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자유사회인가?

하이에크의 ‘법의 지배(rule of law)’로 본 고찰

2023-08-10     김식

2020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발언하자,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이 “매우 충격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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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통해 신정훈 의원은 “법은 양심과 상식의 경계를 정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며 “일반인의 입장에서 ‘법의 지배’ 같은 무서운 말들은 꽤 위험하게 들린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법의 지배’란 ‘법치주의’의 기본 원리인데 “국회의원이 법치주의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무식한 소리를 하고 있다”라는 즉각 반응이 나왔다.

내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의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읽으면서 감명 받았던 대목 중의 하나가 ‘법의 지배’ 부분이었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법의 지배’는 단순한 합법성(legal)과 다르다. 법은 최소한으로 만들어야 하고, 일단 만든 법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며 그것이 자유주의 사회의 근본이라고 했다.

이에 관련하여 불문학자 박정자 교수는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이다》에서 하이에크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옮겼다.

자유주의 사회와 전체주의 사회를 구별해주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바로 법의 지배다. 자유주의 사회는 법의 지배하에 있는 사회이고, 계획 사회는 법의 지배가 없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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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변호사의 올해 저서 《LEGAL TREND 2024》에 “정의롭지 못한 법도 무질서보다 낫다.”(16페이지)라는 표현이 들어있다. 여기에는 구체적 사안에서 정의롭지 못해 보이더라도 결국 인치가 아닌 법치가 사회적 약자들과 민중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 역시 발견된다.

주지하다시피, 1930년대 독일의 나치Nazis 정부가 온갖 반인륜적인 만행을 저지른 것도 오로지 법에 따른 것이었다. 이처럼 정부가 한 치의 법에 어긋남 없이 어떤 계획을 실행한다고 그것이 법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전체주의 사회가 모든 정책 수행을 철저하게 법에 따라 한다고 해도 실제 이 권력은 법이 아닌, 무제한의 강제를 휘두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법률조차 얼마든지 합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법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를 ‘법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정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정책 수행은 물론 합법적(legal)이지만 법의 지배하에 놓여 있지 않다.

입법에 의해 정당하게 권위를 인정받기만 하면 국가의 모든 행동이 법의 지배하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는 것은 공허한 입법권 사상이다. 정부의 모든 행동들이 완전히 합법적이면서도 여전히 법의 지배 원칙에서 벗어나는 사태들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어떤 위원회의 설치를 법률로 정했다고 치자. 그 위원회가 하는 일은 모두가 합법적이다. 그러나 그 구성원들 각각의 행동이 법의 지배하에 있다고 볼 수 없다. 나치 독일에 법의 지배가 있었다고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정부가 자의적(恣意的)으로 만들어놓은 법을 정부가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부 자체가 결코 함부로 아무렇게나 법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서 법은 최소한도로 존치되어야 옳다. 최소한도의 법이 있는 사회에서, 그 법을 철저하게 지킬 때 그것을 법의 지배하에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자유 사회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그리고 칸트 이전의 볼테르Voltaire가 매우 유사한 용어를 써서 표현했듯이, “그 어떤 다른 사람도 따를 필요가 없고 단지 법만 따르면 될 때 인간은 자유롭다(Man is free if he needs to obey no person but solely the law).”

우리 사회는 어떠했는가?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는 모호한 죄목이 대통령 탄핵의 사유로 확정되었던 사회다. 범죄 혐의를 받는 법무장관을 수사하지 마라는 군중 시위가 거리를 뒤덮었고, 편협했던 대통령이 그 시위를 드러내 놓고 지지하던 사회다. 게다가 국가라는 괴물이 사흘 멀다 하고 부동산법을 만들어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했던 사회다. 이것이 바로 하이에크가 언급했던 전체주의 사회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자유사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