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2019-03-20     박다빈

날개로 허공을 힘차게 딛고 나아가는 새처럼

나는 나의 허무를 하나의 디딤대로 보겠다

그 공허한 심정을 무심히 딛고 딛겠다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듯한 오늘을

띄어쓰기 한 칸으로 보겠다

띄어쓰기가 없다면 생의 문장이 조잡할 터

나는 이 하루 동안 기꺼이 공백이겠다

다음에 올 문장을 은밀한 설렘으로 기다리겠다

만약 내 시간 내 마음이 언제나 조밀했다면 나는 기뻤을까

만일 해가 24시간 정오의 자리에 떠 있고

모든 꽃이 단 하루도 시들지 않았다면

강물의 높이가 고대의 그것과 일치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환희로울까

밤과 겨울과 척박함이 조용히 알려주는 것들을 곱씹는다

뜨고 지고 피고 지고 차고 비는 

만물에 담긴 이유를 모른다 하여

그 이유가 없다 여기지 않겠다

고집을 버리고 이만 순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