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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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1.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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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유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이름의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 아드소는 먹을 것을 위해 수도사들에게 몸을 파는 굶주린 소녀와 짧은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이윽고 이 소녀는 마녀로 몰리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희생양으로 화형당할 위기에 때마침 수도원에 화재가 발생한다. 화재로 인해 수도원에서 생긴 모든 문제는 극적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그녀와 아드소의 가슴 저미는 이별에 카메라는 포커스를 맞춘다. 아드소는 노년에 고백한다.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어쨌든 그녀가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장미의 이름인지 몰라도 짧은 사랑이란 의미에서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라는 유행가에서 나오는 나팔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움베르토 에코는 배경을 수도원으로 잡았다. 수도원은 버림의 장소이다. 신만 바라보고 신만 의지하는 곳이다. 신의 섭리를 의지하는 곳이다. 욕망과 싸움과 논리가 있는 시장의 살 냄새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수도원에는 경건과 평화, 영적통찰이 지배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는 욕망과 살인과 날카로운 비판력이 물들어 있다. 에코는 수도원이라는 극단적인 장소를 통해 현실 세계의 질서와 욕망의 이중 구조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에코의 수도원처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도 과거 몇 년간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는 구조적 ‘질서와 권위’가 존재했지만 그 이면에는 각자의 욕망으로 인한 부패와 무질서가 존재했다. 속에 내재되어 있던 이 부패와 무질서가 한꺼번에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모두에게 골치 아픈 많은 문제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수도원 도서관과 표면과 이면을 연결하는 통로인 미로를 불태운 화재가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불’의 축제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윌리엄 수사나 종교 재판관이 살인자를 색출해서 처단하지 못하고 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어떤 장미같은(?) ‘불’이 위기를 해결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당선된 것도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줄 ‘불의 축제’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 세계에서는 그런 ‘불의 축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가을이 주는 황량함을 담담히 받아들여야한다. 가을은 버려야할 때이다. 수축해야할 때이다. 움츠려야할 때이다. 이제 욕망의 파티는 끝내고 수도원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때이다. 우리가 아드소와 같이 나팔꽃 사랑에 착념을 하고 수도원의 화재를 기대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수도사로서의 꿋꿋함을 유지하는 길은 ‘인지상정’을 거스르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던가!

축제는 다시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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