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는 자치단체장이 여러분 곁에 존재하는가?
글 잘 쓰는 자치단체장이 여러분 곁에 존재하는가?
  • 김식
    김식
  • 승인 2023.05.2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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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名文)은 정치인의 기본이다

훌륭한(brilliant) 글쓴이가 명성을 얻었던 예전과 달리, 말 잘하는 사람이 그럴싸한인기와 나름대로의존경과 만족할만한부를 얻는 요즘이다. 명문의 집적(集積)보다는 북 콘서트나 강연회를 통해 달변으로 청중을 매혹시켜야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등극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낭독회, 북 콘서트, 저자 강연 등의 이벤트가 줄을 잇는다. 일개 개그맨이 이념의 멘토 지위에까지 오른 것도 말에 대한 매혹의 시대 덕분이다.

 

사람들은 독서(讀書; reading)라기보다는 저자가 요약해 주는 말을 통해 지식을 얻으려 하고, 소설가나 시인이 읽어주는 작품을 통해 문학적 감수성을 키우고자 한다. Why? 디지털 시대the digital era 안에서의 충족감 획득 때문이라고 보면 되겠다. 과거에는 대량(大量)의 전달성과 물질적 보존성으로 말보다 글이 우월했다. 말은 탄생과 동시에 소멸되지만 글은 견고한 물질성(materiality)과 시간성(temporality)으로 보존된다(문자에 막강한 권위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말은 유튜브나 소셜미디어social media로 한없이 재생/확인되고, 지울 수 없는 물질성으로 잔존된다. 글이 말보다 우위를 점할 이유가 사라졌다(디지털 매체가 과거에 존재했던 말의 단점들을 무의미하게 만든 탓이다). 노령(老齡; old age)의 문자 세대도 장황한 문장들을 끝까지 읽기 힘들고, 여차 다른 곳으로 클릭하거나 스크롤바scroll bar 를 내릴 만반의 태세가 갖춰져 있다. 늘 읽기 보다는 이벤트 공간에서 듣는 안락한 수동성에 젖어 있는 상황이다.

 

희랍시대로의 회귀를 체험하는 듯하다. 고대에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소수였고, 인쇄술의 발명보다 수천 년 전이므로 말하기가 훨씬 중요했다. 호메로스Homeros<일리아스Ilias> 같은 서사시는 글 읽어주는 사람이 청중 앞에서 알리던 흥미진진한 전설이었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장화홍련전>을 읽어 주는 입담 좋은 전기수(이야기꾼; raconteur)가 있었다. 문자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던 소크라테스Socrates는 평생 책 한 권도 쓰지 않고 변증술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들을 소피스트라 부르며 멸시했다. 문자란 영혼 없는 기록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모든 철학은 제자인 플라톤Plato(n)의 문자 기록에 의해 후세에 전해졌다는 진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또한 말과 문자를 적자(嫡子)와 사생아에 비유했다. 말은 말하는 사람이 직접 했으므로 말하는 사람이 낳은 아들이지만, 글은 어떤 사람이 직접 한 것인지 어쩐지 알 수 없는 말을 다시 문자 형식으로 옮겼기에, 확인불명의 사생아 혹은 버린 자식이라는 것이다(따라서 글은 아버지의 부재이며, 친부 살해적 찬탈의 욕망이 들어있다).

 

오늘날 논문/소설//작곡/작사에 관한 표절의 잡음들은 음성 언어에 대한 과도한 가치부여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말이 글보다 우위에 존재하는 현세(現世)라지만 그 말에 권위를 부여해주는 것은 여전히 글이라는 것을 새삼 재인(再認)시키는 반증이다. 달변의 장()이었던 선거판(기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후, ()을 기본으로 명문의 실력을 겸비한 자치단체장이 요구되는 작금이다. 여러분의 동네는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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