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덕의 등산재구성] 최남선이 쓴 기행문과 산행기 리스트

2019-09-06     등산박물관

최남선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기행문을 쓰고 명산을 오르면서 산행기를 남겼다. 노산 이은상, 춘원 이광수와 함께 3인방이라 해도 무방할 듯 하다.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최남선의 산행기를 통해 그시절등산문화의 일단에 관심있는 산악인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겠다.

"최남선 평전"(2011)을 쓴 류시현은 최남선을 주제로 한 박사논문을 썼다. "조선의 국토, 계몽과 각성의 장이 되다"라는 장에서 최남선이 쓴 여행기 리스트와 함께 그 성격을 밝히고 있다.

최남선의 산행기를 통해 그시절등산문화의 일단에 관심있는 산악인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겠다.

책속에는 등산과 여행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사진이 들어있다.

1904년 지금의 혜화역 근처에 있던 동소문 바깥 풍경. 여느 시골과 다름없다.

1930년대 미아리 뒷산에 대해 더 읽으시려면--> 여기를

"가로등에 불을 밝힌 1930년 평양 거리"의 모습이다. 저시절 평양은 20만명이 안되었는데, 보시다시피 일본이 개발한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었다.

해방될무렵 스무살이 안되어 평양고보를 다니다 월남한 이들에게 평양은 어떠했을까? 겨우 빵집과 영화관이 기억의 주종일 것이다. 그들의 기억이 평양의 전부가 아니다.

그들보다 조금 더 윗세대들에게 평양은 이렇게 술집과 카페와 향락의 도시이기도 했다. 그시절 평양에 대한 이야기 "나훈아는 김영도를 모른다' --> 여기를

1935년 교토대학 원정대가 백두산을 동계 초등했다. 그때 남긴 백두산 사진.

오늘날 장군봉이라고 불리는 백두산 최고봉은 일제 때 대정봉(大正峰, 다이쇼봉)이라 불렸다.

"1926년 일본 황족의 금강산 단체 관광을 촬영한 사진" 모두가 정장을 한 남자들이다. 누구일지는 검색하거나 자료를 조금 찾으면 나올 법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