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철의 유통칼럼(12) 삼성에게 유통은 너무나 험난한 길

2009-10-28     권순철

‘남의 옥을 빌려 내 옥을 다듬는다.’ 한자로는 의옥조옥(倚玉雕玉)이라고 한다.
이 땅에서 나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말일 것이다. 상대의 이점이나 환경을 이용하여 힘을 도모하는 전략으로 상대가 월등히 강하거나 우월한 환경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 힘에 편승하는 것으로 주로 상술에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농부나 제조업자들에게는 유통업자가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 회사 내에서도 서로의 업무 영역이 다르면 언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서로 다른 관점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경우라면 그 갈등은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점의 차이가 각자의 전문분야를 만들어 주고 시장은 그 만큼 다양성이 존재하게 해준다. 또한 소비자는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순기능도 존재한다. 하지만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많은 기업들이 영역을 넓혀가다 보면 기존 업체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수성하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사이에는 생사를 건 쟁탈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혹은 시장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혹은 철수하고 본래의 영역으로 돌아가 다음기회를 기다리며 평화를 위장한다. 그래서 많은 컨설턴트들은 사람이나 기업이나 자신의 전문분야를 찾아가고, 집중해야 한다고 쉽게 말한다. 욕심만 없다면 가능할 것이지만…

우리나라 1등 기업인 삼성, 삼성은 ‘삼성이 하면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불가능이 없다’는 말로도 통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유통시장은 험난한 여정이었다.

삼성은 신세계가 계열분리를 하고, 1994년 3월 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유통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다.  그 해 5월 분당 서현 역사를 낙찰 받아 유통사업에 진출했다. 신세계가 분가하면서 새롭게 유통업에 진출할 필요성도 제기됐던 참이었다.

1996년 서울 명동에 유투존 백화점을 열고, 1997년부터 본격적인 유통시장 점령을 선언한다. 1997년 삼성플라자 분당점과 태평로점, 홈플러스 대구점을 열며 백화점과 할인점 두 분야에 걸쳐 재빠른 행보를 보였다.
삼성은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유통에 막대한 투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삼성의 유통점령 계획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1997년 말, IMF 체제하의 외환위기를 삼성도 피해가지는 못한 것이다. 삼성 역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계열사들 또한 여건이 어려워졌다. 물론 유통사업의 주체인 삼성물산 역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유통시장에서 험난한 길을 걸어온 삼성은 결국 99년 영국 테스코에 홈플러스를 매각하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삼성의 유통시장의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이후 삼성플라자 태평로점을 분사시켰으며 이후 명동의 유투존 역시 조용히 철수시켰다. 택배사 매각, 삼성몰 매각 등으로 모든 유통관련 사업분야를 정리한다

삼성은 자기들의 옥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남의 옥을 빌릴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투자하면 무엇이든 될 것’이라는 삼성 스스로의 아집이 오히려 유통시장에서 쓴맛을 보는 우를 범하게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유통 관계자들은 시장 환경 적응과 상권분석보다는 삼성의 브랜드 파워만을 믿고 무리한 투자를 한 것을 원인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신세계의 계열 분리로 유통인력의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한 투자를 한 원인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반면 경제전문가와 증권전문가들은 중장기적 시각에서 건설이나 상사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한 성장동력을 가진 유통분야를 정리함으로써 선택과 집중을 통한 그룹 내 입지 강화와 경영권의 안정을 꾀한다는 점에서, 삼성물산의 삼성그룹 지주회사로서의 입지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을 바라는 시각에서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룹차원의 실익은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