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 "이재명 기표된 용지 배부...유권자 항의에 투표 일시 중단"

서울 은평구 선관위 "기표된 용지 운반 중 실수"

2022-03-06     정성남 기자
5일

-기표된 용지 밀봉도 하지않고 보조원이 받아서 운반

- 선관위, 확진자 많아 혼란 있었다.

[정성남 기자]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 서울의 한 투표소에서 특정 후보에 기표된 투표용지를 배부했다가 유권자들의 항의로 잠시 투표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5일 서울 은평구 신사1동주민센터에서 확진자와 격리자 대상 사전투표가 진행 중이던 이날 오후 6시께 유권자 3명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투표된 용지가 든 봉투를 받았다.

투표소 현장 관계자들이 투표 종료 후 확인한 투표용지 봉투 중 한 개에서도 특정 후보에 기표 완료된 투표용지 2장이 나왔다.

해당 투표용지가 발견된 뒤 일부 유권자는 투표를 할 수 없다고 항의했고, 투표를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면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돼 투표 진행이 잠시 중단됐다.

이런 고성이 오간 끝에 대기행렬에서 기다리던 유권자 열댓명이 투표를 거부하고 귀가했다.

이 투표소에서는 확진자의 경우 야외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한 뒤, 빈 봉투에 담아 보조원에게 전달하면, 보조원이 혼자 이를 들고 실내로 들어가 투표함에 넣기로 했는데, 한 40대 여성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를 넣을 봉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기표된 용지 1장이 이미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항의하는 유권자는 “‘이재명’ 미리 찍어놓은 이 투표용지는 도대체 뭐냐고요!” 라고 하자 남성 투표 보조원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고 답했다, 이에 유권자는 “모른다고? 그게 말이예요? 내 투표용지는 내가 직접 들고 들어가서 투표함에 넣어야겠어요.”라고 말하자 보조원은 “안됩니다. 저한테 맡기시고 돌아가셔야 합니다.”라고 유권자를 막았다. 이에 유권자는 “안되긴 뭐가 안돼요. 제가 뭘 믿고 그쪽에게 제 표를 맡겨요, 봉투 밀봉도 안해서 뻔히 열고 다니면서…” 라고 말하는 중 또 다은 남성 유권자가 "선관위 직원 나오라해요!”라고 보조원을 향해 말했다.

한편 현장에 있던 한 참관인은 "기표된 투표용지가 배부된 것을 나도 봤고 주변 투표자들도 봤다. 현장 사진도 다 찍어뒀다"며 "선관위 관계자는 상황이 다 끝난 뒤에야 현장에 왔다"고 말했다.

이에 은평구 선관위 측은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사진=온라인

확진자들이 기표 용지를 봉투에 담아 직접 투표함에 넣는 게 아니라 참관인 등 관계자들이 쇼핑백 등에 기표 용지를 넣어 투표함에 대리 전달하는 방식으로 투표가 이뤄지면서 혼선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은평구 선관위 관계자는 "확진자들이 낸 기표 용지를 다시 (비확진자) 투표소에 올라가 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투입하는 절차가 있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표가 된 용지가 들어있던 봉투와 투표용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실수"라면서 "(투표) 마감도 못 하고 있다가 오후 9시께 마친 것 같다. 아직도 (선관위에) 투표함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제20대 대선 투표관리 특별대책’에 따르면 확진·격리 유권자들은 투표 현장에서 선거사무보조원에게 신분을 확인받은 뒤 투표용지 1장과 임시기표소 봉투 1장을 배부 받는다. 이후 전용 임시 기표소에 들어가 기표한 뒤, 용지를 미리 받은 빈 봉투에 넣어 보조원에게 전달한다. 보조원은 참관인 입회 하에 봉투에서 투표지가 공개되지 않도록 꺼내 투표함에 넣어야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이런 매뉴얼과는 전혀 달랐다. 은평구 신사1동을 비롯한 여러 기표소에서 보조원이 참관인 없이 혼자 돌아다니며 투표용지를 건냈고, 기표된 표를 들고 다녔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러 명의 봉투를 한꺼번에 수거하거나, 종이봉투에 담아 야외에 방치하는 등의 주먹구구식 진행이 발생했다.

‘봉투’도 현장에선 ‘쇼핑백’, ‘구멍뚫은 골판지 상자’ ‘플라스틱 바구니‘ 등으로 제멋대로 운용됐다. 전주 덕진구 농촌진흥청 등 일부 투표소에선 봉투에 유권자 이름을 적어서 표를 담았다. 곳곳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함을 가지고 오면 직접 넣겠다” “봉투를 봉할 수 있는 풀이나 스테이플러를 가져다 달라”고 소리쳤다. 보조원들은 “우리는 선관위가 하라는 대로 절차에 따라 한다”며 거부했다.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이런 사태를 고발하는 ‘인증샷’이 넘쳐나고 있다. “부정투표” 주장도 수없이 올라온다. 한 네티즌은 투표함이 있는 공간은 CCTV조차 없었다며 “내 표가 어떻게 될지 알고 맡기느냐”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참관인 입회 하에 투표함에 용지를 넣는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표하지 않은 투표용지가 야외 자전거 위에 방치돼 바람에 날아다니는 모습도 찍혔다.

선거법은 ‘선거인은 기표한 후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접어 투표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유권자들 증언대로라면 투표소 여러 곳에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