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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효산리.대신리 고인돌 유적지로 떠나는 청동기시대여행
교과서 속 이야기
2012년 05월 31일 (목) 10:13:40 편집국 -

화순 효산리.대신리 고인돌 유적지로 떠나는 청동기시대여행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청동기 시대 여행지

고창 도산리 고인돌마을 - 전라북도 고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모양의 고인돌이 많은 곳으로 유명해요. 특히 도산리 고인돌 마을에서는 남쪽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방식 고인돌도 구경할 수 있답니다. 고인돌마을에서는 숙박할 수 있는 민박집도 있고 예약을 하면 체험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어요. 마을에서 운영하는 선사문화체험은 인기가 높답니다. 무엇보다 체험프로그램 중 마을산책하기가 가장 인상적인데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을 마을어르신의 구수한 설명과 더불어 산책하며 마을풍경을 감상하는 재미는 일품입니다. 마을 산책과정에서 고인돌마을이 자랑하는 북방식 고인돌도 만날 수 있어요.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고인돌 박물관도 있답니다.

 

미리공부해보는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 마을풍경
청동기시대 마을풍경



 

화순 효산리.대신리 고인돌 유적지 여행자수첩


 

홈페이지: http://www.dolmens.or.kr/
주소: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춘양면 대신리 일원

◈ 화순군내버스(218번)가 춘양면 대신리 지동 및 도곡면 월곡리 운행
⇒ 광주광천동터미널 앞 - 광주상공회의소 - 백운동로타리 - 남광주로타리 - 학동정류소- 화순읍 군내버스터미널 - 능주 - 도곡 - 도암 - 운주사입구 - 중장터

* 버스시간
- 대신리 지동: 화순에서 06:50, 13:44, 16:44 (종점)
- 월곡리 행: 광주에서 06:54, 08:58, 11:30, 13:26, 15:26, 17:30, 20:53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약 기원전 2000여년 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어요.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만들기가 어려워 소수의 지배계층만이 사용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돌과 나무를 생활에 이용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사회는 신석기 시대와는 확연하게 달라졌어요.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농사짓기가 더욱 발전하여 오늘날 주식으로 먹는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보리, 콩, 수수 등 더 많은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지요. 농사짓기는 사냥이나 채집활동보다 더 많은 먹거리를 사람들에게 안겨주었어요.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먹거리를 창고에 넣고 저장하여 오랫동안 굶지 않고도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먹거리가 창고에 쌓이니 이웃의 곡식을 탐내는 무리들도 생겨났어요. 그래서 다른 마을 사람들이 쳐들어와 약탈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여러 식구들이 한마을에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청동기 시대 마을은 앞에는 물이 흐리고 뒤로는 산이 있는 구릉지에 집을 지었으며 마을 앞으로는 빽빽하게 목책을 두르고 망루를 세워 다른 마을 사람들이 침입하는 것을 막았어요. 마을입구에는 솟대를 세워두기도 했어요. 솟대는 하늘과 마을을 연결해주는 전령과 같은 구실을 하여 마을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하늘에 소원을 빌면 하늘이 안전하게 마을을 보호해준다고 믿었답니다.

 

화순 효산리.대신리 고인돌 유적지

 

화순 효산리.대신리 고인돌 유적지
화순 효산리.대신리 고인돌 유적지


우리나라는 전 세계 고인돌의 40%가 모여 있는 거석문화의 중심지예요. 그중 많은 수의 고인돌이 서해안을 따라 분포하는데 그중 많은 수가 전남지역에 모여 있답니다. 농경생활을 시작한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물이 풍족한 지역을 따라 넓은 땅에 마을을 이루고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어요. 따라서 자연스럽게 땅이 기름지고 물이 풍부한 땅을 찾아 마을을 이루었겠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농사짓기 좋은 땅이 어디겠어요. 맞아요. 바로 평야지대가 드넓게 펼쳐져있는 전라도예요. 전라도에서도 특히 고창, 화순, 순천 지역의 고인돌은 매우 유명하며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일대의 고인돌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둘러싸여있어 비교적 보전상태가 좋고 그 숫자도 많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적이랍니다. 얼마 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유산으로도 선정되었어요. 지금은 아직 박물관이라든가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지 못했지만 이제 그 모양새가 갖추어지기 시작하면 세계적인 유적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 이라고 믿어요.

 

고인돌 선사문화체험관


   
 

고인돌 선사문화체험관



 

효산리 고인돌군을 살펴보기 전에 고인돌 선사문화체험장에 먼저 들렀어요. 청동기시대 마을과 비슷하게 꾸며놓은 곳이었답니다. 마을 주변을 목책으로 빙 둘러 방어기능을 높였고 마을 입구에는 솟대도 세워져있었어요. 선사문화체험장에서는 볼 수 없지만 과거 청동기시대에는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환호라는 마을 방어를 위해 파놓은 구덩이를 지나야만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화순 고인돌 공원에서는 무엇보다 청동기시대 움집 두기가 복원되어있어서 흥미를 끌고 있어요. 하나는 마치 집회장처럼 생긴 길고 넓은 형태의 움집이며 나머지 하나는 3~4명의 핵가족이 살기에 알맞은 소규모 움집이에요. 청동기시대에도 신석기시대와 마찬가지로 움집에서 살았지만 내부 구조와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요. 일단 신석기시대처럼 안으로 깊이 푹 파인 움집이 아니라 반지하이긴 했어도 지상으로 보다 올라온 형태를 띄고 있구요. 화덕자리도 가운데에서 점점 가장자리로 옮아가지요. 신석기시대 움집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사냥도구들 보다는 농경사회의 상징인 농기구들이 집안에 더 많았던 것도 차이점이라 할 수 있어요. 물론 살림도구들도 점점 세련되어지고 정교해지고 말이에요. 화순 고인돌 마을에서 만난 움집들은 청동기시대의 생활모습을 조금이나 짐작할 수 있게 해줘요.




 

괴바위 고인돌을 통해본 남쪽지방 고인돌의 특징



 

괴바위 고인돌
괴바위 고인돌


효산리 고인돌 공원에 입장하면 백제고분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괴바위 고인돌이에요. 이 괴바위 고인돌과 강화도 부근리에서 만날 수 있는 부근리 고인돌을 비교해보았습니다. 강화도에 있는 부근리 고인돌은 흔히 북방식 고인돌이라고 부르는데 커다란 기둥돌 두 개를 세우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어 시신을 땅위에 모셔두는 것이 특징이라면 괴바위 고인돌은 바닥을 파고 지하공간을 만든 다음 굄돌을 받치고 커다란 덮개돌을 얹어 만든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 같은 고인돌이라 할지라도 지역에 따라 이렇게 모양이 달라진 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어요. 더군다나 괴바위 고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어떻게 이렇게 큰 돌을 옮겨왔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이에요. 엄마 말씀이 이 괴바위 고인돌은 무덤으로 사용했다기보다는 제사를 지내던 제단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데요. 그 이유는 다른 고인돌과는 다르게 규모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아주 정갈하게 잘 정리되어있는 고인돌이기 때문이래요. 보통 제단으로 사용되었던 고인돌은 발굴조사를 해도 유골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고인돌이 무덤뿐만 아니라 제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화순 고인돌 유적지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에요.


관청바위 고인돌의 전설

관청바위 고인돌
관청바위 고인돌

도곡벌판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관청바위 채석장 아래로 관청바위 고인돌군이 흩어져있어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전라남도 보성원님이 나주 목사를 방문하기위해 보검재를 넘어 이곳 고인돌 근처에서 잠시 쉬고 있었대요. 마침 원님이 행차하신 것을 알고 마을 주민들이 찾아와 억울한 일에 대한 상소를 올리자 원님이 쉬고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즉결처분을 내려주셨다고 합니다. 원님이 관청 일을 처리했던 바위라고해서 그 뒤로는 이곳을 관청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대요. 이 관청 바위 고인돌군 주변에서는 과거 사찰이 있었던 흔적도 남아있으며 농경지가 만들어지면서 많은 고인돌들이 사라졌지만 현재 대형 고인돌들이 밀집되어있어 당시 풍경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어요. 화순고인돌 유적지에 있는 많은 고인돌들이 다 놀라웠지만 이렇게 커다란 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풍경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TV속에서 본 영국의 스톤헤지나 모아이섬의 석상보다 화순고인돌이 주는 감동이 더 컸답니다.




 

화순 효산리.대신리 고인돌 유적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은 청동기와 석기로 나눌 수 있어요. 청동기는 다루기가 어려운 금속이었기 때문에 주로 지배계층에서 사용하였으며 일반 사람들은 여전히 석기를 사용했지요. 청동기 시대는 벼농사가 시작되고 농업이 크게 발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농경문화와 관련된 유물이 많아요.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반달돌칼이랍니다. 신석기시대 때 사용하던 뭉툭한 돌날이 무겁지 않게 날렵하고 세련된 세모모양의 반달돌칼로 변하게 되요. 반달돌칼은 양쪽에 구멍을 뚫어 끈을 꿴 다음 끈에 손목을 걸어 살짝 쥐고 이삭을 싹둑 자르는 용도로 사용되었어요. 청동기인들의 지혜가 엿보이지요? 이 밖에도 본격적인 농경에 사용되던 돌보습이라든가 괭이등도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에요. 청동기시대의 지배계층에서 사용하던 대표적인 물건으로는 청동방울과 청동거울, 청동검 등이 있었어요. 지배계층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사장의 역할까지 겸했기 때문에 목에는 번쩍이는 청동거울을 걸고 허리에는 청동방울을 달고 청동검을 옆에 차고 그 위엄을 과시했답니다. 큰 규모의 고인돌 밑에서는 지배계층이 사용하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어요. 

반달돌칼
반달돌칼


화순 효산리 및 대신리 고인돌 유적지 포인트

고인돌을 통해 청동기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고인돌 유적은 다양한 체험활동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조롭고 지루하기 쉬워요. 미리 다양한 책을 읽어 충분히 공부한 뒤에 관람할 수 있도록 해봐요.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요.

글, 사진 김수정(여행작가)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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