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21] 광기의 침묵, 연극 ‘빠뺑 자매는 왜?’
[리뷰Factory.21] 광기의 침묵, 연극 ‘빠뺑 자매는 왜?’
  • 이영경 기자
    이영경 기자
  • 승인 2010.03.27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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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현대극페스티벌 ‘장 주네 탄생 100주년 기념’ 참여작

1933년 2월 2일 프랑스의 르 망 시 브뤼에르가 6번지, 두 모녀가 처참히 살해당했다. 아내와 딸을 데리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 랑슬랭이 이를 발견한다. 랑슬랭은 집에 거주하고 있던 두 하녀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그들이 있는 다락방으로 향한다. 굳게 잠겨있는 문을 열자 두 하녀가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다. 숨 쉬고 있는 채로. 두 하녀는 자매였고 그곳에서 6, 7년 동안 착실하게 일해 왔다. 두 자매의 살인으로 인해 프랑스 전역은 혼란에 빠졌다. 그녀들의 엽기적인 살인 방식은 충격을 안겨줬으며 부르주아 계층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당대의 수많은 심리학자, 철학자, 작가들이 이 사건을 ‘동기 없는 살인’으로 보고 숨은 이유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다. 라깡, 데리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 수많은 지성인들이 이 세기적 살인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희곡 ‘하녀들’을 쓴 장 주네가 있다.

- ‘살인’이 아닌 ‘사람’을 조명한다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쓰인 장 주네의 ‘하녀들(1947)’은 미국 여성작가 웬디 케쓸먼을 통해 더욱 섬세해진다. 그녀는 폐쇄된 공간에서 네 여자 간의 심리적인 엉킴, 젠더, 섹스(동성애), 근친상간, 그리고 계급의 문제를 읽어낸다. 웬디 케쓸먼의 연극 ‘빠뺑 자매는 왜’는 집의 주인인 마담과 딸, 그리고 하녀들의 관계에 집중하며 모든 남성들은 배제시킨다. 남성들은 소리로만 등장한다. 목소리만 등장하는 사진사는 카메라 뒤에 있으며 판사나 법의학자도 재판정의 높은 책상 뒤에 위치해있다. 그들은 이 자매를 눈(응시)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목소리로 판결을 내린다.

무대가 한정돼 있는 공연의 특성상 대부분의 소극장 연극 무대는 변화가 적다. 그럼에도 연극 ‘빠뺑 자매는 왜?’의 무대는 더욱 고립되고 억압돼 있다. 지극히 심플하고 정적인 무대 위 모녀와 자매는 신분과 성격, 외모와 행동 등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럼에도 닮았다.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위에서 끈질기게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서로를 반영한다. 검은 옷의 자매는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고 껴안는다. 말과 행동, 눈빛으로 폭력을 가하며 질투한다. 말과 소리 없이 집안을 서성이며 쓸고 닦는 자매는 성실함과 동시에 오싹하다. 반면 사치스럽고 자만심에 빠져있는 두 모녀는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자매와 모녀, 이들의 시선은 집요하게 서로를 향하고 있다.

- 자매의 침묵 후, ‘왜’를 묻는다

“진정한 샴쌍둥이의 영혼, 영구적 자폐세계, 서로를 비추는 거울 이미지. 이것이 빠뺑 자매의 세계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저지른 살인행위는 어쩌면 하나가 된 이들을 다시 둘로 떼어내는 잔혹한 분리 수술일 수도 있습니다. 자매가 살해한 사람은 그들의 착취자와 어머니였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샴쌍둥이로서만 비쳐볼 수 있었던 거울을 미친 듯이 파괴해 버린 행위였습니다. 빠뺑 자매는 바로 그들 서로를 살해 했다고 볼 수 있지요.” - 라깡

작가는 사건에 대한 원인을 조명한다. 빠뺑 자매는 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연극 ‘빠뺑 자매는 왜?’ 속 모녀들은 불친절하고 너그럽지 못하며 허황되고 단순하다. 그러나 관객의 허를 찌를 만큼 잔인하지 않다. 연극은 자매들 스스로의 갈등과 심리에 집중한다. 서로의 자리를 성실히 지키던 어느 날 그 경계가 단숨에 끊어진다. 동생의 다리미로 인해 퓨즈가 타 끊어지며 정전이 되듯, 집안을 배회하던 암흑이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녀들의 내적 억압이 표출되고 마담 역시 지켜왔던 가식적 고상함을 벗는다. 침묵을 깨고 충돌한 두 계층은 극단적 결말을 맺는다.

‘장 주네 탄생 100주년 기념 페스티벌에’ 참여한 연극 ‘빠뱅 자매는 왜?’는 사건 당사자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집요하게 읽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장 주네의 작품과 비교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를 더한다. 반면 광기가 폭발하기까지 축적의 과정과 표출 고리가 다소 허술하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 광기의 사건 후 자매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침묵했다. 재판 기록은 100년 동안(2033년까지) 비공개에 부쳐졌다. 그때까지 두 자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변주될 것이다.

편집국

<고품격 경제지=파이낸스 투데이> FnToday=Seou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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