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 초대 대통령 케네스 카운다 별세…독립의 아이콘

2021-06-18     김건호 기자

남부 아프리카 잠비아의 초대 대통령이자 아프리카 독립의 아이콘인 케네스 카운다가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에드가 룽구 잠비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저녁 페이스북으로 발표했다,
AP, AFP 통신 등에 따르면 룽구 대통령은 고인을 기리며 잠비아가 21일간 애도 기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카운다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폐렴 치료를 위해 수도 루사카에 있는 한 군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는 영국의 식민 통치에서 투옥을 감수하며 독립을 이끈 지도자로 1964년 초대 민선 대통령이 됐다.

그는 그러나 나라를 일당 통치 국가로 만들었다가 국제적 압력 속에 1991년 다당제를 도입해 치른 선거에서 패배한 후 물러났다. 잠비아는 구리가 풍부한 나라였지만 그의 통치 기간 광산 등 기간산업 국유화 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다.

27년 집권 기간 그는 잠비아를 남부 아프리카에서 백인 소수 지배와 싸우는 반식민주의 단체들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국내 독립운동에서 '아프리카의 간디'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가 대외적으로 게릴라 단체 후원을 한 나라는 앙골라, 모잠비크,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등이다.

특히 남아공에서 불법화된 넬슨 만델라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30년 동안 루사카에 망명 둥지를 틀도록 해줬다. 만델라는 1990년 감옥에서 풀려나자 외국 정상 가운데 맨 먼저 카운다를 찾아갔다.

카운다는 이밖에 1975년 모잠비크 독립 협상에 이어 1980년 짐바브웨·1990년 나미비아 독립 협상 등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86년 아들 마수지오를 에이즈로 잃은 후 에이즈 퇴치 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1924년 4월 28일 잠비아 북부 벽지에서 장로교 목사의 여덟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1950년대 흑인을 차별한 정육점들에 대한 보이콧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나라가 흑인 다수에 의한 지배를 이룰 때까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독립 후에도 그는 채식주의자로 남았다.

교사 출신인 그는 통치 기간 '휴머니즘' 이데올로기와 기독교 윤리, 전통 아프리카 가치, 사회주의 원리 등을 혼합했다고 로이터는 평가했다. 그는 대중 앞에서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연설 도중 문장 전체를 되풀이 함으로써 핵심 사상을 강조했으며 트레이드마크로 왼손에 하얀 손수건을 쥐었다.

볼룸 댄스를 즐긴 고인은 1979년 루사카의 한 코먼웰스(영연방) 콘퍼런스에서 아프리카 독립운동에 호의적이지 않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와 춤을 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앞서 2012년 작고한 부인 베티 여사와 슬하에 아홉 자녀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