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들.
어릴 때부터 고양이가 좋았다.
천진난만한 표정도 사랑스럽지만
그 녀석들의 자유로움에서 히피들을 연상케 한다.
하루를 살아도 거침 없이 사는 녀석들을
보고있노라면 일탈을 꿈 꾸며 방랑자의 삶을 꿈을 꾼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자유롭고 히피스런 고양이 삶은 시골 고양이 삶이었나보다.
그들도 나만큼 치열한 도시생활을 견뎌나가고 있었다.
굶주리며 사는 아이들.
개발로 인해 제 집을 잃은 아이들.
가족이라고 불릴 엄마와 형제를 잃고서
이리저리 치대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나를 많이 이입한다.
그래서 그들을 보는 것이 나를 보는 것 같아
더욱 사랑스럽다.
길냥이들을 보면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춘다.
간만에 찾아오는 그들만의 세상을 방해하기 싫어서.
조용히 그들을 내려보면
치열한 삶 속에서도 분명 해학이 숨어 있다.
서로 영역 다툼한다고 으르릉 거리며 울대를 세우는데
대단한 자리도 아닌 오래된 자동차 밑 1평도 안돼는 공간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데.
밀림의 왕자의 레오처럼 천하를 호령할 기세로
앙칼지게 소리를 내보지만
"니야~옹"
울음 소리가 고거밖에 안되는 것들이 싸우고 난리다.
계양역에 가면 하얀 색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나는 그 아이를 귀뚤이라고 부른다.
귀뚜라미 잡는 선수이다.
얼마나 잘 먹었는지 땟깔이 고와 토끼 한 마리 같다.
깡충 깡충 잘도 뛰고 잘도 잡아먹는다.
혹시라도 계양에서 하얀색 고양이를 보신다면
100% 귀뚤이다.
작년 여름 아라뱃길에서 겪은 이야기다.
페리카나에서 반반 치킨을 배달 시켰다.
귀신 같이 냄새를 맡고 나타난 큰 고양이.
가까이 올 듯하면서 일정거리 유지하면서
밥 달라고 당당하게 울고 있었다.
훅 살코기를 던져 줬더니 더 달라고 보챈다.
퍽퍽한 가슴살을 다 먹여 보냈다.
남은 치킨에 맥주 한 캔 하고 싶어 후다닥 마트 간 사이
봉다리째 물고서 우리 치킨을 몽땅 스틸해 갔다.
저 멀리 봉다리를 들고 가는 고양이의 실루엣이 보인다.
우습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길고양이들을 보면 잘 살아달라고 당부하며
나도 잘 살아보리라 다짐하며 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