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민, 탈 재현을 위한 상상적 실험
김보민, 탈 재현을 위한 상상적 실험
  • 김석원 FN투데이 대중문화부 편집위원
    김석원 FN투데이 대중문화부 편집위원
  • 승인 2012.02.19 17: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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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투데이 명작 전시 리뷰 ; 김보민의 표류기 (카이스갤러리)

전 시 명: 표류기
전시기간: 2010. 3.11 - 2010.4.2
전시작가: 김보민
전시장소:카이스갤러리(CaisGallery)tel;02-511-0668
 

● 2010년 3월에 전시했던 김보민 작가의 <포류기>

<카이스 갤러리>의 2층 전시장을 방문했을 때, 깔끔한 흰 벽면에 그녀의 전시재목과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장의 입구 전면 벽면에 가로로 길게 늘어진 테이핑으로 되어 있는 작품

김보민, <Set Sail>, 벽면에 테이핑, 2010.

 <Set Sail> 이 보인다. 가로 포맷 화면을 사용한 것은 기본적으로 작품의 물리적인 크기에 집착했다기보다는 동양화에서 수평으로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방식에 초점을 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이런 시도는 관람객들이 처음 전시공간에 들어왔을 때 마주치는 공간으로서, 친절하게 자신의 작업을 이해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전시의 동선은 관람객이 오른쪽의 공간을 보고, 다시 되돌아와서 왼쪽의 공간을 순차적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관객으로서 전시의 동선에 대한 순서가 작품을 감상하는 부분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녀의 일차적인 작업 동기는 전통적인 동양화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대학원 제학 시절 교수님과 대화 도중에 자신의 작업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고, 교수님은 그녀에게 한국화의 가장 기초적인 선(線)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 순간 그녀는 작은 깨달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선에 대해서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을 왜 하는가?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전통적인 동양화에서는 필력(筆力)이 중요한 문제로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한국화에서는 먹을 갈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예비단계가 있다. 즉 선으로 그림을 그리기 전 정신을 가다듬는 예비단계가 있어야, 그 후에 정신과 육체가 합일되어 비로소 그림을 그리게 된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이란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새롭게 변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젊은 작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에서 비평의 대상으로서 충분하다.

작가 김보민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필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고심했다. 선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 고민을 한 결과 매체는 매체 일 뿐이며, 매체가 어떤 정체성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새로운 작업의 방향을 고민한다.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전통적인 회화에서 탈 영역화를 지향하고, 동양화에서 매체의 확장을 꾀하려는 젊은 작가들에서 발견되는 특성 중의 하나이다.

김보민 작가는 새로운 작업을 하기 전에 우흥<巫鴻: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술사학자>의 책을 보고 많은 감동을 하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대학원 재학 중에 우흥의 논문「그림 속의 그림」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이 논문에서 우흥은 저우원쥐(周文矩)의 그림을 예로 들어 ‘병풍 속의 병풍’에 예술적, 조형적 가치를 부여합니다. 저우원쥐의 작품은 병풍 속 중심인물의 재등장, ‘현실’세계와 ‘일루 전’세계의 공간적 통합 등의 특징을 보이며, 그림의 시각적 트릭은 일루 전이 있는 공간과 시각적인 은유를 창조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흥은 이를 메타회화라고 표현하며 중국회화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파악하고 있어요.”라고 얘기를 한다.

작가의 이 말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사의적(寫意的)인 묘법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의적인 표현 방법이 현대 예술에서 색다른 지점을 찾을 수는 없지만, 왜? 이러한 접근방식이 중국 전통회화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즉 사진에 노에마 (noema:실제로 존재했음)가 있다면, 전통회화에서도 노에마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발상은 동양회화에서 메타회화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사진을 배웠던 경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느껴진다.

김보민의 작업은 동양화에서는 다 시점(多視點)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그려진 부분을 떼어놓더라도 독립된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는 하나로 합일된다. 또한, 화면을 길게 해서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화면에 선 대신에 검은색 테이프를 붙였고, 겸제 정선(鄭敾)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현대적인 어법으로 해석한다. 초기의 작업에는 검은색 라인 테이프가 많이 등장했다가, 점진적으로 기존의 먹선으로 그린 작업과 인위적으로 만든 테이프의 선이 함께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녀의 작업에서 검은색 라인 테이프를 사용한 구체적인 이유가 선의 현대적인 표현, 모시의 재질감에서 오는 한계적 상황 (모시는 재질감이 거칠어서 직선을 그릴 때는 먹이 깨져 버린다.)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녀의 그림에서 표현 매체로서의 선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전통적 동양화의 방법적인 측면에서 선은 ‘그리기와 쓰기라’는 이중적 의미의 층위를 생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에서 테이프는 오려진 상태에서 화면 위에 ‘붙여지기’에 그리기 적 층위만 유지한다. 그녀의 그림을 처음 접하면 어떻게 이렇게 디자인적으로 선을 그었을까? 의아해지는데, 그 이유는 ‘붙이기’ 방법의 특성 때문이다. 테이프는 효과적인 측면에서 기표적, 그래프 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녀의 그림에서 검은색 라인 테이프는 건물과 사물의 외관을 표현하는데 사용되며, 방법적인 측면으로는 가까운 곳은 검은색 테이프를 굵게 사용하고, 먼 곳의 풍경은 가느다란 테이프를 활용해서 입체감과 원근감을 동시에 표현했다. 이런 방법론은 전통적인 한국화에서 농담(濃淡)의 표현을 검은색 테이프가 대신한 것이다. 즉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방법만 달라질 뿐 표현행위는 유사한 것이다.

하지만, 테이프의 기본적인 성질을 활용한 것은 이해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 때문에 사용되었는지는 판단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화면에서 강조하고 몰입하게 하는 방법으로서 테이핑 효과를 노린 것인지, 아니면, 수평과 수직적인 효과를 적절히 살리기 위한 것인지, 테이프를 통해서 여백의 미를 표현하기 위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작가는 이처럼 테이프의 세 가지 효과에 대한 구분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작업한 것으로 느껴진다. 만약 이러한 효과를 모두 표현하려고 했다며, 테이프의 활용과 내용적인 측면에 대해서 세심한 구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프의 공통적인 효과가 있다면 그녀가 관찰한 일상적인 지역을 ‘탈 지역적인 성격의 도시’ 로 변화시키는데 일조했다. 동시에 이런 표현 방법은 대상의 형태가 가지고 있는 질량 혹은 무게감을 온전하게 드러내지 않고, 대상의 외관적 특성만 부각된다. 허술하게 보이는 이런 특성은 실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결국, 김보민이 묘사한 테이프로 만든 건물, 집 등은 재현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를테면 원래 있는 도시를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표현했다면 원래 있었던 온전한 도시는 따로 존재하는가? 그 도시는 어디에 있는가? 작가가 표현한 도시를 과연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기존의 도시풍경을 지각하기 이전에 재현된 대상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오히려 전혀 낯선 공간으로 비친다. 즉 마땅히 있어야 할 실재와는 다르게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가 펼쳐진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작가가 사의적(寫意的)인 표현에 대한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저우원쥐의 작품에서 드러난 현실과 일루 전의 세계에 대한 공간적 통합을 표현한 것이다. 김보민의 쪼잔 하게 묘사된 그림의 나머지 자연적 풍경은 세필로 그려진다. 작가는 “수묵담채로 그려진 부분은 수묵의 농담과 저의 습관, 색깔을 가지고 있어 테이핑과 강한 대비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또 시각 기호에서 도시의 화려한 색감이 삭제되어 회색으로 남아 있는 경우 등이 있는데요.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이미지를 가진 테이프의 선과 제거된 색채가 현대 도시의 기계화된 일상을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테이프는 매체로서 그 역할을 해내고, 그려졌다는 느낌보다 붙여진, 만들어진 듯한 느낌을 전달합니다....... 또 테이프와 수묵, 두 매체가 한 화면 안에서 서로의 문제를 공유하기도 하고 경계하기도 하는 진폭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라고 얘기한다.

그녀는 이번 전시에서 그림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곳만 부분적으로 테이핑을 사용하고, 테이핑 된 부분에도 채색을 가미해서 서로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했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테이프를 고정하기 위해 아크릴 계열의 2가지 안료를 사용해서 화면 전체를 코팅해서 그림의 보존력을 높이고자 했다.

그녀의 작업에서 재료적인 문제를 살펴보면, 그림의 지지체 역할은 <모시>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광목을 주로 사용하다가 점진적으로 바뀌는데, 작가는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한지의 재료 성은 남성적인 이미지를 연상하는 데 비해서 모시는 좀 더 여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종이에서 성별을 찾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한지에서 먹과 채색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린 것과 모시에 그림을 그린 것은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한지의 경우 한번 그림을 그리면 다시 고칠 수가 없지만, 모시는 그림을 그리다가 즉석에서 고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또한, 모시의 경우 먹이 퍼지고 채색이 안착되는 측면에서 단아하게 색과 먹이 은은하게 고착되는 효과가 있다.

한국화는 오래전부터 한지를 바탕으로 그 위에 먹과 채색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했고 오늘날에도 그러한 표현 방법은 계속된다. 현대 회화에서는 전통적인 표현방법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과 시대의 정신에 부응하는 한국화의 표현방법과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존한다. 이런 변화에서 전통과 동시대의 정신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시 돼야 하는가는 많은 논의가 있었다. 작가는 <모시>를 통해서 전통적인 방법과 동 시대성이라는 두 가지 표현방법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모시>의 재료적 사용은 작가의 표현 방법과 잘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보민,<가회도,Map of Gahoe>, Tape, Colors and Korean Ink on Linen,185*244cm,2009.

예를 들면, 그녀의 <가회도, Map of Gahoe>에서는 전체적으로는 웅장하게 보이는 도시의 풍경에서 <모시>가 사용된 배경의 먹이 번지는 효과는 ‘중층적인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이런 분위기는 한지에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모시는 그녀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재료인데 특히, 모시의 결은 그림을 완성한 후에도 그 안이 비춰지기 때문에 고풍스러운 느낌을 오랫동안 유지한다.

작가의 작업 전반을 관류하고 있는 것은 현실세계를 가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함께 공존하기도 한다. 스펙터클한 작품이 생산하는 내러티브는 전반적인 화면 구성에서 거대한 스케일과는 상반된 지나치게 쪼잔 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표현 방식에서는 단순한 기록이나 묘사를 넘어서 다양한 상상의 세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김보민의 한국화는 전통적인 회화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제시하는 재현의 문제에 천착한다. 실제를 재현한 것인지, 탈 재현된 가상인지 구분이 모호한 외형적인 틀은 거대하지만, 그 안은 지나치게 조잡스럽게 표현되고, 가볍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법을 완전하게 비켜나가지는 않는다. 그것은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한 화면에 상반된 효과를 추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전해지는 작가의 감성은 그 본질에서 분명하고 단호하다고 여겨진다. 일관된 가치관과 안정된 조형체제를 통한 작가의 시각은 한국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듯하지만 꽉 막혀 있는 ‘강박적인 화면구성’은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그런 이유 때문이지 처음에 그림을 보면 안정감을 얻게 되지만, 계속 그림을 주시하고 있으면 부지불식간에 답답함이 밀려온다.

 

김보민, <Set Sail>, 벽면에 테이핑, 2010.

김보민,<가회도,Map of Gahoe>, Tape, Colors and Korean Ink on Linen,185*244cm,2009.

지도, 장소가 사라진 도시풍경

● 김보민은 홍익대학교 근처에서 지도를 그리는 방법을 배운 후 그림을 제작하는데, 이런 행위는 작업에서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그녀가 제작한 지도의 활용은 단순하게 대상을 똑같이 재현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지 않는다. 지도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마크 몬머니어(Mark Monmonier)의 <지도와 거짓말>이란 책에서는 지도에 그려져 있는 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지도의 재현은 비현실적이며, 정확한 지도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일반적인 지도의 기능을 떠올릴 때, 어느 누구나 알 수 있는 약속된 기호로서 작용하며, 지리적인 정보를 제공해준다. 우리는 지도의 이런 기능 때문에 여행을 떠날 때 도움을 주는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심지어 인터넷의 구글 맵에서 다른 지역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고, 일상에서는 차량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의 지리정보를 통해서 지도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다. 하지만, 공간을 재현하는 지도의 기능은 실제의 모습뿐만 아니라 상상의 세계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임동근의 <지도를 생산하고 비평하기>에 의하면 “....지도는 그 자체가 부정확해야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공간의 질서를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면 상이한 축척으로 재현되는 의미 자체가 상실된다. 예를 들어 보르헤스의 <과학의 정확성>에는 제국의 지도 제작자들의 우화가 나온다. 이들은 정확한 지도를 그리기 위해 점점 더 큰 지도를 그린다. 결국, 실제 왕국과 똑같은 크기의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게 되고, 그 결과 전 제국이 지도로 덮인다는 가상의 우화이다. 즉 지도는 그럴듯해 보이도록 적절한 조작을 행하는 것, 정확하다 여겨질 만큼 부정확하게 재현하는 게임이다.”고 언급한다.

당연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현대미술에서 작가들이 지도를 쉽게 접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근거자료로 사용하지만, 똑같이 재현하지는 않는다. 지도의 특성이 잘 드러난 그녀의 그림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그림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고 지도를 바탕으로 한 조감도(鳥瞰圖)의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는 형식이 두드러진다.

작가가 이런 시각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겸제 정선(鄭敾)의 그림에서 진경(眞景)이라는 의미에 깊이 천착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정선의 그림은 자신이 살던 한양을 그린 것으로서, 정선이 얘기하고자 한 것은 우리 것에 대한 주체사상을 강조한 것이다.

작가의 그림에서의 외연은 정선의 정신적인 영향을 바탕으로 산수화를 그린 것이지만, ‘지금 여기의’ 서울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다. 김보민이 고 지도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 된 것은 원서동 탐사작업부터 시작한다. 그러한 관심의 배경에는 강희언(姜熙彦)의 인왕산도(仁王山圖)를 쓴 강세찬의 글을 보고 고취된다. 내용을 살펴보면 “진경을 그리는 사람은 매번 지도와 닮을까 걱정하지만, 이 그림은 십분 진경에 가깝게 그렸으면서도 또한 화가의 법도를 잃지 않았다” 라는 것이다. 즉 강희언의 그림은 회화의 법도를 지켰으며, 사실과 같으면서 이것을 피해 가는 방법을 생각한다. 김보민의 개인적인 해석은 실경이 지닌 전통적인 이미지를 현대적인 어법을 통해서 재해석됨을 의미한다.

작가 김보민의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여의,Yeoui>는 한강의 조감도 이미지의 그림은 영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를 보고 영향을 받은 후에 그렸다. 그녀의 눈에는 여의도가 순간 괴물처럼 보이면서, 실제가 아닌 가상의 세계로 인식된다. 이것은 본인이 <여의>를 바라본 개인적인 시각과 유사한데, 부감 시점의 효과를 살린 한강의 모습은 건너편의 육지로 ‘촉수(다리)’를 길게 늘어뜨린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그림에서 보이는 여의도는 지도처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위치와 동일한 시점에서 그린 것이 아니라, 어떤 상상의 위치를 점유한다. 김보민은 <여의>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여러 가지 문헌을 통해서 서울을 관찰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밤섬의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밤섬은 1970년대의 박정희 정권 때 여의도를 건설하기 위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그 이유는 여의도를 매립하는 과정에서 밤섬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강제적인 장소박탈(displacement)’ 에 해당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도시와 자연개발 그리고 환경파괴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데, 밤섬에서 거주하는 주민이 강제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주한 것은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그 후, 이곳에 사는 주민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고향이 보이는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얘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밤섬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환경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다른 곳으로 갔던 백로가 다시 날아들게 된다. 그녀는 이러한 현상을 통해서 자연은 그대로 놔두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회복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관객이 <여의> 작품이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김보민의 그림 <정업,Jean up>은 은퇴한 궁녀들이 노후에 머무르면서 현생의 업을 씻는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그림을 보면 왼쪽과 오른쪽의 구도가 맞지 않고, 백로, 소나무 책, 돌, 물 등이 소재로 등장하며, 기와집을 중심으로 자연적인 경관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이 그림은 실내풍경과 실외 풍경을 동시에 보여주며, 정적인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문이 열려 있는 효과는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느낌이 들며, 문안의 방안구조까지 표현해서 재미와 공간감을 함께 느끼게 한다.

 <계동,Gyedong>은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두운 밤을 연상하게 한다. 근경의 오른쪽 화면은 전봇대의 빨간색 불빛의 조명은 동심원을 그리면서 주위에 퍼져 있고, 담벼락과 길바닥도 빨간색 불빛이 스며들어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벽을 기어오르려는 고양이의 모습이 보이고, 왼쪽에는 고양이가 담벼락에 앉아 있다. 중경의 풍경에는 도로변에서 질주하는 자동차의 모습이 등장하고, 그 너머에 산등선의 모습이 드러난다. 결국, 근경, 중경, 원경이 복합적으로 표현되며, 화면에 입체적인 효과를 부여한다. 이러한 효과는 도시의 다양한 요소를 일정한 방법으로 조화롭게 정돈시켜 일상성과 규칙성을 드러낸다. 또한, 언뜻 보기에 부조리한 조합들. 예를 들면, 일상적으로 낯익고, 정겨운 풍경이지만, 몽롱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묘한 경계를 지시한다. 그녀는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색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김보민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생각했던 것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도시의 풍경은 조감도를 활용한 부감 시점, 정면으로 바라본 시점이 등장하며, 전경, 중경, 원경의 시점이 모두 세필로 자세하게 처리되어 있다. 하지만, 조감도에서 단점으로 작용하는 부분 즉, 뒤쪽의 그림이 표현되지 않는 결점이 김보민의 그림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김보민은 이러한 부분을 처음부터 의도하고 그린 것인지 아니면, 전통적인 한국화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 배제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전체적인 도시풍경에서 사람의 모습이 작게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부분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한적하고 비현실적 공간은 무한한 상상력을 꿈꾸게 해준다.

김보민의 그림에서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현상은 관객에게 어떤 힌트를 제공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하게 텅 빈 비현실적인 공간인가? 아니면 현실과 환상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인가? 이것은 재현의 문제에서 생각해보면 실재를 대신한다는 전통적인 신념을 없애 버리고 동시에 실재와 환영 사이의 위계질서를 교란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작가에게 이런 시각은 현실의 도시를 ‘재장소화’ 한 것이다. 재장소화의 방법은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살던 곳을 어떤 계기를 통해서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도시를 걸으면서 자세히 살펴보면 서울이 단순한 공간적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컨대, 1980년대의 여의도는 많은 축제가 있었고,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여의도는 예전의 모습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이처럼 도시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와 맥락이 달라지는 것이다.

김영하의 책 <스테이>에서 서울에 대한 글 <단기 기억상실증>을 살펴보자. 이 글을 읽어보면 서울의 지리가 바뀌는 현상을 언급하고 있다. “서울은 어쩌면 정신과적 상담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미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는 분명 아닌 것이다. 자기 몸에 새겨진 문신을 지우려 애쓰는 늙은 폭주족처럼, 서울은 필사적으로 근대의 기억을 지우고 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서울은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왕조 시대의 풍습을 복원하는 것도, 그리하여 값싼 오리엔탈리즘으로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도, 모든 주거 형태를 아파트로 단일화하는 것도, 하수도에 가까운 개천을 새로운 인공수로로 덮어버리는 것도, 모두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하고 있다.” 도시의 지리는 그렇게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에 지리에 대한 정보는 고정되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김보민은 왜? 도시의 장소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의 삶은 의, 식, 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산소의 공급을 받아야 하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장소 성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혹은, 내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위치감각, 더 나아가 나라는 존재는 이 거대한 도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인가? 에 대한 존재론과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즉 작가는 과거의 도시에서 현대적인 도시로 변해가는 부분을 추적하면서 자신이 어떤 지리적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3),김보민,<여의,Yeoui>,Tape, Colors and Korean Ink on Linen,121*194cm,2009.

(사진4),김보민,<정업,Jean up:Clean up the Karma>,Tape, Colors and Korean Ink on Linen,91*117cm,2009.

(사진5),김보민,<계동,Gyedong>,Tape, Colors and Korean Ink on Linen,91*117cm,2010.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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