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7)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크레모아, 조심해야 한다
[연재칼럼](7)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크레모아, 조심해야 한다
  • 박재균 기자
    박재균 기자
  • 승인 2022.01.1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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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무기는 결함이 있다. 모르면 내가 죽는다.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내가 처음 파월해서 배치된 부대는 맹호 1연대 6중대였다. 파월을 함께 한 17명의 병사들은 각 소대로 흩어졌고, 나는 화기소대장 보직을 받았다. 중대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적응 훈련의 일환으로 1소대장 김 소위의 책임 하에 소총사격을 비롯하여 수류탄과 크레모아 및 매복 등의 전입교육을 받았다. 야간 경계근무와 매복 작전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오후에는 잠을 잤고, 모든 교육은 주로 오전에 이뤄졌다.

중대에 부임한지 사흘쯤 되던 날, 나는 박격포를 가지고 사격장으로 가서 소대원과 60mm박격포 사격연습을 했고, 김 소위는 조금 떨어진 개활지에서 나와 함께 전입 온 신병들에게 전입 교육을 하고 있었다. 첫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신병들이 훈련받는 장소에 찾아가 보았다. 병사들은 나를 보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교관인 김 소위가 자기들 앞에서 수류탄 안전핀을 뽑았다 끼웠다 하면서 시범을 보였을 때 처음에는 몹시 불안했지만, 이제는 자기들도 모두 여유 있게 수류탄 안전핀을 뽑아 손잡이가 튀어나간 다음에 하나, 둘, 셋까지 세고서 교육목적상 파놓은 간이동굴에 집어넣는 실제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작전을 나가서 동굴 속에 수류탄을 집어넣을 경우, 적이 다시 집어던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이라 생각되었지만 신병에게는 아직 너무 이른 편이라 부담스러운 교육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들과 헤어져 다시 박격포 사격장으로 와서 훈련을 계속 하고 있는데, 방금 내가 다녀온 신병훈련장 부근에서 “꽝”하는 폭음소리와 함께 먼지가 보이더니 고함을 지르면서 위생병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 명은 이쪽으로 뛰어온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쏜 박격포탄은 분명히 산 너머에서 터졌지?”

처음에는 우리가 쏜 박격포의 오폭인 것으로 생각했다. 소대원들은 사고가 난 것이 틀림없으니 빨리 가보자고 소리쳤다. 나는 폭발현장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방금 전까지 휴식시간에 담배를 함께 피웠던 김 소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땅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눈만 껌뻑이며 말을 잃었고, 바로 몇 발짝 앞에는 나와 함께 전입 온 병사 네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난 우선 위생병과 함께 김 소위에게 달라붙어 그의 옷을 찢었다. 상처확인을 위해서였다. 그가 가리키는 다리를 확인하기 위해 바지를 찢어보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미제 M18 크레모아 설치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그가 교육시키던 크레모아가 터지면서 파편은 전방으로 날아가 병사들을 쓰러뜨리고, 후폭풍은 흙먼지와 함께 김 소위의 정강이 아래에서 발목 위까지를 때려서 뼈와 살 속에 새까맣게 박혀 버렸다. 응급처치를 하려고 압박붕대를 들이대니, 마치 만두 속을 만들려고 고기를 다져놓은 것처럼 이미 장단지살은 전부 흙먼지로 문드러져 잡는 대로 손가락 사이로 밀려나왔다. 그가 내게 물었다.

“다리가 몹시 아픈데, 서 중위 님 제 다리상태가 어떻습니까?”

나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김 소위! 뼈는 이상 없고 근육이 끊어진 것 같으니 걱정 말고 조금만 참고 있게.”

이렇게 대충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 소위는 두 다리를 잃었다. 그가 헬기에 실려 가기 전, 몰핀을 맞고 통증을 잠시 잊어버리게 되자 내게 간단한 상황설명을 해주었다. 자기는 전혀 크레모아 격발기를 누른 일이 없으며 안전장치까지 했는데, 크레모아에 격발기를 연결하는 요령을 시범보인 후 격발기를 땅바닥에 던지는 순간 폭발했다고 얘기했다. 격발기를 확인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내게 남기고 그는 헬기에 실려 병원으로 떠났다.

병사들이 쓰러져 있는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대장 앞에서 하나라도 더 익히려고 턱을 고이고 김소위의 교육내용을 경청하던 병사들 중 애석하게도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 생각보다 피해가 적었던 것은 크레모아가 비스듬히 위쪽으로 눕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크레모아, 늘 우리 주변에 있다. 항상 배낭 속에 지고 다닌다. 잘 알고 사용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가? 나는 김 소위가 말한 격발기를 갖고 중대로 돌아와 중대장님과 격발기를 연구한 후 그 원인을 찾아냈다.

모든 무기는 결함이 있다. 모르면 내가 죽는다.

크레모아는 미군이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중공군같이 인해전술로 달려드는 적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해서 동시에 대량살상이 가능한 무기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개발한 무기다. 크레모아는 격발손잡이를 1,2단계로 누르게 되면 내부의 피스톤이 상하로 이동하면서 급속한 자극변화를 일으켜 유도 전류를 발생시킨다. 이때 발생된 전류를 유도코일이 증폭시켜서 뇌관을 점화하고 마침내 크레모아 몸체가 폭발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크레모아의 격발장치 용수철은 텅스텐 성분이 혼합된 강철성분으로 제작되어 격발 후 용수철이 반드시 원위치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용수철의 탄력성이 저하되어 격발기 손잡이를 누르고 난 후, 용수철의 수축작용만 이루어지고 다시 용수철이 원위치로 팽창되지 않으면 예민한 작은 충격에도 용수철이 위로 튕겨 올라오면서 전류를 발생시키고 뇌관을 점화하여 크레모아를 폭발시킨다.

미제 M18 크레모아 구성 [사진:위키미디어]

교범의 내용에도, 크레모아를 교육하는 대부분의 교관들마저 크레모아 손잡이를 누르면 1,2단계의 격발과정을 거쳐서 ‘딱, 딱’ 소리를 내면서 폭발한다는 것만 알고 있지, 용수철이 밑으로 눌려 있다가 위로 튕겨 올라오면서 전기를 발생시켜 뇌관을 폭발시킨다는 사실은 거의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격발기에 점검기를 결합하여 전기가 정상적으로 발생하고 도전선이 절단되지 않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때 격발기 손잡이를 누르면 전기가 발생하고, 이상이 없을 때 점검기에 불이 들어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고무 커버에 덮여져 있는 용수철이 한번 내려가서 격발시키고, 용수철이 다시 원위치가 되지 않은 채 그대로 눌려진 상태로 있을 수 있다. 이때 격발기에 작은 충격을 가하면 눌려있던 용수철이 사이로 ‘탕’ 튀면서 전류를 발생하여 점검기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왜 용수철이 밑에 눌려져 있을까?

격발장치의 용수철을 덮고 있는 고무보호막은 실리콘 고무재질로서 기온변화에 따라 동계에는 딱딱해지고 하계에는 아주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재질 자체의 이완 및 수축작용이 크고, 여러 번 격발하면 고무가 찢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한 장기간 야외에 노출되면 빗물, 습기 등이 고무보호막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의 용수철, 피스톤, 베어링 등이 모두 부식되어 녹이 슬게 되고, 흙이나 먼지가 찢어진 고무 틈사이로 들어가 마침내 녹과 함께 범벅이 되어버리면 용수철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김소위가 들고 교육하던 크레모아 격발기는 그의 말대로 안전장치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격발기는 용수철 고무보호막이 찢어져 있었고, 내부를 분해하여 보니 찢어진 고무보호막 사이로 물과 습기가 들어가 녹이 많이 슬어 있었다. 미세한 먼지도 많이 끼어 있어서 용수철, 피스톤, 작은 베어링, 접촉봉 등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점검기를 연결해서 격발손잡이를 눌러보니 용수철이 원위치 하지 않고 밑 부분에 그대로 눌려 있는 것이 바로 그 문제의 격발기 상태였다.

크레모아 격발기 구조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김 소위는 점검기를 결합하고 사용요령을 교육하고 난 다음에 다시 점검기를 제거한 뒤 안전장치를 하였고, 크레모아 도전선에 안전장치가 되어 있는 격발기를 결합한 후, 아무 이상이 없겠지 하고 크레모아 격발기를 땅에 놓는 순간, 작은 충격에 오므려졌던 용수철이 위로 튀면서 전기가 발생하여 크레모아가 터졌던 것이다. 중대의 모든 격발기를 검사해보니 몇 년 동안 교통호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전체의 반 이상이 유사한 결함을 갖고 있었다. 고무보호막이 찢어진 것이 그 중 절반 이상이었다. 전부 회수해서 반납하고 철저한 교육을 시켰다.

김 소위는 양 다리를 잃었고 다른 한 명의 병사가 순직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이 연구결과는 맹호사단 내에서 말할 것도 없었고 주월 사령부 전체에 교훈으로 전파되었다 또한 전 부대를 대상으로 감찰검열이 실시되어, 재발을 막기 위한 지휘 및 참모활동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또 다른 희생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나는 화기소대장에 보직된 지 3일 만에 다시 김 소위가 지휘하던 1소대장으로 보직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소총소대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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