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전원 사퇴하라"
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전원 사퇴하라"
  • 정성남 기자
    정성남 기자
  • 승인 2022.07.3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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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촛불계승연대 제공]

[정성남 기자]‘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회원들은 지난 26일 "진실화해위 구성원 전원 사퇴와 학살 피해 신속 조사"를 촉구라고 나섰다.

유족회는 이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한지 어느덧 1년 6개월이나 됐지만 현재까지 민간인 학살 신청 약 8564건 중 단 100여건만 조사하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진실화해위 구성원들은 전원 사퇴 하라”고 강력 촉구했다.

그러면서 “조사 종료일도 알려주고 조사 기간 중 미조사 사건 처리 계획과 기각․조사 불능 사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밝혀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유족회는 하반기와 다음 해까지 민간인 학살 조사 지역을 월별로 밝히고 법적 조사기간 중 신청한 사건을 전부 조사할 수 있는지 명확한 답변을 진화위에 요구했다. 또 정부에게는 민간인 학살 자료를 숨기지 말고 모두 공개해 진실화해위 발굴조사를 도우며 윤석열 대통령이 이 조사에 대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명확히 밝힐 것을 요청했다.

진실화해위 구성원들에 대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사기간이 만료돼도 40~50%밖에 해결 못한다, 자신도 9명의 상임위원 중에 한 명에 불과해 어떤 일을 하겠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유족회는 “보수정권으로 바뀌니 변명으로 일관하고 기구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려 진실규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민간인 학살을 담당하는 김광동 제1소위원장이 “진실화해위가 민간인 학살 문제에 너무 많은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진실화해위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정치적 중립성도 거론했다. 유족회 관계자는 “진실화해위 소속 위원은 정당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진실화해법에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옥남 비상임위원이 국민의힘 혁신위원으로 임명돼 활동하고 있다”며 이 의원에 대한 즉각 제명도 촉구했다.

가족을 잃고 고령의 나이로 불볕더위 속에서 기자회견을 연 유족회는 한국전쟁 시기에 민간인 학살을 크게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들은 6·25전쟁 이전에 군경 토벌대가 제주도와 여수·순천 지역과 지리산 중심의 게릴라전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의 민간인들을 집단 학살했다고 봤다. 또 우리 군경이 전쟁 발발 직후 국민보도연맹원을 비롯한 예비검속자와 형무소 재소자들이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집단 처형당한 사건도 민간인 학살로 규정했다.

기자회견을 낭독했던 박명수(76)씨도 아버지를 이때 잃었다며 “아버지는 이발사로 손님 머리를 깎아주고 계셨는데 갑자기 ‘보도연맹원들은 다 잡아 오라’는 경찰서에 내려진 명령 때문에 연맹에 가입도 안 한 아버지도 끌려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때 이발소 단골손님이던 박순경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담배 심부름을 시켜 꺼내주려고 했지만 “아무 죄가 없으니 곧 보내주지 않겠냐”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그길로 충북 보은 아치 골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으러 골짜기에 갔지만 커다란 시쳇더미로 이뤄진 산에서 아버지를 찾는 건 도저히 역부족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박 노인의 나이 4세 때였다. 그렇게 박 노인은 아버지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오명으로 지금까지 아버지 생신날에 제사를 지낸다고 토로했다.

유족회 자료에 따르면 전쟁 중 미군에 의한 학살도 있었다. 미군의 공중 폭격 등으로 많은 수의 피난민들이 학살당했으며 지금은 잘 알려진 노근리·곡계굴 사건도 미군에 의해 벌어졌다. 이외 부산·대구·대전 형무소 재소자 학살에 미군이 직접 개입했음을 입증하는 문서들도 확인됐다고 유족회는 덧붙였다.

또 인민군 점령 직후와 후퇴 직전 시기에 인민군과 지방 좌익이 우익인사들을 학살했으며 우리 군도 인민군 점령지에 남아 있던 민간인들을 학살했다고 기술했다.

남쪽의 학살 피해자들 유형은 한강 이남의 보도연맹원, 형무소 재소자, 부역혐의자, 제2전선 지역 주민, 피난민, 불심검문과 가택수색에 희생된 마을 주민, 미군과 군경의 초토화작전 희생자 등으로 나타났다. 북쪽의 학살 피해자들은 친일파, 친미파, 경찰관, 우익단체원, 군인가족 등이 학살의 희생양이 됐다. 모두 피해자는 오롯이 우리 국민이었다.

학살 피해 유족들은 지난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난 뒤 전국유족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진상규명·명예 회복과 가해자 처벌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유해 발굴과 위령제도 지냈다.

하지만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유족회 활동을 ‘반국가사범’ 이른바 ‘빨갱이’로 몰아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후 긴 군사독재 정권 아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은커녕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통한의 긴 세월을 보냈다고 유족 측은 입장을 전했다.

한편, 이날 윤호상 상임대표의장은 ‘여는 인사말씀’에서 “유족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렀다면서 진화위가 “진실규명에 대한 책임과 본분을 망각한 채 마치 정쟁을 하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고 직격탄을 날린 후 “오직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 사람도 억울한 일이 없도록 법정조사기간 내에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촛불계승연대 송운학 상임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촛불계승연대]

이어서 자문위원 자격으로 발언한 송운학 촛불계승연대 상임대표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위원들에게 전원자진사퇴까지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진화위원들은 직분을 내팽개친 채 대통령, 비서실 담당수석, 행안부 장관, 여당실세 등에 두 귀와 두 눈을 집중한 채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직 국민만을 믿고 국민만을 바라보며 진실을 규명하여 국민화해와 국민화합이 이루어질 찬란한 미래를 믿고 뚜벅뚜벅 나아가야만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끝낸 후 윤호상 의장 외 대표단을 구성하여 정근식위원장 외 관련 상임위원과의 간담회를 통하여 유족의 입장과 의견 등을 개진했다. 이 자리에서 다소 험한 말들이 오고갔으며, 이로 인해 간담회가 한 때 중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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