로 사용한 방법은 포병으로 하여금 백린 연막탄을 쏘게 해서 피탄지의 위치를 참고로 하여 자기 위치를 찾아내는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날이 새면 내 위치부터 찾아내야 할 판이었다. 어찌나 배가 고프고 고달팠는지 땅바닥에 주저앉으니 꼼짝도 하기 싫었다. 우선 깡통 한 개를 꺼내서 뚜껑을 땄다.

닭고기와 국수였다.

왼손에는 깡통, 오른손에는 하얀 플라스틱으로 된 스푼을 들고 몇 숟갈 집어먹었다. 먹으면서도 계속 눈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저 앞에 무엇이 있을까 하고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땅거미가 가시면서 물체가 비교적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상한 물체 하나가 나타났다. 정확히 내가 앉은 곳에서 계곡 쪽을 바라보고 3시 방향이니까 우측의 경계병과 내가 앉은 사이 지점으로 오고 있었다.

거리는 불과 20m 정도. 우리 병사들은 전부 철모를 썼는데 저놈은 철모를 쓰지 않았고, 우리는 전부 머리가 스포츠형이었는데 저놈의 머리는 상당히 길었다. 우리처럼 군복을 입기는 했으나 몸이 아주 호리호리하고 바지가 좁은 홀태바지를 이고 있었다.

155mm의 위엄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155mm의 위엄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저놈은 분명히 내 부하가 아니다. 월남 정규군인가? 그럴 리가 없다. 출발 전에 다 확인했지만 우군은 이곳에 없다. 적이 틀림없다.’

적이라 생각하니 온 몸이 순식간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총은 실탄이 장전된 채 내 옆에 있었으므로 그대로 잡아서 자물쇠를 풀고 방아쇠만 당기면 ‘드르륵’하고 시원스럽게 실탄이 날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총을 잡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비록 총이 없는 적이었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쑥 나타나니 반사신경이 마비된 모양이었다.

그 놈은 계속 걸어왔다. 눈이 크고 광대뼈가 유난히 옆으로 벌어진 놈이었다. 조조 같은 콧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었고 머리가 흐트러져 덥수룩했다.

나를 보지 못한 것이 확실했고 우측에 있는 경계병이 보지 못했으면 내가 쏴야 할 판이었다. 쏠까말까 망설이고 있으면서 총을 잡으려는 순간, 그놈이 앉아있는 나를 보았다. 휑하니 쑥 들어간 눈으로 깜짝 놀란 모습을 보니 그놈도 순간적으로 굳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순간 “땅” 하고 한발의 총소리가 나면서 그 자리에 콱 쓰러졌다. 내 우측에 있던 경계병이 좌측 가슴을 조준, 심장을 뚫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놀란 토끼마냥 큰 눈으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야, 날 따라와.”

소리를 지르고 왼손에는 탄띠와 배낭을, 오른손에는 소총을 들고 적이 나타났던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배낭을 메고 뒤를 돌아보니 모든 대원들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위쪽으로 뛰면 속도가 느려 빠른 접적이탈이 어렵기 때문에 적이 나타났던 평지 방향으로 계속 뛰었다. 뛰어가면서 살펴보니 나무 숲속에 교묘히 움막이 여기저기 있었다.

이거야말로 완전히 남의 집 안방으로 뛰어 들어온 꼴이 되었다. 움막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적이 보였다. 한 발의 총소리가 나니까 새벽 잠결에 무슨 일인가 하고 내다보는 모양이었다.

뛰면서 움막에다 대고 연발로 마구 쏴댔다. 적이 코앞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도 어찌나 다급했던지 확인할 생각조차 못하고 그대로 쏘면서 뛰어가기만 했다.

움막은 내 눈으로 얼른 보아도 여섯 채 정도 확인되었으며, 움막지역을 통과해 나오자마자 다시 그곳에 집중사격을 하고는 예행연습한대로 3명 1개조로 조별 행동을 했다. 적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구간이탈과 조별 집중사격을 하면서 계속 뛰어갔다. 당시 상황으로는 깊은 산속에서 갑작스럽게 적과 조우한 경우라서 놀란 나머지 빨리 이탈하여 빠져나갈 생각만 했지 적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은 전혀 고려치 못했다.

나중에야 우리들끼리 기지에 돌아와 토의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생각해보니 조금만 서두르지 않고 침착했더라면 세상이 떠들썩할 큰 전과를 올렸을 터인데 아쉽기 짝이 없었다.

 

첫째, 적은 우리가 접근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휴식하고 있을 때 다가오다가 경계병에게 사살당한 녀석도 총을 휴대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전혀 낌새를 채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놈을 생포하지 못한 것은 분명 실수였다.

둘째, 움막집에 보초나 기타 경계병도 없이 전부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집집마다 적이 자고 있었다면 병력을 전개하여 전부 생포할 수 있었는데,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는 격으로 적을 만나면 신속히 이탈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절호의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셋째, 왜 우리가 사전에 예측하고 예행연습을 충분히 실시하지 못했는가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컸었다.

D-day에 대기하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D-day에 대기하다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우리에게는 수색이나 습격작전 임무가 전혀 부여되지 않았고 적을 만나더라도 과감한 교전은 인정되지 않았다. 우리를 적진에 보내는 사람들은 적과의 교전보다는 교전 자체를 회피할 것을 강조했다.

적 소굴 속에서 몰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적에게 덜미를 잡히면 구출해내는 데 더 많은 희생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적과 조우 시 무조건 이탈만 강조하게 되어, 이번처럼 우연히 손에 걸려든 대어를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 다시는 이와 같은 호기를 만나지 못했다. 내게 임무부여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의 조치는 현지의 소대장이 적시적절하게 판단해서 상황에 알맞도록 과감하게 덤벼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적을 보는 그 몇 초의 순간, 떠나기 전 예행연습과 토의하면서 궁리했던 것 이외의 다른 생각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빨리 이탈해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우리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뛰어서 산중턱의 계곡까지 내려왔다. 발바닥이 땅에 닿은 기억이 전혀 없으며 마치 날아온 것 같았다.

물가 갈대 숲속에 숨어서 대원의 머리수부터 세어보니 12명 전원이 무사히 나를 따라 내려왔다. 비록 교전은 없었지만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고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대와 우리 중대와는 산이 가려서 직접 교신하지 못하고 가까운 다른 중대 관측소를 통하여 상황보고를 한 끝에야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아 철수를 시작했다.

105mm 포 사정거리 밖에 있었기 때문에 우선 급한 것은 대대에 있는 105mm 포 사정거리 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포는 우리가 요구하는 즉시 거의 정확한 지점에 떨어졌기 때문에 이용하기에 아주 편리했다.

무장헬기 지원도 받을 수 있었으나 그날 같은 경우 우리를 위해 대기하고 있지 않았고 그곳까지 날아오려면 빨라야 30분 내지 한 시간 정도는 족히 걸렸다. 그때는 이미 교전이 다 끝난 때가 되기 때문에 헬기 사용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철수하면서 우리 대대 105mm 포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니 다 빠져나온 것 같은 안도감이 생겼다.

좌우측의 의심나는 지역과 전방의 미심쩍은 지역에 포탄을 유도하니 한두 발씩만 날아와 터지는데도 그 폭음이 계곡을 진동시켰고, 대원들의 사기충전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지휘관과 동료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는 것이 눈에 역력히 보였다.

우리는 무사히 중대기지로 돌아왔다. 비록 최초 부여된 임무를 완벽하게 달성하지 못했지만 국방색 군복을 입은 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월맹 정규군이 분지를 중심으로 하여 산속에 전술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그 어리둥절한 와중에서 사진 촬영병이 일제 리코 자동사진기로 몇 장의 사진을 찍어 와서 사진에 나타난 움막집 첩보 사항으로 그런대로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모두 지나간 일들이지만 눈이 크고 움푹 들어간 슬픈 모습과 유난히 광대뼈가 옆으로 벌어진 얼굴모양, 그리고 깜짝 놀라 우뚝 서 있다가 푹 쓰러지던 그 월맹군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고, 왜 그놈이 이른 새벽에 그곳으로 어슬렁어슬렁 왔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아마 그 놈 팔자가 거기서 죽으라는 것이었나 보다. 또 한 가지 산속에 들어가서 포병의 사정거리를 벗어날 때의 불안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가 다시 우리 대대의 포병 사정거리 내로 들어왔을 때의 안도감을 실감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쏘아준 포탄이 지근거리에서 작렬했을 때 그 전까지 웅크리고 있던 병사들의 행동과 불안한 모습이 말끔히 사라지고 행동도 과감해지고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포병에 대한 고마움이 새로워지고 훗날 내 군대생활에 많은 도움과 교훈을 남겨 주었다.

628 B 십만발 발사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628 B 십만발 발사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이번 작전 때문에 소대원들에게 크게 무안을 당했다. 나는 왼손에는 배낭, 오른손에는 소총을 들고 뛰면서 소총을 올려놓았던 철모를 미처 쓰지 못하고 그대로 뛰어 내려왔다. 다른 대원들은 전부 철모를 썼는데 소대장인 나만 안 썼으니 다른 사람 철모를 쓸 수도 없고 민망한 꼴이 되었다.

평상시 늘 쓰고 다닐 때는 무거울 때도 많았으나 막상 철모를 못 쓰고 보니 그리 허전할 수가 없었고 나뭇가지와 풀에 머리가 자주 부딪히고 불편하여 국방색 수건을 꺼내 여자들이 밭에 나가 일할 때 수건을 머리에 둘러쓰는 것처럼 동여매고 내려왔다.

당시 우리 중대와는 산이 가려서 무전기 통화가 불가하여 가시거리에 있는 8중대 OP 관측소와 교신을 하여 철수로를 지도받고 포탄을 유도하도록 협조되어 있었다.

적과 교전 시 포탄을 유도하고 철수를 지도받기 위하여 8중대 관측소를 무전기로 불렀을 때 비록 남의 중대이지만 OP에서 내 무전을 기다리고 계셨던 김정헌 중대장(중장 전역, 작고)님에게 나는 한 평생 감사하고 살았다.

그리고 군 생활을 하면서 그 분이 내게 가르쳐주신 철저한 임무수행 자세가 내 몸에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랬다.

누가 그 철모를 치우지 않았다면 철모의 위장포는 다 썩었더라도 아직 그 산속에 외롭게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월남에 갈 기회가 온다면 ‘두고 온 철모’를 찾아 꼭 40여 년 전을 되찾고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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