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in]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오직 노래뿐” 뮤지컬 ‘오디션’의 병태
[캐릭터in]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오직 노래뿐” 뮤지컬 ‘오디션’의 병태
  • 박세은
    박세은
  • 승인 2012.07.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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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거나 퇴색되지 않는 ‘꿈’을 노래하다

커다란 뿔테안경, 흩어진 곱슬머리에 순박해 보이는 얼굴. 맑고 순수한 청년 박병태는 오늘도 밴드 복스팝의 화려한 무대를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어딘가 움츠러든 소심한 몸짓으로 라이브 바의 플로어를 닦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은 그 안에 숨겨진 열정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잠시 후 감춰졌던 그의 열정이 무대에서 폭발하는 순간 관객은 그의 반전 매력에 비로소 눈을 뜬다.

뮤지컬 ‘오디션’의 무대 위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밴드 복스팝의 일상을 크고 작은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간다. 표류하는 밴드 복스팝을 묵묵히 끌어가는 것은 위기에 굴하지 않는 병태의 숨겨진 땀과 열정이다. 그는 소심해 보이는 외양 속에 뚝심도 있고 위기 속에서 결정타를 날리는 해결사다운 면모도 있다. 밴드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밴드를 위해 작곡을 한다. 밴드를 위해 선아를 보컬로 영입하는 공을 세우는 것도 리더 준철이 아닌 병태다.

묵묵한 내조형이자 소심 캐릭터로 출발한 병태는 극의 중반 이후 다양한 진면목을 발산한다. 연습 도중 기타를 치며 직접 작곡한 노래를 들려줘 갑자기 천재적인 면모를 발산하기도 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까만 밤하늘에 대고 좋아하는 사람이 불렀던 노래를 쏟아내는 대목에서는 애절한 순정이 여심을 흔든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어떤 상황에도 쉽게 비관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한결같음’이다. 가난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묵묵히 아르바이트를 이어 나가는 그는, 꿈을 꾸되 결코 허덕이거나 지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해서도 한결같다. 좋아하는 선아에게 무리하게 돌진하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으면서 선아의 마음을 조금씩 점령해간다.

한편, 그에게는 뮤지션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지켜보는 이들마저 안타깝게 하는 그의 약점은 바로 ‘무대공포증’이다. 그는 과거 밴드 복스팝의 메인보컬을 맡기도 했지만 정작 스포트라이트가 켜진 오디션 무대에서 한 소절도 노래하지 못했던 슬픈 전적이 있다. 그가 입만 뻥끗거리고 내려왔던 그 사건 이후 아름다운 음색의 감성보컬 박병태는 밴드 내에서 잊혀진 과거가 되어 가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노래하는 것을 멈추지도, ‘노래하는 박병태’를 포기하지도 않는다. 관객들이 한결같은 그의 캐릭터에 믿음이 생길 때쯤 그의 목소리가 차츰 무대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노래가 삶의 전부인 박병태에게 노래는 곧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 그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 노래를 부른다. 선아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힘든 고백을 해 왔을 때 그가 해 준 것도 노래였고, 밴드가 오래도록 준비해왔던 오디션을 앞두고 불행한 사고를 겪어 뿔뿔이 흩어졌을 때 그가 선택한 것도 혼자서 노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는 마치 듣는 이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들린다.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그의 말이 들리고, 진심이 보인다. 내가 여기에 있고, 밴드 복스팝이 여기에 있다고 그의 노래 속 짙은 호소가 무대를 울린다.

박병태를 연기한 장덕수 배우 역시 인상 깊은 장면으로 병태가 노래하는 장면들을 골랐다. 선아에게 ‘내가 노래 불러줄까?’라고 건네는 대사와 “저희가 원래는 밴드인데요. 우리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을 언급하며 장덕수 배우는 “선아가 많이 아파할 때 병태가 해줄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어서 노래를 부른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복스팝이 비록 다 모일 수 없었지만 팀을 위해서 병태가 혼자 무대에 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병태의 노래는 곧 ‘그의 모든 것’이기에 그 어떤 기교보다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 아닐까.

병태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게 꿈을 위해 진심으로 열정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가 보여주는 꿈이란 몰아치는 현실과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도 바래거나 퇴색되지 않는다. 반드시 이뤄져야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병태는 지금 내가 서 있는 길이 꿈꾸던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지 않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한눈팔지 않고 오직 한 곳으로 달려가는 현재의 시간들을 사랑할 줄 안다. 결국 오디션에 붙지 않더라도, 스타가 되지 않아도 좋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짧은 결말’일 뿐이고, 청년 병태가 보여주는 우리들의 삶은 ‘짧은 결말’이 아닌 ‘기나긴 과정’ 속에 놓여 있다. 

 

박세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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