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22)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내가 본 월남전쟁(1)
[연재칼럼](22)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내가 본 월남전쟁(1)
  • 박재균 기자
    박재균 기자
  • 승인 2022.03.0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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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쟁은 내란이 아니다. 월남의 적은 누구였나?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위관장교 시절 극히 제한된 전투현장에서 소총 소대장과 중대장 직책을 수행하면서, 단순하게 몸으로만 체험했던 사실들을 가지고 한 나라의 전쟁을 정리한다는 것은 많은 과오나 편견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내가 체험했던 전투는 월남전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속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인 전투(Combat)의 승리가 마치 전쟁(War)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될까 걱정스럽다. 어디까지나 전투는 전쟁의 한 부분일 뿐이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을 주도하는 사람이 당시의 환경과 상황에 알맞은 전쟁지도 능력을 발휘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월남전에서 연합군은 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월남을 송두리째 적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여러 편의 월남전쟁 도서를 보면서 느낀 바를 중심으로 하여 당시 전투와 전쟁이 어떻게 지도되었고 수행되었는지 하나하나 분석해 봄으로써 이해를 돕고자 한다.

월남전쟁은 내란(內亂)이 아니다

월남전쟁을 혁명전쟁의 범주 내에서 해석하고 게릴라전으로 간주하여 월남전 자체를 월남 내부의 내란이라고 규정한 것은 큰 과오였다. 분명히 월남은 월맹의 도전을 받고 있었고, 따라서 월남에 대한 월맹군의 침략전쟁이었다. 그러나 월맹뿐 아니라 여러 공산국가들이 월남전쟁은 월남국민들이 체제를 부정하고 스스로 봉기한 내전이라고 선전하면서 남의 나라 국내문제에 다른 강대국이 개입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니 월남인 스스로 자기나라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며 미국의 월남전 참전을 맹렬히 비난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의 연합국이 소련과 중공과의 마찰을 우려하여 전쟁을 월맹측으로 확산시킨다든가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에 있는 소위 호지명 루트인 성역을 공격한다든지 하는 작전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월남의 적은 누구였나?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것뿐만 아니라 전쟁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월남의 적은 월남 내부에 있던 게릴라인 베트콩이 아니라 게릴라를 조정하고 지원하던 월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월맹과 싸우지 못하고 그들의 하수인인 월남 내의 게릴라와 싸웠기 때문의 전쟁의 상대를 잘못 선정한 것이다.

월남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적이 많았다. 월맹이 적이었고, 월남 내부의 공산주의자가 적이었으며, 국경을 접하고 있는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적이었고, 더욱 곤란한 적은 월남 내부의 철없는 종교인을 포함한 민주화의 기수를 자처한 정치인이 적이었다. 대통령을 포함한 그의 측근은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보다는 내부의 적과 싸우는데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지불했으며 군사적인 적과 싸우는 것은 미국과 연합군에게 일임했다.

월남지도
월남지도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지도자의 지지도는?

양쪽 국가의 지도자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한국의 경우, 이승만 대통령은 민족주의자였으나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꼭두각시였다. 그러나 월남에서는 그 반대로 지도자 고 딘 디엠(Neo Dinh Diem)과 그의 후계자 및 각료들은 프랑스 식민주의 추종자와 군대출신 및 부패했던 관료출신이 중심이었던 반면에 월맹의 지도자 호지명은 프랑스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월남의 존경받는 민족주의 지도자로 간주되었다.

또 하나는 한국에 있어서 미국은 일본의 식민주의 통치로부터 해방자로 인식되어 절대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으나 월남에서는 미국을 포함한 우방이 지난날의 프랑스 제국주의와 월남을 900년간 지배했던 중국 침략자처럼 보였다. 따라서 전체국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데 실패했으며 국가에서 하는 일마다 상당한 부분이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전략과 전술의 개념은?

군사적인 전략과 전술적인 견지에서 볼 때, 적은 연합국으로 하여금 월남 내 깊은 산속과 농촌마을에 산재해 있는 그들의 보조부대인 게릴라와 싸우게 함으로써 전력을 소모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광범위한 지역에 연합군의 정규군이 분산 전개되어 병력집중을 이루지 못하게 유도했고, 월맹군이 집중했을 때는 효과적인 대처를 못하게끔 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월남전략은 적이 바라던 대로 바로 이 분산된 게릴라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월남정부는 대(對)게릴라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만 집중적인 연구를 하고 그 대처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월맹이 수행한 월남 내의 게릴라전은 월맹의 궁극적 전략목표인 월남의 공산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전략적인 활동 중 한 부분인 전술작전에 지나지 않았었다. 실제로 월맹은 건재한 주전투력을 월맹 자국 내에 보유하고 있으면서 결정적인 투입시기를 기다렸고, 일부의 월맹군만이 월남 내에 잠입하여 분산되어 있는 게릴라를 지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월남 전략은 본토에 건재하고 있던 월맹군의 전투력과 월남 내에 침투한 월맹군 및 현지 게릴라를 파괴하기 위한 종합해결방안을 동시에 모색했어야 했으며, 월맹이 연합군의 전투력을 전국의 게릴라를 잡는데 분산시키도록 강요한 것과 같이 일종의 전술적 차원에서 대처했어야 했다.

미국과 연합국은 월남전에서 시종일관 게릴라를 전략목표로 간주하여 게릴라를 향한 군사행동만을 주로 행사하고, 월맹내의 적 주력 격멸을 포기한 것은 큰 착오였다. 전쟁기간 중 공군에 의한 월맹본토 폭격은 있었으나 지상군이 국경을 넘어 월맹본토를 공격한 일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은 월맹군 주력 격멸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략적으로 월남전쟁을 단순한 대게릴라전으로만 파악한 공식적인 견해와 규정으로 말미암아 군사전략 수행에 큰 과오를 범했다. 즉 군사작전으로 월남 내의 게릴라를 소탕하고 월남 국민을 농촌에 정착시켜 평정하는 한편, 훌륭한 행정으로 민심을 규합하며, 홍보활동으로 국민과 게릴라를 분리시켜 주민 속에 적이 살지 못하게 만드는데 전력을 다한다는 뜻이다.

킬로계곡의 상봉진지에서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킬로계곡의 상봉진지에서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적이 월남 내부에만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전쟁개념을 한정했기 때문에, 이는 곧 월맹이 월남을 침공하여 제네바협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부정한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월남 및 연합국이 북폭을 계속 한다든지 월남국경을 넘어서 호지명 루트를 공격하면서 월맹 본토를 공격하는 명분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연합국을 전략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몰아넣었다. 월남 내부의 대게릴라전으로 월남전을 규정한 것은 자기발등을 찍는 모순을 가져왔다. 군사적인 전략전술면에서 실제 성격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한 것은 전체 전쟁과 국가안보에 큰 혼란을 초래했으며 시행 상에 엄청난 혼동을 가져왔다.

목표 선정은 적절했는가?

모든 군사작전의 목표는 달성 가능해야하며 명확하고 결정적인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또한 궁극적인 목표는 적의 군대와 그들의 전투의지를 파쇄(破碎)하는 데 있다. 전쟁 원칙의 하나인 목표의 원칙을 전쟁의 준비와 지도에 적용시키면 전략목표가 되고, 한정된 작전이나 전투에 적용시키면 작전목표 또는 전술목표가 된다. 이러한 목표의 원칙에 따라 임무를 분석해 보면, 월남정부와 월남군을 도와서 공산주의자들의 월남정부 전복의도와 침략을 격퇴하는 주월미군의 군사적인 목표는 타당했다고 본다.

그러나 두 번째 임무인 안정된 상황 하에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월남을 건설하는, 즉 군사적 목표가 아닌 정치적 목표는 잘못 채택된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은 한국 건설에는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적을 격멸하는 군사작전에만 집중하여 전념함으로써 군사작전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한국의 국내문제와 건설은 한국정부가 담당했다. 군인은 전쟁의 전문가이지 정치적 경제적 건설에는 아무리 전문가가 보조해준다 하더라도 문외한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월남의 경우, 군사적인 임무수행 하나만도 벅찬데 국가의 정치경제적 건설을 군인이 담당한 것은 노력과 집중의 낭비를 초래했으며 시간을 빼앗기고 군사작전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적의 목표는 아군을 격멸하는 것인데 반해 연합군의 목표는 적의 침략을 월남 내에서만 저지한다는 소극적인 것이었다. 이는 마치 싸울 자신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로서 최악의 작전목표였다. 월맹을 패망시켜서 최종적인 전쟁목적을 당성하자는 것이 아니라 월남에 대한 월맹의 정책을 바꿔보자는 지극히 소극적인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월남정부나 미군이 부여받은 임무는 적을 저지하여 월맹으로 철수시키고 월남군을 증강시키며 월남 평정계획을 지원하여 이를 달성하는 데 역점을 두도록 지시받았다. 무능하게도 전쟁환경에 맞지 않는 전략적 전술적 목표를 제시하는 우를 범했다.

공세의 원칙은 잘 적용되었나?

공격전투는 결정적인 목표에 지향되어야 하며, 행동의 자유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공격전투는 주도권을 장악하여 공자(功者)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할 수 있게 하며, 상황에 따라 방어도 취하지만 공격을 위해 병력을 절약할 때에 채택된다. 또한 방어 시에도 주도권을 획득하고 공세행동으로 결정적인 성과를 달성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월남에서는 전체적으로 전략적인 방어개념으로만 임했다. 전술적으로는 일부 공세적인 입장을 취한 때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수세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파월동기 16제대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파월동기 16제대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적은 월남 전역에 게릴라를 분산시켜 소수의 병력으로 전술적인 방어를 수행하면서 대량의 월맹정규군을 성역인 월맹지역에 보유하고 있다가, 정글에서 지친 미군이 철수하자 전략적 공세를 취하여 월남을 공산화시켰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 자체를 적 주력부대인 월맹군이나 적의 심장부인 하노이를 향해 수행하지 못하고 보조부대에 지나지 않던 월맹의 앞잡이인 게릴라들에 대해 모든 전력을 소모했다.

월남 내의 게릴라는 월맹군 주력이 아니므로 결정적인 목표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분산된 게릴라를 쫓는데 전투력을 낭비하면서 적의 주력이 건재한 국경 너머 월맹으로는 한 발자국도 공세행동을 취하지 못함으로써 적의 전의를 파쇄하지 못했다. 그나마 밤만 되면 기지내로 들어와 잠을 잤으므로 야간에는 오히려 적들의 세계가 되어버렸으니 행동의 자유마저 반쪽은 상실한 셈이었다. 전략적인 방어 역시 공격을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라 방어 자체가 목적이었으므로 전쟁의 필수요소인 공격원칙과 근본적으로 위배되었다.

1972년 3월, 월맹군은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으나 막대한 손실을 입고 격퇴되었다. 이때에도 적을 일단 궁지로 몰아넣었으면 계속적으로 가혹하고 무자비한 압박을 가해야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는데 중공의 개입과 미국 내의 여론이 무서워서 국경 너머에는 지상군의 공격을 하지 못했다.

전장의 상황은 빠르게 변화하며, 최신 정보 역시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적절한 결심이 적시에 내려지지 않으면 전쟁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월남이 있는 미 야전군 사령관은 이역만리에 있는 본국의 상급자에게 결심을 받아야 했고 본국의 훈령과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야전에서 전장을 총지휘하는 야전군 사령관과 본토의 결심권자는 전장을 보는 감각과 기본 기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치적 이유로 군사작전에 많은 제한을 주게 되고 적절한 결심을 적시에 하지 못하게 되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되며, 결국 올바른 대책이 수립되지 못하게 된다.

여하튼 결정적인 목표에 결정적 공세행동을 취하지 못한 미국의 수세적인 방어 전략은 월맹에게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성역인 월맹 본토를 기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호지명 루트와 함께 외선작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끝내는 폭이 짧은 월남을 바다로 몰아넣을 수 있는 큰 이점을 스스로 적에게 제공해준 셈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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