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 꾸는 꿈을 위해

사흘의 밝은 눈을 가장 밝은 귀로 옮기자.

2019-01-30     송이든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사흘은 내가 어둠으로 가기 전에 허락된 시간이다. 어둠으로 인해 할 수 없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내게 생길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하게 되는 현실이 사흘 후면 나는 어둠속에 갇힌다. 고통스럽고 혼란스럽지만 어둠에 익숙해지면 그 나름대로 살아진다는 게 그들의 이야기다. 사흘 후에 아퍼할 것으로 내게 허락된 밝은 세상을 물들일 필요는 없다.

눈이 안 보인다는 건 장애인 건 맞다. 하지만 장애로 삶이 정지된 건 아니다.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많은 시간을 방안에서 나가는 걸 두려워 할 것이다. 밖에 나가면 모든 것이 공포일 것이다. 눈은 어둠에 갇혀 볼 수 있는 권한을 내게서 뺏아가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들이 너무 많다. 병원에 누워 사지를 맘대로 쓸 수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내 손과 발은 자유롭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면 내 귀는 음악도 담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음성도 들을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다. 눈으로 보는 걸 손으로 만지며 손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한가지 기능이 마비되면 다른 기능이 더 부각된다고 한다.

청각이나 촉각으로 내 몸의 주파수를 맞추어 놓고 살면 된다.

그저 숨쉬는 것만으로 살기는 싫다. 꿈을 꾸지 않는 삶은 너무 날 무기력하게 어둠속에 가두어 버릴 것이다.

그래서 눈이 어두워져도 유튜브방송을 하는 사람도 봤고, 손이 장애이면 입에 붓을 물고라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눈이 안보이는 것으로 주저 하지 않고 꿈을 꾸겠다는 것이다.

책 읽어주는 오디오 방송도 있고, 내 손은 자판도 안보고 칠 능력도 된다.  내게 남은 사흘동안 내 몸의 주파수를 귀와 손으로 옮겨놓기 위해 준비할 것이다. 눈에서 귀로 주파수를 돌려놓자.

어둠속에서도 내 꿈은 밝은 세상에 내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