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서 쉽게 떼어놓을 수 없는 녀석들

2018-12-29     김봉건

서랍을 열 때마다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나를 반기는 녀석들, 다름 아닌 PDA 시리즈다. 아마도 첫 PDA 영입은 1990년대 후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당시 모두들 휴대폰을 들고 다니던 시절, 전철에서 PDA를 꺼내든 뒤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뿌듯해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어쨌든 당시엔 대단한 자부심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사라진 토종PDA 셀빅 제품이었는데, 이후 머스트해브인 휴대폰과 PDA가 결합된 오늘날 스마트폰의 효시라 부를 수 있는 PDA폰 셀빅XG의 그 멋진 자태가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난 제품이 출시되자마자 녀석을 구입했다. 이때가 아마도 한일 월드컵이 벌어지던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한 번 PDA를 맛본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으로부터 탈출할 수가 없다는 속설이 있다. 물론 나 또한 이를 인정하는 바다.

이후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내놓고 안드로이드OS가 탑재된 스마트폰이 줄줄이 출시되어 시장에 안착한 뒤에도 나의 PDA폰 사랑은 한동안 계속된다. 윈도CE가 탑재된 기기부터 윈도모바일 시리즈가 탑재된 기기까지 무척이나 다양한 종류로 갈아탔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 손에 쥐어졌던 PDA폰은 삼성전자가 출시한 M4650 시리즈였다.

윈도모바일OS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던 녀석이다. 물론 그러면 뭐하나 싶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금의 스마트폰에 대한 개념과 실사용이 가능한 모델까지 버젓이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서도 정작 모바일 시장을 애플과 구글에 고스란히 빼앗기고 말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배경 화면을 창의적이면서도 기능적으로 꾸밀 수 있는 어플이 있었는데, 이 녀석을 붙들고 날밤을 꼬박 세웠던 적도 부지기수였다. 이렇듯 녀석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난, 지금도 윈도모바일의 후속이라 할 수 있는 윈도폰을 사용하며 예전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으니 이쯤 되면 말 다한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은 고물로 취급되고 있는 데다가 현역으로 사용할 수도 없는 기기들을 굳이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서랍 속에 고이 모셔놓고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애정이 해당 기기들에 속속들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