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세주를 아시나요?

젊음을 부르기만 한다.

2019-08-13     알짬e

1990년대 후반에 뭣 때문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서울에서 시험을 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어느 식당을 들어갔습니다. 그 식당 벽에 술을 광고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혹시 이미지가 있나 해서 검색해 봤으나 찾을 수가 없네요.

백세주가 그려져 있고 옛날 초가집 마당에서 젊은 사람이 늙은 사람의 종아리를 때리고 있는 그림이 있는 포스터였습니다. 한 켠에는 그 상황을 설명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나그네가 이 광경을 보고 기겁을 하고 사정을 묻습니다. 사연인즉슨 백세주를 마시면 젊게 살 수 있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렇게 마시라고 했건만 아들은 백세주를 마시지 않아 아버지보다 더 늙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맞고 있는 늙은 사람이 아들이고, 회초리로 때리고 있는 젊은 사람은 아버지였던 것이지요.

이것이 백세주와 첫만남이었습니다. 단순히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신 것은 아닙니다.

보통 술을 윗사람에게 말할 때는 약주라고 지칭하는데 백세주는 정말 '약주'였던 것 같습니다. 약초를 넣어 술을 빚어서 약초향내가 그윽한 그런 술이었습니다.

몇 주 후, 대구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하며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 광고 이야기를 해주며 백세주를 하나 샀습니다. 슈퍼에서 2병 정도를 샀던 것 같은데 상당한 출혈이었습니다. 슈퍼에서도 3,000원이 훨씬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때부터 백세주 팬이 되었습니다. 소주처럼 맛이 강하지도 않으면서 약초의 향내까지 간직한, 마시기 전에 향내를 맡아보게 하는 술이었습니다.

2000년도에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되었습니다. 부서 회식자리에서 백세주를 마시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백세주의 향내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취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오십세주였습니다.

백세주 1병과 소주 1병을 주전자에 같이 부어서 마시던 방법, 식당에서는 백세주 가격이 상당했으니(6천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기억력이 떨어지는 나이가 되어가도 보니…슬프네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아주 훌륭한 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소주가 문제였습니다. 저는 소주하고는 궁합이 맞지 않아서 잘 마시지를 않는데 백세주의 향내가 소주의 강한 맛을 중화시켜주다 보니 과음을 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오십세주의 세계를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집에서 오십세주를 주조하여(?) 마시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구박을 들으가면서..

친구를 만날 때는 제가 우겨서 백세주를 샀었습니다. 1~2년 전에 친구 집에서 1박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맥주를 사기 위해 들어갔던 슈퍼에서 백세주를 발견했습니다. 옛날 생각이 나더라구요. 2병을 샀습니다. 1병은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나만 먹을 테니 너그들은 먹지마라고 큰소리 쳐 가면서..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세월이 흐르면서 백세주의 맛이 변했나 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옛향이 느껴지지도 않고 맛도 그 때보다 못한 것이었습니다. 나 혼자 먹겠다고 큰 소리 친 것이 후회되더군요.

그 날이 백세주를 마신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다음 번에 친구에게 갈 일이 생기면 그 때는 딱 1병만 사야겠습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옛날의 그 향이 다시 살아올지요?

그리고 광고의 문구처럼 다시 젊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