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매달려.”

나에게 득이 된 잔소리

2019-04-02     박다빈

   잔소리란 ‘쓸데없이 늘어놓는 자질구레한 말.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하는 말’을 의미한다. 여기서 ‘쓸데없다.’와 ‘필요 이상이다.’라는 것은 상대적인 영역에 있다. 어딘가에 요긴하게 쓰라고 저 사람이 나에게 해 준 말이 나에게는 아무 짝에 쓸모가 없다면, 저 사람의 말은 나에게 한갓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언젠가 잔소리였던 것이 귀한 가르침이나 깨우침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가치관이 바뀌면서 과거의 귀찮은 잔소리를 굉장한 교훈으로 여길 수 있게 된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강압적으로 지속하는 잔소리를 옹호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중 하나가 이것이다.

   “그만 매달려라.”

   나는 성능이 기가 막힌 돋보기 같은 사람이었다. 한 번 몰두하기 시작한 일에 미친듯이 매달리는 사람. 그 성격의 덕을 본 적도 있다. 일할 때 이런 성격은 효율적으로 결과물을 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된 적은 별로 없었다. 나는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족족 신경 쇠약과 만성 피로, 소화기 장애에 시달렸다. 뛰기 좋은 트랙을 발견하면 뛰는 것에만 신경을 쓰니, 마음의 무릎 연골이 수시로 터졌다. 마음의 폐가 틈틈이 부서져 내렸다.

   나는 인간관계도 이런 식으로 했다. 나는 내 에너지를 여러 곳에 분산시키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특정한 관계들만 돌보았다. 그 소수의 관계들 안에서도 나는 특정한 타입의 교류에만 몰두했다. 나는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밖의 것들로는 관심을 쏟지 않는 사람, 그 밖의 것들을 위협으로 아는 사람.

   “그만 매달려. 그만 좀.”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걱정스러운 투로 그렇게 말했다. 니가 상하는 것이 걱정된다. 니가 그런다고 일이 잘 될 것 같으냐. 오히려 역효과 날 수 있다. 천천히 가도 되는 때는 천천히 가라. 다른 대안들도 고려하는 게 좋지 않겠냐. 인생에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냐. 너를 만날 때마다 내 마음까지 아슬아슬하다. 매사에 하나만 아는 너는 그 하나가 무너지면 또 몇 달을 산산조각으로 사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 나는 안 보이냐. 니가 기뻐하는 얼굴로 뭘 시작할 때마다 난 외로워질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때는 그 말들을 귀로만 들었다. 마음에서는 그 말들을 듣지 못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건성으로 사과하며 살던 대로 살았다. 내가 낙원과 폐허를 번갈아 오가는 동안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내 안에서도 여러 종류의 상실이 일어났고, 그 가운데 건강의 상실도 있었다.

   내 생활 방식 때문에 내가 뭔가를 계속 잃고 있다는 자각은 항상 있었다. 그런데 그 자각이 어떤 결심이나 선택으로 바뀌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문득 ‘근데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인생 전체가 자동으로 반추되었다.

   나는 왜 미친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살고 있는 거지. 그게 뭔데. 뭐하자고.

   세월만큼 쌓인 잔소리들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이 단 하나였다는 사실이 마침내 떠올랐고, 나는 두통을 느꼈다. 관성의 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떤 사람이 어느 때 내 앞에 가볍게 남긴 말들은 내 가슴 어딘가에 남아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깨우침의 재료로 쓰일 때를. 변화의 화염을 일으킬 장작으로 쓰일 때를.

   그리고 되돌아보면 내 마음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누가 진짜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지, 아닌지. 당시에는 참 듣기 싫었어도, 진심을 다해 나를 향해 있는 말들은 어김없이 내 마음에 남았다. 조용한 기약과 함께 남아, 결국에는 나를 일깨우거나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