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11)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마대포와 적의 심리전
[연재칼럼](11)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마대포와 적의 심리전
  • 박재균 기자
    박재균 기자
  • 승인 2022.01.2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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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지혜와 계산되지 않은 용기는 만용이며, 그 만용은 모두를 죽게 한다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우리 중대는 대대본부에서 10여km 떨어진 벌판에 조그만 기지를 편성하여 이를 중심으로 수색, 정찰, 매복, 마을 평정작전 등을 수행하면서 대대나 연대, 사단 단위의 작전에 참가했다. 이 기지 내에서 우리 중대원 180여 명의 생활이 이루어졌다. 15개월간의 중대장 기간 중 기지 내에서 먹고 자면서 떠나는 사람을 부러움과 아쉬움으로 보냈고, 새로 전입오는 신병을 교육훈련시켰으며, 어두워지면 매복작전을 나가서 다음날 해뜨기 전에 들어오곤 했다.

누추하지만 피로에 지친 몸을 푸근하게 쉴 수 있는 나의 잠자리가 있었고, 피와 땀을 함께 흘리며 고통을 나누는 전우가 있었으며,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당이 있는 곳이었다. 아침에 용무가 있어 떠났던 사람도 해가 지기 전에는 모두 돌아오는 곳이었다.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살던 곳, 우리 중대원의 손때가 구석구석에 묻어 있었고 한과 서러움이 서려 있던 곳, 함께 살고 함께 숨 쉬던 곳이었다. 믿음과 우정과 사랑이 있었고 슬픔과 즐거움이, 신뢰와 배신이 함께 공존했던 곳이었다.

맨발과 팬티바람으로 생활하던 중대기지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나는 중대기지 내에서 중대원 전부가 반바지만 입고 생활하도록 했다. 나 역시 수영팬티에 맨발로 지냈으며, 중대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살갗이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이렇게 하여 의례 군화를 신으면 생기는 무좀환자는 한 사람도 없었으며, 나를 비롯한 모든 병사들의 발바닥은 곰발바닥처럼 단단해져 장거리 정찰 시나 각종 작전출동 시 발바닥이 부르트거나 아파서 고생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중대기지 내에서 생활할 때, 나는 중대 한가운데 우뚝 세워놓은 관망대 위에 올라가 잠을 자곤 했다. 이 관망대는 중대기지 주위의 평지 대부분을 관측할 수 있도록 긴 전신주 네 개를 세워서 그 위에 망루를 만든 것으로 망루내부의 사면벽을 모래주머니로 둘러서 소총탄이 관통할 수 없도록 방호벽을 만들어 놓았다.

반지하로 되어 있는 중대장실은 잠자고 쉬기에는 편안한 곳이었지만 밖이 보이지 않아 안이한 사고와 행동에 빠지기 쉬운 곳이었다. 나는 편안히 안주하기가 싫어 조금만 이상해도 중대관망대에 올라가서 기지 주변을 둘러보았고, 매복작전 나간 소대를 불러서 이것저것 확인도 했다. 때로는 경계호에 근무하는 병사들을 야간 조준경으로 일일이 세어보기도 했으며, 포진지에 연습사격 임무를 부여하여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어느 날 매복조를 출동시켰는데, 그들이 나간 곳이 기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걱정도 되었고 마음이 왠지 불안하여 무전병에게 무전기를 휴대시켜 오랜만에 관망대위로 올라갔다. 나는 관망대에 올라가면 조용히 쉬거나 기지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정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중대 경계근무호를 따라 야간조준경으로 근무상태를 확인했고, 매복지점에 대한 박격포 조명지원과 고폭탄 지원사격, 대대로부터 지원되는 105mm 곡사포지원 요청문제, 중대기지 주변에 적의 공격을 예상한 상황조치, 포사격, 예비대 투입 훈련 등을 지겨워 할 정도로 연습시키고 확인해 왔다.

조그만 오차나 방심, 잘못이 있었을 때에는 완벽하게 시정될 때까지 밤새도록 반복훈련을 시켰기 때문에 내가 관망대에만 올라가면 소대장, 선임하사 및 분대장과 고참병들은 적이 나타난 것만큼이나 긴장을 했다.

보통 한 집에 4~5명 사는데도 복잡한 일이 많이 생기는 법인데, 180여 명의 남자들만이 사는 기지 내 생활이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아도 사실은 복잡한 일들이 상당히 많았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사소한 것들은 그대로 넘어갈 수 있지만, 중대원의 생명과 관련되는 문제, 전투와 관련되는 사항은 한 번도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고 좁쌀 세듯이 전부 하나하나 철저하게 챙겼다.

기갑연대 6중대 기지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기갑연대 6중대 기지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초저녁이었다. 어두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정문 좌전방에 중대 쓰레기장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곳에서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쓰레기장은 정문에서 150m정도 떨어져 있었고, 그곳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월남군 민병대 1개 소대 규모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와의 거리에서 보면 거의 중간지역이었다. 또 ‘탁’ 하는 소리가 났다.

동네 사람들이 이 밤에 그곳에 있을 리가 없었고, 우리 병사들이 쓰레기장에서 지금까지 작업할 리도 만무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인근에 있는 마을 아이들이 우리 병사가 먹다 버린 C-레이션 깡통을 뒤져가곤 했는데 그 시간까지 그럴 리가 없었고, 동네 개들이 자주 모여서 쓰레기 속을 뒤졌지만 저런 둔탁한 소리를 낼 리는 더 더욱 없었다. 또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옆의 근무자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소리지?”

“모르겠는데요.”

나는 직감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근무자에게 기관총 사격준비를 시키고, 바로 관망대 밑에 있는 81mm와 60mm 박격포진지에 연락해 쓰레기장을 사격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거리는 400m정도, 아주 지근거리로서 잘못하면 월남 민병대 진지 내에 포탄이 떨어질 판이었다.

조금 있으려니까 식당 근처에서 “퍽” 하면서 흙마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꽝” 하고 굉장한 섬광과 함께 폭음이 요란했다. 두 번째도 “꽝” 하고 바로 옆에 있던 155mm 포대의 탁구장 근처에서 터졌다. 세 번째 역시 “꽝” 하고 관망대 우측 아래에 있는 중대 창고에서 터졌다.

첫 탄이 터지자마자 취사장 근처에서 쓰레기장을 향해 기관총 사격을 했고, 정문근처 초소에서도 사격을 했다. 그러나 포사격을 하기에는 워낙 근거리라 60mm 박격포만 사격을 했다. 월남민병대 진지에서는 자기들에게 실탄이 날아온다고 아우성이었지만, 호안에 들어가면 소총실탄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화로 연락하여 모두 호안에 엎드리라고 연락하고 사격해 버렸다. 우리의 박격포탄도 거의 정확하게 떨어져서 터졌다.

적의 행동은 곧 끝이 났다. 조명탄을 띄워놓고, 월남민병대와 협조 후 1개 소대 병력으로 하여금 포복자세로 기어가 확인토록 했더니 적은 이미 도주해버렸고, 가루 폭약에 뇌관이 설치된 마대 주머니 여섯 개만 찾아들고 돌아왔다.

기갑연대에서 헬기 픽업 직전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기갑연대에서 헬기 픽업 직전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얕은 지혜와 계산되지 않은 용기는 만용이며, 그 만용은 모두를 죽게 한다

당시 적들은 탄약보급의 제한 때문에 현지에서 조달한 폭약가루를 작은 자루에 넣고 자연신관의 뇌관을 부착하여, 옛날 소총이 발명되기 전에 돌을 멀리 보내기 위해 석포(石砲)로 돌사격 하던 것과 같은 요령으로 별다른 조준이 필요 없는 넓은 기지내로 사격을 하곤 했다.

우리는 원시적인 이 조잡한 월맹군의 포를 마대에 넣고 쏜다고 하여 ‘마대포’ 또는 ‘마다리포’ 라고 불렀다. 포탄이 떨어질 당시 병사들은 지하에 벙커식으로 된 분대별 내무반이 무더워서 상당한 인원이 소대 주위에 있는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교육을 하거나 막사 지붕위에 모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로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취약한 시간이었다.

쓰레기장은 중대와 월남민병대 정중앙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쓰레기장을 향해 서로 사격을 하다보면 잘못하여 실탄이 상대편 기지로 날아가고 결과적으로 월남군과 한국군이 교전하는 엉뚱한 경우가 생기게 된다. 적은 그것을 유도하여 우군끼리 사상자가 발생토록 서로를 이간시키려는 잔꾀를 썼던 것이다.

우리가 사격하기 전 아군끼리 피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월남군과 서로 협조하는 사이, 적들은 가지고 온 마대포 폭약을 남김없이 다 쏘고 도망갈 수 있는 안전시간을 확보하자는 술책이었다. 중대기지 주변과 접근로 상에는 많은 화집점이 형성되어 있었고, 함께 있던 155mm 포대에는 기지방어를 위해 개발된 바늘탄을 영거리사격으로 공중폭발시키면 그 일대에 생명이 있는 것은 살아날 수 없게끔 준비되어 있었다.

시간적으로 대부분의 중대원이 밖으로 나와 있어서 조준 없이 아무 곳에나 떨어뜨려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가장 많은 시간, 위치상으로 바로 우리와 함께 있던 155mm 곡사포조차도 이용할 수 없는 장소. 경계적 측면에서도 월남군이나 한국군이 서로 소홀히 할 수 있는 장소. 또한 쓰레기장은 구덩이를 크게 파놓고 사용하므로 적이 그 속에 들어가면 우군의 직사화기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지역이었다.

우리 병사들은 ‘건너편에 월남군이 있는데 어떤 적이 이곳으로 오겠는가?’ 라고 생각하기 쉬웠고, 월남군 지역에서는 ‘화력이 좋고 잘 싸우는 한국군이 건너편에 있는데 이 지역에 어떤 녀석이 감히 오겠는가?’ 하고 믿기 쉬운 곳이었다. 작전이나 경계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언제나 소홀하여 경계심이 해이해질 수 있는 교묘한 지역이었다. 적이지만 영악하고 영리한 놈들이었다.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였지만 과감하게 쓰레기장까지 기어들어와서 공격한 것은 배울 점이 많았다.

너는 우리 맹호를 위해 힘을 과시하는 무기다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너는 우리 맹호를 위해 힘을 과시하는 무기다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중대를 확인해 보았더니 별 피해는 없었다. 다만 식당의 식탁 위에서 벌렁 드러누워 있던 취사병이 널빤지가 튀면서 발뒤꿈치를 맞아 인대가 끊어졌고, 155mm 포대의 탁구대 위에 누워 있던 이발병은 유리창이 깨지면서 파편이 튀는 바람에 몇 군데 파편을 맞았다. 이상하게 두 명 모두 널빤지 위에 드러누워 있던 병사들이었다. 그 후 다시는 널빤지 위에 드러눕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 먼동이 트자마자 지역 일대에 대한 재수색을 했고 쓰레기장을 전부 뒤집어 보았으나 특별히 적에 관해서는 찾아내지 못했다. 어떤 투발수단을 이용해서 그 마대주머니를 수백 미터씩이나 날려 보냈는지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아침 수색 중에 중대 앞에 있는 마을에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어제 저녁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느냐?’고 물었다. 생각했던 대로 하나같이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무관심하고 무표정했으며 무엇인가 불만이 꽉 차 있는 것 같았다. 여자들은 말을 붙여도 대답도 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손을 입에 물고 어른의 다리나 허리를 붙들고 그저 멍하니 우리를 쳐다볼 뿐이었다.

예감에 마을 사람들이 우리 중대에 대해서 무엇인가 큰 불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집 대나무 평상에 걸터앉아 마을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가 많은 어른 가운데 한문을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자주 옥편을 가지고 다녔다. 다행히 이 지역 마을 어른 중에서도 한문을 잘 아는 사람이 있어서 종이에 한문을 쓰기도 하고 월남어 통역병을 통하기도 해서 의사를 통할 수가 있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제 저녁에 우리가 쏜 기관총실탄이 마을로 날아와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죽는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노인 한 분이 나를 안내하여 그간 실탄이 날아와 박힌 흙담벽과 집기둥을 보여주었다. 전부 우리 M16 소총과 기관총실탄 자국이었고, 흙담이나 벽의 여러 곳이 총에 맞아 부서지고 망가져 있었으며, 기둥을 비롯한 여러 군데의 나무 부위에도 실탄이 많이 박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 중대에서 총소리가 나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고,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총소리가 나면 몸을 피할 수 있도록 침대 바로 밑에 호를 파놓고 “땅” 하면 침대밑으로 “툭” 굴러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나는 이 노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세상에 이런 멍청한 짓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짓을 하는 것이 나 자신인가?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했을까?’ 내 잘못을 뼈저리게 느꼈다. 생명은 똑같이 귀한 것이며, 내 부모나 이 노인이나 모두 어른인데 우리는 이 마을 주위에 살면서 이 마을 주민의 평화와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싸운다면서 마을 주민이나 어른들을 괴롭힌 결과가 되고 만 것이었다.

우리는 이 마을에 있는 기지를 중심으로 작전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는커녕 주민의 마음을 적에게 내어준 채로 돌아다녔던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짓을 했던가. 내 자신과 중대원을 다 죽이려고 환장했단 말인가! 이 노인이 한문까지 알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을에서 존경받는 사람인 동시에 전체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마을 어른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마을의 피해상황에 대한 설명을 다 끝마쳤을 때 중대원과 마을사람이 보는 앞에서 나는 노인을 대나무 평상에 앉히고는 넙죽 엎드려서 큰절을 한 번 했다.

마을 노인과 간담회 중인 (당시)서경석 대위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나는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을 자주 찾아갔다. 큰 절을 하는 나를 보고 동네 어른들은 배운 집 자손이 왔다고 칭찬을 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주민의 마음을 내 편으로 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적 포탄이 터지는 것은 보이지만, 주민의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내 것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 참고 기다리면서 노력해야 한다. 마음이 떠나면 다 떠난다. 날아오는 포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주민의 마음이 떠나는 것이다.

그 뒤로 마을 주위에 대한 사격을 통제했고, 이발지원이나 의무지원 뿐만 아니라 그 노인장 생신 때에는 선물을 사가지고 찾아가 보기도 했고, 마을 사람들이 모내기를 할 때에는 물도 같이 퍼주고 추수기에는 벼도 베어주었다. 순박하고 온순한 사람들이었다. 그저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이 마을도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어느 집 아들은 정부군에, 어느 집 아들 혹은 딸은 베트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념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였고 어떻게 농사나 잘 지어서 식량걱정 안하고 사나, 정부군 측과 베트콩 사이에서 죽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것이 눈앞의 목적일 뿐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 마을과 우리 중대 사이에는 비포장도로와 도로를 따라 논에 물을 대는 도랑이 있었는데, 이 도랑을 타고 베트콩이 살금살금 기어와 밤중에 중대기지에 수십 발의 소총 연발사격을 하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전 같으면 박격포를 포함하여 엄청난 양의 소화기사격을 가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조명탄만 띄우고 전혀 사격을 하지 않았다.

야간에 300~400m떨어진 도랑에 엎드려 소화기사격만 하고 살살 기어서 달아나는 적을 사살하기란 마치 황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적은 우리에게 사격을 유도하여 마을로 실탄을 날려 보내 마을 사람들을 죽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우리 한국군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되고, 월맹군 편에 서서 필요시 우리에 대한 각종 첩보를 그들에게 알려주게 될 것이다.

대민지원사업 중인 맹호부대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주민의 마음이 떠나면 게릴라만 좋게 만든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내 것으로 하기 위하여 논에 물도 퍼주었다. 내가 1969년 맹호부대 재구대대에서 중대장 때, 이런 당시 우리들의 노력이 월남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고, 전후 한국이 월남에 진출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이처럼 적들은 고도로 철저히 계산된 심리전을 수행했다

물리지도 않을 미끼에 현혹되러 덥석 무는 격으로, 잡히지도 않을 생쥐새끼를 잡으려고 총을 마구 갈겨댔다가는,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 반드시 우리 곁에 끌어들여야 할 마을사람들의 마음을 다 잃어버리고 결과적으로 그들을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 후에도 똑 같은 총격사건이 두 번인가 더 있었지만 그때도 우리는 쏘지 않았다. 철저하게 계산된 용기와 지혜는 적을 능가할 수 있지만, 얕은 지혜와 계산되지 않은 용기는 만용이며 그 만용은 반드시 우리 모두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죽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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