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칼럼] "방송편성 '외부 간섭' 불가" 헌재 판결로… 언론노조, '언터처블'됐다
[미디어칼럼] "방송편성 '외부 간섭' 불가" 헌재 판결로… 언론노조, '언터처블'됐다
  • 박한명
    박한명
  • 승인 2022.05.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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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얼마 전 세월호 사태 때 KBS 보도국장에 전화해 뉴스 편집권을 침해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방송편성에 관해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한 방송법 4조2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오랫동안 지켜 봐온 언론계의 한 사람으로서 결론부터 말하면 언론 현실에 대한 이해가 없는 판단이라는 점에서 유감의 뜻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이 벌써 7년 전의 일이라 많은 국민이 잊고 있어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2014년 4월 당시 사건이 발생하자 거의 모든 언론은 해경 등 정부 대처에 문제가 있다며 박근혜 청와대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유난히 언론대응에 미숙했던 청와대는 난타를 맞고 거의 혼수상태 지경이 되었는데, 언론대응 업무를 담당하는 위치에 있던 홍보수석 이정현은 청와대 공격에 앞장섰던 KBS 당시 보도국장 김시곤에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건 요지는 정부가 사력을 다해 사태 수습을 위해 뛰고 있으니, 다른 언론도 아닌 공영방송 KBS라도 무조건 정부를 공격하기보다 사태가 좀 정리되고 사안이 분명해지면 정부를 비판하더라도 비판해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두 사람 사이 오간 대화 녹취를 보면 논쟁이 오가는 사이 긴장감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국장님 나 한번만 도와줘 진짜로” “국장님 요거 한 번만 도와주고 만약 되게 되면 나한테 전화 한번 좀 해줘~ 응?” 등과 같은 비굴해 보일 정도로 저자세를 취했던 이 전 수석 당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국민은 찾아봤으면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필자 생각은 똑같다. 아무리 청와대라고 해도 언론 보도에 항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부서도 아닌 언론 담당 직무를 맡은 공무원(홍보수석)이 보도에 대해 항의하거나 비판할 수 있고 뉴스 아이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요청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의 취지라고 이해한다.

방송 개입 모호성 해소 못한 불완전한 판단

다만 그 과정에서 분명한 협박이 있었다면 그건 상식을 넘어서는 일로 법의 영역으로 넘겨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과 권력과의 건강하고 상식적인 관계라고 믿는다. 헌재가 이번 판결에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과 KBS 보도국장 간 오간 녹취록을 참조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했다면 헌재가 자유민주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가 차지하는 중요성과 하위법인 방송법에 대해 이런 식의 판단을 내렸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헌재는 “방송편성에 관해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방송법 조항이 합헌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헌재는 청와대 등 권력기관은 일체 언론 보도에 항의도 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항의와 개입을 무슨 수로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이정현 전 수석이 간섭의 개념이 불명확해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고 의견 내지 비판까지 간섭에 포함시켜 금지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 것도 바로 그 때문 아닌가.

헌재는 죄형법정주의 부분에 대해 “이 사건 조항은 방송사 외부에 있는 자가 방송 편성에 관계된 자에게 편성에 관해 특정한 요구를 하는 등 자유롭고 독립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는 취지임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며 이 전 의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헌재에 묻고 싶다. 방송사 내부에 있는 편향된 자가 방송 편성에 간섭하고 개입하는 것은 괜찮다는 건가.

KBS 방송편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특정 정치, 이념진영과 연대관계인 특수 성향의 노조다. 다시 강조하지만 KBS 기득권 노조인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는 위원장 직속 정치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 위원회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선언하고 있는 강령에 따라 “조합의 정치활동 역량을 강화하고 민주노총과 제(諸)민주단체 및 진보정치세력과 연대하여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하기 위해 설립한 기구다. 정치위원회는 사업의 하나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및 진보정당 활동 관련 교육선전”을 명시하고 있다(정치위 규정 제2조).

헌재는 이런 노조가 배출한 핵심 인사들이 방송편성을 독점하는 현실을 알고 있나. 이런 방송 편성에 항의, 비판하는 것은 그럼 방송개입인가 아닌가. 헌재는 “이 사건 조항은 방송 편성에 대한 일체의 의견이나 비판까지 금지한 것이 아니라 간섭에 이르렀을 경우에만 금지하며, 방송법이나 다른 법률로 인정되는 다양한 의사 표현 방법과 통로가 있다”며 과잉금지원칙 위배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의 이 판단만으로는 어디까지 ‘간섭’이고 어디까지가 의견과 비판인지 필자와 같은 일반 국민이 가진 의문점을 전혀 해소해주지 못한다. 이정현 전 수석이 제기한 방송법 헌법소원에 대한 헌재의 이번 판결은 결과적으로 방송사 편성권을 ‘절대권력’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뜻은 방송사 내부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노조인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를 절대권력화’ 해준 것과 같다는 얘기다.

언론 현실을 무시한 헌재의 원칙적인 판단으로 인해 무소불위 언론권력자 언론노조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언터처블’로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비극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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