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 파워 인터뷰] 최기식 국민의힘 당협 위원장 "통일을 준비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FN 파워 인터뷰] 최기식 국민의힘 당협 위원장 "통일을 준비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 신성대 기자
    신성대 기자
  • 승인 2023.06.0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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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최기식 당협위원장이 경기도 의왕시 당협위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정치 횡보를 시작해 '통일을 준비하는 법조인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최기식 국민의힘 의왕·과천 당협위원장은 지역민들을 찾아다니는 정치인으로, 때론 의뢰인을 돕는 변호사로 분초를 아끼며 하루하루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뚜렷한 정치 철학과 준비된 비전을 통해 지역민과 소통하는 그의 첫인상은 예리한 관찰력과 소탈한 성품은 사람을 참 편하게 했다. 20여 년이란 세월 속에 몸담았던 제2의 고향 과천·의왕의 주요 현안들을 살피며, 지역내 각종 행사에 부지런히 참가해 민심을 다지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과천에 언제부터 살게 되었나?

내 고향 밀양에서 살던 만큼 20년 넘게 이곳에서 아이들 낳고 키우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시켰던 실제적인 아이들의 삶의 터전이고 제2의 고향이다. 이곳을 선택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부터 생각했고 검사 생활 중에 언젠가 정치를 해야 한다면 고향 밀양보다는 수도권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5년 그 당시에 과천은 도회지 적인 분위기가 있고, 의왕은 약간 시골 적인 분위기가 있고 해서 매우 좋았다. 그래서 만약에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곳에서 정치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2005년부터 과천에서 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나?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정치에 대한 꿈을 늘 갖고 있었다. 형제 중에 막내로 아버지가 43세에 저를 얻으셨다. 그런 아버님이 작년 7월에 아버님께서 97세로, 어머니는 2010년도에 돌아가셨다. 정치에 관해서는 그동안 집사람이 계속 반대를 하고 있었다. 작년 아버지 돌아가시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장례 후 집에 올라와서 제 꿈을 알고 있는 집사람에게 내 결심을 말했다, 그러자 집사람이“근데 이거 안 하면 후회 할 것 같냐?”고 묻길래 “그래 좀 후회가 될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러면 나를 좀 원망할 것 같냐?”라고 해서 “그래 조금은 좀 원망이 되지 않겠나 내가 하고 싶은 거였는데….” 그랬더니 집사람이 고민하고 고민하더니 “그래 후회하지 마시고 열심히 한 번 해보세요”라고 해서 가족 동의 하에 작년 8월부터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정치를 하기 전에 법조인이었다. 법조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읍내에 나와서 자취를 하고 있는데 자취방에 제 바로 위에 형이 여섯 살 차이가 나는데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라는 고시 합격기를 사놓고 가셨다. 그래서 그걸 밤새 읽어 보았다. 그 책을 보니까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고시에 합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법과 대학을 가야 되겠다는 것과 출세를 해서 아버지 어머니의 서러움을 좀 풀어 주고 싶었다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고려대 법대를 진학하게 된 것이다.

변호사이면서 통일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

고시를 생각대로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4학년, 졸업할 때, 그 이듬해 이렇게 네 번을 연거푸 1차에 떨어졌다. 그러다 다섯 번째 시험을 보는 때에 6개월을 남겨 놓고 정신적 지주였던 매형도 돌아가시고, 뒷바라지해 주시던 형님도 경운기 사고로 많이 다치셔서 식물인간 직전까지도 가고 거의 시험을 포기할 상황에 이르렀다 마지막 남은 1주일 동안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과 담판을 지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셔서 한 번도 합격하지 못한 1차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2차 시험을 1년 만에 합격하고 나서 이것은 내가 잘 나서 된 시험이 아니고 하늘이 선물로 주신 법조인의 자격이다는 생각을 강하게 들었다.

그다음 법조인이라는 자격의 선물 그릇 안에 무엇을 담을까? 라고 고민을 하던 중에 사법 연수 '통일법학회'라는 학회를 만나면서 '통일'이 내 가슴으로 깊게 들어와 그때부터 통일을 준비하는 법조인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연수원을 수료하고 3년 군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이제 진로를 정해야 되는 상황이 왔다. 그때 판사로 갈지 검사로 갈지 통일전문가가 되기 위해 통일부로 갈지 국정원으로 갈지 많은 고민이 되어 밀양에 있는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부침 많은 인생을 사진 아버지는 “나는 네가 판검사가 되어 내가 면사무소에 갔을 때 면서기들이 ‘어르신 나오셨습니까?’ 하고 자판기 커피 한잔 얻어먹는 거 그게 내 인생의 소원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판검사가 되기로 하고 통일을 하는 부서가 뭐가 있나 찾아보니까 법무부에 통일 법무과가 있었고, 통일법무과에서 검사하고 과장할 정도 되었을 때였다. 2005년도 독일 뮌헨에서 1년간 연수하면서 통일독일을 볼 기회가 생겼고, 그 뒤에 중앙지검 공안부 검사로서 간첩 사건 수사도 이적단체 사건도 하게 되어 북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또 그 뒤에 독일 베를린에 외교관 자리에 생겨 통일독일에 외교관으로 2년간 베를린에서 또 근무하면서 실컷 통일된 독일을 보고 통일전문가를 만나서 통일 한국을 구상하며 북한을 연구하게 되었다. 

또 내가 만약에 공안부 검사를 하지 않고 바로 통일법무과 검사를 했다면 북한에 대해 굉장이 좋은 이미지 그냥 교류협력만 더 강조하는 그런 검사가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 간첩사건과 이적단체 사건을 수사를 하면서 아 북한은 우리가 굉장히 조심해야 될 대상 또 다른 경계를 해야 될 대상으로서 각인 된 것이 균형, 밸런스, 대북 관련 생각과 정책들을 준비할 때 균형감각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공안검사로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국민의힘 최기식 당협위원장

검사 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일심회 간첩 사건이다. 일심회 간첩 사건은 소위 말하는 386 운동권 세력들이 민주노동당을 친북정당화 하려고 시도한 사건이었다. 당시 국정원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첩보를 수집해서 수사를 시작했는데 다섯 명이 체포되고 나서 국정원에서 입을 닫고 진술을 거부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국정원에서 20일 동안 조사를 하고 검찰로 송치되는 상황이었다.

그때 저는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평검사였고 안창호 헌법 재판관님께서 2차장 검사장이셨다. 그래서 그분이 저를 따로 부르셨다. 그때 내가 수사 주임 검사였기 때문에 그 차장님께 "피의자가 진술을 안 하고 있다는데 우리가 수사를 잘 하려면 네가 피의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있어야하겠다"는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 피의자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다만 그분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그것밖에 없었다.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하다가 장소를 옮겨 서울중앙지검 지하 주차장에서 간첩 총책분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 또 총책의 노모가 면회를 오시면은 내가 손수 차를 타 드리고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해드리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나름 사랑을 했다. 그러는 동안 변호사들은 계속 ‘진술을 하지 말라’고 ‘옆에 동료들도 진술하지 않으니까 너도 진술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열흘이 지나서 그때 마지막으로 "장 선생님 저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이제 결단을 해 주시죠"라고 말을 했더니 이분이 아마 그 변호사 보다 검사를 더 신뢰했는지 "검사님 제게 담배 두 대만 피게 해주세요"라는 것이다. 그때는 방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하라고 하고 검사실 안에 들어가서 담배 두 대를 피우고 나와서 "그러면서 검사님 이제 시작하시죠"라며 진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떻게 북한에 포섭이 돼서 북한에 들어가고 또 중국에 가서 북한사람 접촉을 하고 또 포섭한 사람들을 중국으로 보내서 접선하게 하고 공작금을 얼마 받아서 내려와서 남한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때 당시에 북한에 올려보낸 보고서들이 있고 북한에서 내려온 지령문이 다 있었다. 그걸 그대로 자기가 한 활동들을 진술해주었다. 그래서 973쪽의 자백 조서를 받았는데 거의 전무후무하게 간첩 사범으로 소리 한번 안 치고 자백을 받은 사건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독일 외교관 생활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독일 외교관 생활은 내가 지원해서 간 것이었다. 통일 뮌헨에서 1년 연수하는 시간이었고, 외교관으로서 베를린에서 2년간 통일된 독일을 본다는 것은 정말 벅찬 감동이었다. 그래서 내가 있던 2년 동안에는 특별히 구동독 지역을 많이 돌아 다녀봤다. 동독이 어떻게 발전하고 동독 주민들이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래야만 우리도 북한 주민들을 잘 끌어안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동독을 돌아보는 한편 독일 통일 전문가들을 대사관에 초청해서 한 10여 명 정도를 저희가 모셔서 계속 강연을 듣고 질문을 하고 그걸 우리가 책자를 만들어내는 잡업을 내가 기획을 했었는데 그때 모 독일 연방은행 총재를 하셨던 분이나 또 마지막 동독의 국방부 장관을 하신 분이나 이런 분들을 모셔서 독일 통일에 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거기서 어떤 공부를 했나?

독일 통일 공부를 하면서 헬무트 콜과 같은 위대한 정치적 리더가 있어야 되고 서독과 같은 그런 부강한 경제력도 필요하고 또 동독 내에 자생하는 민주적 역량 1989년 5월부터 시작된, 동독혁명을 이끌었던 동독 주민들의 역량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에 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 조지 H. W. 부시 같은 우방의 지도자가 통일을 반대했던 영국과 프랑스를 설득해 나가듯 우방과의 국제관계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다음에 또 하나 그때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 정책이 어떤 동독에서의 시위를 진압하려고 할 때 동독 시민들을 억압하지 않고 그 혁명을 그대로 일어나게 했던 그런 고르바초프와 같은 사람도 있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사진 출처= 최기식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페이스북
사진 출처= 최기식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페이스북

남과 북 통일 시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동·서독 통일을 통해 다시 우리나라에 대비시켜보면 정말 통일시대에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그런 정치적 지도력이 필요하다. 또 우리 경제가 훨씬 더 발전해야 북한을 끌어안을 수 있고 그다음에 미국과 같은 우방의 도움도 필요 할 것 같다. 그리고  중국의 도움도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중국의 리더십도 필요하다. 여기에 그러한 것들이 보태져 우리의 통일을 내심으로 반대할 일본이나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는 그런 국제관계, 외교관계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든다. 그러면서 동독에서 귄터 샤보프스키 라는 동독 공보관이 1989년 11월 9일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그 날 외신 기자들 앞에서 동독 시민들의 혁명상황에서 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하는데 그때 퀸터 샤브프스키가 이탈리아 기자의 질문을 받고 "지금 즉시 이 법안이 유효하다"라고 얘기하는 바람에 그날 동베를린 시민들이 전부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가게 되어서 그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우리도 이런 우연적인 사건과 여러 가지 복합적인 모자이크가 하나로 딱 맞아서 떨어질 때 통일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준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통일 준비가 지금은 겉으로는 우리가 남북교류 협력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쓰나미 처럼 몰려올지도 모를 통일을 현안으로 보이지 않는 그런 미래를 내다보는 통일 준비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싶다.

지금 어떤 청지적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아직 정치 초보라 이런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한마디 한다면,  지금 우리 정치가 지향해야 할 것은 통합이고 미래라고 말하고 싶다. 시대적 화두로서 이것을 주지 못하고 계속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이래서는 아무것도 나아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좌우,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이 심하다. 물론 어느 정도 정치에 있어서는 갈등은 필요하지만, 갈등이 너무 심해져 가는 이 시점에 가장 필요한 것은 통합이 가장 화두인 것 같다. 백성들의 마음,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어느 정도 통합하는데 일단 정치인의 가장 큰 역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정직하고, 정결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그런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기 잘못이 있고 하면 당당하게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책임을 지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이 정치인들을 존경할 것 같습니다.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있는 최기식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사진출처 = 최기식 당협위원장 페이스북 

정치신인으로 바라보는 국민의힘 현재의 모습은?

대통령 선거를 이기고 지방선거도 사실상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후에 동력을 상실해 가는 생각이 든다. 지지율도 계속 떨어져 있고, 당에서 내놓는 정책 같은 것을 소통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근데 개혁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시간적인 부분이 필요하다.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돌파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소통하고 설명하는 이런 시간이 필요한데 생략되어 있다. 그 두 개가 딜레마라고 본다. 뭔가 개혁적으로 치고 나가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설명이 안 되고 설득이 안 되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반발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묘안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이것을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결국은 중도층과 외연을 확장 할 수 있는 정책들과 공약을 계속 개발해야 하고 그다음에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면서 국민들을 설득해 나가는 소통과 설득력이 필요한 것이고 이것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배를 타고 같이 가자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그 마음이 생기기 전에 성급하게 고구마를 꺼내 먹으려고 하고, 덜 익은 고구마를 먹으려고 하니 거기서 맛이 없고 생채기가 생기는 것이다. 먼 미래 50년 100년 뒤에 미래를 바라보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그걸 위해서 좀 희생을 강요할 수도 있고 또 희생되는 거에 대해서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다. 대통령께서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또 도와주는 세력들이 매우 필요하다. 여러 가지로 지금 어떻게 됐든 대통령은 미래 비전을 위해서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지금 회의장 같은 데서 미래 비전을 논하고, 정말 공무원들이 그런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런 공간과 여건이 허락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가 어떤 현안 중심으로만 가버리면 결국 미래 준비를 하나도 못 하는 거다. 대통령께서 지금 어떻게 됐든 연금이라든지, 노동이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이런 데서 항상 미래를 바라보고, 지금 미래 세대를 바라보고 일을 하자고 하시는 것을 뒤에서 잘 받쳐 줘야 한다고 본다.

어떤 정치인 되고 싶은가?

어릴 때 참 많이 가난했고 부모님이 성격이 안 맞아서 많이 다투시기도 하셔서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저녁에 교회 앉아서 방석을 깔아 놓고 울면서 기도하던 그런 아이였다. 참 힘든 상황에서 대학 시절까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어느 날 대학 캠퍼스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너 참 감사하지 않니? 그런 환경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열심히 살았겠니? 라고 말씀해 주셔서 내 마음에 열등감이 감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서 고시를 통해 법조인 자격의 선물을 받았고 그 선물 안에 통일을 담았기 때문에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그런 방주를 만들고 싶은 꿈을 갖게 되었다.

노아가 대홍수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설계도를 그리고 그 설계도를 따라서 배를 건조해서 그 대홍수를 이겨냈던 것처럼, 요셉이 이집트에서 7년 대기근을 준비해서 이집트를 또 주변 나라와 민족과 백성들을 살렸던 것처럼, 어쩌면 쓰나미처럼 다가올지 모르는 통일 한국을 정부 부처에 있는 우수한 공무원들과 학자들과 북한에서 오신 탈북민들과 함께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북한 주민들이 2등 국민으로 살아가지 않고, 정말 당당한 통일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정말 멋있고 자랑스러운 통일 대한민국을 미리 준비 해놓는 것 그게 나의 사명이고 지금 정치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탈한 그의 성품은 자연스레 지역민과의 소통속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는 듯 하다.  사진 출처 = 최기식 당협위원장 페이스북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등학교 때, 대학 때부터 정치에 대한 생각들을 하고 또 통일을 준비하는 특별한 소명 의식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하늘이 내게 기회를 주신다면 내 고향 밀양에서 살던 만큼 이곳에서 아이들 낫고 키우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시켰던 제2의 고향 과천 의왕에서 하고 싶었다. 그리고 정치를 시작한 지금 이 순간순간 언제나 내 마음속에 도시는 의왕이 1등이고, 과천이 1등인 만큼, 정말 살기 좋은 명품 도시를 만드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고, 그다음에 통일 한국 잘 준비해서 정말 세계 최강의 부강한 나라,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그런 세계 최강의 국민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 보는 게 제가 정치에 입문하는 가장 큰 동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이 뛰고 열심히 노력해서 지역 발전과 국가의 이익을 안겨 주는 정치인으로 살고 싶다.

▶최기식 국민의힘 의왕·과천 당협위원장은 과천에서 20여 년을 거주했고 경남 밀양 출생으로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37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27기)에 합격했다. 그는 군검찰관, 사단 법무참모로 군 생활을 한 뒤 서울중앙지검 검사, 대검 검찰연구관, 주독일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 법무부 통일법무과장, 북한인권기록소장, 대구지검 1차장 검사, 서울고등검찰청 송무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민의힘 경기 의왕·과천 당협위원장으로 지역민들을 위해 발로 뛰고 있으며, 검사 퇴임 후 2020년부터 법무법인 산지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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