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속에 서 있는 나를 만나다

2019-09-16     토루

그날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나름 한껏 차리고 길을 나섰다. 일주일 전에 각각 이발소 미용실도 다녀왔고, 그날 아침엔 제법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시간을 한참 보냈다. 음, 제법 생기 있어 보이는군. 역시 사람은 좀 꾸며야 해.

주말이어서 더 그랬을까?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다. 홍대 이대 강남 등등 요지를 다 거치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이라서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어떤 노부부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분들을 내려다보며 소곤소곤 "아 참 두분 잘 어울리시네 우리도 앞으로 저렇게 늙자구" 어쩌구 하며 흔들흔들 서 있었다. 우린 아직 한창 나이인 데다 제법 꾸미고 나와서인지 다른 날보다 좀더 자신감 뿜뿜 활기차게 서 있었다. 주변 가득한 젊은이들에게 기죽지 않음을 은근히 즐기며 말이다. 최소한 우리 부부는 그런 생각이었다.

그렇게 몇 정거장을 지나고 있을 때, 우리 부부 앞 노부부가 아닌, 그 옆 자리 한쌍의 젊은 부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들 앞에 서 있던 예쁘장한 아가씨와 그녀를 호위하는 훤칠한 청년이 빈 자리에 앉으려고 엉덩이를 싹 돌렸는데, 바로 그 순간!

우리 부부 앞의 할아버지께서 벌컥 소리를 지르셨다. "에끼 이런. 자네들은 이 어른들이 눈에 안 보이는 게야? 마땅히 자리를 양보해야지 어찌 지들이 앉으려고 해?" 그러시면서 우리 부부를 콕 집어 가리키셨다!!!!!!!!!

허걱.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심지어 그 젊은이들이 우리를 보며 "아, 죄송해요. 여기 앉으세요" 했을 때는 정말이지 땅으로 꺼지고 싶었다.......

우리 부부은 왜 오늘 아침 그리 오래 거울 앞에 서 있었던 걸까?? 우리 인생에 내리는 석양은 어쩔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