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8)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선임하사와 딸
[연재칼럼](8)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선임하사와 딸
  • 박재균 기자
    박재균 기자
  • 승인 2022.01.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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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맺어진 선임하사 딸과의 우정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내가 월남에서 소대장을 할 당시, 나이는 겨우 스물여섯 살이었다. 당시 소대 선임하사는 파월된 지 7 개월가량 되었는데 전투경험이 많았고, 나이도 나보다 여덟 살 정도 연상인 서른 네 살가량으로 기억한다. 그는 순박하고 성실했지만,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막무가내로 누구에게도 잘 굽힐 줄 몰랐다. 그리고 그동안 대소 작전에 참가하여 실전경험도 많았고, 작전 책임지역의 지형이나 주민의 성향 및 적정에 대하여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처음 지역 내 수색정찰 임무를 받고 소대원들과 회의를 할 때였다. ‘신임 소대장은 아무것도 모르니 서두르면 죽는다’는 식으로 겁을 주는가 하면, 소대장 공백 기간에 자기가 잘 해냈으니 앞으로도 계속 자기가 하자는 대로 따라하라고 은근히 강요하기도 했다. 몹시 자존심 상하고 불쾌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참았다. 나이가 여덟 살이나 아래인 신임 소대장에게 처음부터 고개 숙이고 들어간다는 것이 오히려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자기에게 마음이 쏠려있던 병사들인데, 고스란히 신임 소대장에게 전부 돌려주자니 마음이 몹시 상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초임 소대장의 고충

처음으로 소대원들을 인솔하여 지역 내 수색정찰을 나가기 전날 밤, ‘내가 이제 전투를 하는구나, 사람을 총으로 쏴야 되는구나’하는 생각에 가볍게 흥분되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지금까지 주위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소대장이 가장 많이 당했다고 하기에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 이런 저런 걱정이 들었고, 사실 겁도 많이 났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산으로 작전을 나갔을 경우, 사람이 나타나면 그것은 반드시 적이었다. 들판으로 나가면 적과 주민 그리고 적의 첩자까지 섞여 있었기 때문에 피아식별이 곤란했다. 비록 적일지라도 확인되기 전까지는 먼저 쏠 수 없었다. 적이 먼저 쏴야 우리가 쏠 수 있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첫 수색정찰은 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마을지역으로 나갔다. 중대를 출발하기 전에 치밀하게 작전을 준비했고, 작전 중에 일어났던 상황과 관찰된 첩보사항들은 돌아와서 상세히 보고해야 했다. 적정이나 지형은 물론이었고, 촌장을 포함한 주민의 성향과 심지어 고추밭이나 수박밭이 어디 있나 하는 것까지 세부적으로 보고해야 했다.

미 해병4사단 2대대의 다이동 진입 [사진:위키미디어]

당시 소대장들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적의 저격이었다. ‘땅’ 하고 총소리가 나면 십중팔구 소대장이 총을 맞기 마련이었고 다음은 무전기를 메고 있는 통신병이었다. 선임하사는 첫 임무부터 소대장이 저격 받지 않도록 하얀 지도는 아예 꺼내보지도 못하게 했고, 무전기 안테나도 뽑아버렸다. 중대 상황실과의 교신도 선임하사가 했다.

모두 소대장을 위한 것이니까 이해하고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귀대 후에 정찰결과를 보고하려면 지도와 실지형을 대조하면서 지형숙지를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제대로 꺼내보지 못했으므로 난처하기만 했다. 독도법은 꽤나 자신이 있었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를 수밖에 없었다. 무전기 교신 역시 음어와 적당히 우리끼리 만들어 쓰는 은어가 뒤섞여 있어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매복과 수색을 비롯하여 기타 작전활동 간에는 통상 소대장 조와 선임하사 조로 나뉘어서 작전을 했다. 밀림 속에 넓게 전개된 소대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소대장이 기관총으로 편제된 화기분대와 일개 소총분대를 맡았고, 선임하사가 두 개 분대를 맡아서 지휘했다. 하지만 한사람 밑에 오래 있으면 소대화합과 교육면에서 고르지 못한 현상이 발생했고, 편애하는 경향이 생길 우려가 있어 분대를 돌아가면서 맡아 지휘했다.

그때마다 소대장인 나의 조로 들어오는 병사들은 소대장이 전투경험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매우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니 소대분위기도 신임소대장에 대한 존경과 기대는커녕 걱정과 우려를 잔뜩 갖고 나를 대하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나의 첫인상은 짧은 머리와 땅땅한 몸집 때문에 외형적으로 강하고 거칠 것이라는 선입관을 남에게 준다. 그래서 그랬는지 마치 전장에서 전투경험이나 전장감각도 없이 마구 설쳐댈 것으로 미리 짐작하고 겁을 주어보자는 분위기 같았다. 이런 숨 막히는 분위기는 선임하사를 포함한 고참들의 소행에 의한 것이 틀림없었다. 오락이나 별다른 즐거움이 없는 무미건조하고 거친 생활의 연속이라, 새로운 신참내기 소대장을 골탕 먹여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전투에 지친 병사들의 속성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산 속으로 작전을 나가면 서부영화에서 본 인디안 같은 놈이 나무 위에서 금방 도끼를 들고 뛰어내려올 것 같았고, 어디에선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놈이 내 심장에 정조준을 하고 기다리는 것 같아 섬찟하기만 했다. 나무 덩굴을 보면 전부 부비트랩 인계철선 같이 보였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뢰가 곧 터질 것 같았다. 또한 들판으로 나가면 독침이 어디 있을까 두리번거렸고, 풀숲을 보면 그 속에서 적이 총을 쏘며 튀어나올 것만 같았으며, 민간인을 마주칠 때마다 적이 아닌가 싶어 바짝 긴장하는 신참내기 시절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전부 잘 한 것 같지만 당시 고참들이 보기에는 어설픈 점이 많았을 것이다.

고엽제 효과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전장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조치하는 능력은 내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해서 터득하기란 힘든 일이기도 했지만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전장의 제반 요소들을 배워야 했고, 소대원은 나를 가르쳐야 했다. 나는 배우려는 의욕에 가득 차 있어도 가르쳐주어야 할 사람들이 나 때문에 안 해도 될 훈련과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중대에서 수립한 교육훈련계획에 현지적응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이 잡혀 있었다. 다른 소대와는 달리 밀림지역과 마을이 있는 평야지의 수색정찰, 강가의 수중은거지 탐색요령, 각종 화기 및 폭발물 사용요령과 기지 경계요령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교육 때마다 소대원들은 말없이 따라오긴 했지만 속으로는 항상 불만스러워 했고, 선임하사나 분대장급에서는 안 해도 되는 훈련을 한다는 식으로 불평이 새어나왔다. 처음부터 나는 이런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맥주도 사주고 면담도 했다. 내가 처음 왔으니까 한번 으스대고 싶어서 그런 것이겠지 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결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터득한 그들의 경험을 존중해 주었고, 그들을 이해하면서 내 사람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진심으로 나를 따르고 마음속에서 진정한 복종이 우러나오는 소대원을 만들까 하는 고심도 많이 했다. 중대장님도 나의 심정을 이해하시고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지내다보면 시간이 해결해주니 기다리라는 충고를 해주셨다.

나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편지를 쓰면서 중대장님과 대대장님에 관해서도 적어 보냈다. 편지를 받으신 아버지께서 중대장님과 대대장님께 편지를 보내셨다. 편지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두 분 모두 아주 반가워하시며 다른 사람보다 나에게 더 각별한 관심을 주신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이 점을 중시하고 소대원 가족과도 편지를 하기로 했다. 소대원의 신상명세서를 뒤져서 주로 부모님들께 자제 분의 소대장임을 밝히고, ‘잘 데리고 있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는 내용을 써 보냈다. 답장은 부모님이 직접 써서 보내시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형이나 동생들이 대신 답해 줄 경우가 많았다. 시집 안 간 누나나 여동생이 호기심을 갖고 정성스럽게 보내준 내용도 있었다. 전쟁터에 자식을 보낸 부모 마음이 하루도 편할 리 없던 차에 생사를 함께 하는 소대장이 친필로 쓴 소식은 부모님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하였고, 마침내 소대원들의 마음을 끌어안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편지로 맺어진 선임하사 딸과의 우정

선임하사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있었다. 전방에서 근무하다가 파월 되어 가족은 아직 전방에서 애들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 딸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두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 딸들에게서 곧 답장이 왔다. 이렇게 해서 나는 소대 선임하사의 딸들과 친구가 되어 우정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호이안 해변가에서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를 읽으며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이동 PX가 오면 간단한 학용품을 사서 보내주기도 했고, 중대에서 나오는 일용품 중에서 여학생이 좋아할 지우개나 볼펜 및 노트 등을 골라서 조금씩 보내주었다. 선임하사의 딸들과 편지를 하면서 쌓은 그의 딸들과의 우정은 내가 정성을 들인 것만큼 그대로 선임하사에게 전달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원들과 신뢰가 쌓이고 처음 왔을 때 어리벙벙한 티도 많이 벗었다. 작전만 나가면 선임하사 뒤만 따라다니던 초년병의 신세도 이제 면했다.

어느 날 우리 중대는 차를 타고 마을 평정작전에 투입되었다. 적의 활동이 많은 지역이라 출동해서 보니 마을에 온통 민간인뿐이어서 누가 적이고 누가 양민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첫날은 우리들의 출현으로 놀란 주민들이 싸움판을 피해 쏟아져 나와서, 이들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고 적색분자를 분류하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게들 보냈다.

다음날 중대에서 일개 소대씩 포위권 내부수색을 했다. 전날 민간인으로부터 미처 대피하지 못한 지방게릴라들이 마을 내부에 많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나섰기 때문에 저격과 기습사격에 철저하게 대비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마을은 비교적 부농이었고 집집마다 부처님을 모셔놓았으며, 부처님 앞의 제단에는 바나나와 바나나 잎에 싼 찹쌀 인절미가 많이 놓여 있었다. 가택 수색 시 민간인 재산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았으나 바나나와 인절미는 부처님 상을 돌려놓고 집어먹기도 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장난기가 담겨 있는 행동들이었다고 본다.

바나나와 야자수가 무성한 지역을 지나는 도중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적의 개인화기 사격을 받았다. 연발로 “다다다딱” 소리가 나자마자 주변의 바나나 나뭇잎 뚫어지는 소리가 “타다닥” 났다. 상탄이 나는 것을 보니 소총사격이 틀림없었다. 기관총은 어깨에 견고하게 견착하고 쏘기 때문에 상탄이 나지 않는다. 오싹하는 전율을 느끼면서 우전방에서 전진하는 선임하사를 부르기 위해 무전기 키를 잡았다. 그런데 내가 그를 채 호출하기도 전에, 무전기로부터 선임하사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흘러나왔다.

“우리 좌전방에서 적의 실탄이 날아오는데, 내가 접근해서 처치할 테니 소대장조는 더 이상 전진하지 말라. 잘못하면 접근하는 우군의 총에 맞을지 모르니 사격도 하지 말라. 소대장님 고개를 못 들게 해라. 엎드려! 엎드려! 절대로 튀어나오지 못하게 하라! 이상.”

그리고 나서 그는 조를 이끌고 집중사격을 하면서 적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적은 많은 탄피만 남겨 놓고 도주해버려 적을 잡지는 못했다.

작전이 끝나고 나는 선임하사와 마주 앉았다. 그의 손을 잡고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조금이나마 그를 오해하고 있었음이 부끄러웠다. 언제나 ‘소대장이 잘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내세워 소대원들 앞에서 무안을 줄 때마다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기분 나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를 미워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소대장을 위한다는 표현이 세련되지 못하여 투박하게 표현된 것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민망하기만 했다.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총소리가 나고 적이 소대장 쪽으로 사격하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고국 땅 전방에 두고 온 사랑하는 딸들이 생각나더라고. 그들은 자기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아빠의 건강뿐 아니라 자기들의 친구가 되어준 소대장의 안부를 물으면서 소대장 역시 몸성히 근무 잘 하기를 바란다는 소식을 전해왔다고 했다. 자기 부인까지도…….

총소리가 “따다닥” 하는 순간, 소대장이 다치거나 전사하면 자기 딸들에게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무전기로 상황보고를 하면서 소대장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지에 돌아온 뒤 그의 딸들에게 아빠가 보여준 생사를 초월한 깊은 전우애에 대하여 소상한 소식을 전했다. 편지로 이어진 선임하사 딸들과의 우정은 나와 선임하사를 뜨거운 전우애와 신뢰로 깊게 맺어주었고, 그때부터 그의 세련되지 못한 어설프고 투박한 표현들을 때 묻지 않은 신선하고 순박한 표현으로 다시금 받아들이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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