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이름 #2. 화해의 달

2019-09-09     박다빈

여름 무더위로부터의 소요가 잦아드는 무렵, 나는 내가 보낸 절반의 해를 되돌아본다. 계절의 변화가 제일 먼저 건드리는 것은 나의 상념체이기에. 나는 내가 실수한 건 없는지, 내가 소홀하게 여겼던 건 없는지, 쭉 살펴 본다. 그리고 만일 나에게 잘못이 있는 뭔가가 있었다면, 그 잘못을 가지고 사과를 한다. 아무리 늦어도 늦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가 사과라고 생각한다. 죄책감을 가지고 삶을 옥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뉘우쳐지는 것이 있을 때는 그걸 가지고 행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내 개인의 견해일 뿐이어서, 이것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추석 무렵 안부 인사가 왕성하게 오가는데, 나는 이때 회포를 깊이 있게 푸는 편이다. 용서를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맺는 관계들에 내가 묻힌 얼룩을 잘 닦아 내기 위해서다. 결자해지를 하고자 함이다. 지난 일이라고 모른 체 지나간다면, 그 반성 없는 생활은 내 양심에도 얼룩을 묻힐 것이다. 뉘우치고도 행동하지 않는 습관이 들면 나는 내가 바라던 인간상에서 자꾸만 멀어질 것이다. 불편하고 민망하고 낯뜨거운 것은 잠깐이지만, 그 잠깐의 사과와 화해는 오랜 평화와 정의를 이룬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인지라 누군가와 함께 지내다 보면 그와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제대로 다투기도 하는데, 거기까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어울려 지내는 것은 언제나 적응 기간을 필요로 하기에. 그 적응 기간을 얼마나 지혜롭게 보낼 수 있느냐에 따라 갖가지 관계의 수명이 달라지는 것 같다.

사과하는 사람에게 박하게 구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진 경우에.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갈등 상황이 원만하게 풀리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 내가 먼저 움직여 관계의 모서리를 가다듬다 보면, 어느 순간, 모두가 나와 함께 그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