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5)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적 야전병원과 '쑤'병장(상)
[연재칼럼](5)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적 야전병원과 '쑤'병장(상)
  • 박재균
    박재균
  • 승인 2022.01.1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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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남기지 마라. 꼬리를 잡힌다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밤새도록 조명탄이 터지고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나는 가운데 우리 소대는 산 중턱에서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펼쳐진 밀림을 보면서 이제부터 수색해 나갈 지역을 관찰했다. 일단 밀림지역에 들어가면 방향유지가 어렵고 자신의 위치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지도정치를 해 놓고 밀림속의 중요한 지형지물과 주변의 주요고지들에 대한 방위각과 거리를 정확히 표기하여 앞뒤를 분간하기 어려운 밀림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밀림이나 산악지대에서 자칫 잘못하면 방향과 길을 잃는다. 떠나기 전에 가는 방향을 잘 보고 다음 이동할 지점을 미리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세밀한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곳 어디엔가 월맹정규군 3사단이 부상병 치료를 위해 야전병원을 설치했는데, 바로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이 병원은 월맹군이 참전하기 전부터 이 지역 게릴라들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이 지역 일대에서는 유일한 적 야전병원이었다. 부상자나 전염병 또는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했을 때 그 곳에서 치료를 했다고 한다. 포로 심문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여러 차례 확인되어 맹호부대가 3년 동안 작전 시마다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교묘하게 위장해 놓았기 때문에 번번이 허사였다. 이곳의 의사들은 하노이에서 데려온 군의관도 있었지만 민간인 의사를 납치해서 수술을 시킨다고 전해졌다. 우리는 상급부대로부터 선량한 양민이 납치되어 와 있을지 모르므로 접전 시 양민은 가능한 한 구출하고, 환자는 다치지 않도록 잘 보호하여 후송토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고엽제 살표 효과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흔적을 남기지 마라. 꼬리를 잡힌다.

우리가 수색해야 할 지역에는 계곡물이 횡으로 흐르고 있어서 처음에는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면서 하향수색을 해야 했지만 개울을 건너서는 밑에서 위로 상향수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상향수색 시에는 산을 올라가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전방관측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었고, 혹시 적에게 우리가 올라가는 것이 먼저 발견되면 위에서 아래로 집중사격을 받게 된다.

상향 수색 시는 능선을 먼저 점령해야 한다. 낮은 곳에서 교전 시 능선에 있는, 즉 높은 곳에 있는 인접전우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한다. 또한 적의 저격은 근거리에서 조준사격을 했기 때문에 ‘땅’ 하고 한 발의 총소리가 나면 꼭 한 사람이 쓰러졌다. 이것이 가장 두려웠다. 뿐만 아니라 적이 앞에 있어도 수류탄을 던질 수 없거니와 잘못 던지면 다시 데굴데굴 굴러 내려와 터지기 때문에 상향수색은 누구나 싫어하는 작전이었다. 부득이한 경우 구간별로 좌우측의 능선을 사전에 점령한 다음 인접 전우의 관측과 사격의 엄호 하에 상향수색을 실시하곤 했다.

소대는 능선에 전개하여 개울로 내려가는 가파른 경사지를 수색해 내려갔다. 이런 가파른 곳에 적이 은거지를 잡을 리 없었지만 혹시 도망가는 적이 숨어 있을지 몰라 땅바닥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야전삽으로 파 보기도 하였고, 덤불 속이 수상하면 사격을 실시하여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전개해 나갔다.

우리는 개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큰 바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물속에 들어가 바위틈 하나하나를 확인하였지만 적이 유기한 물건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개울가에는 작지만 넓적한 반석들이 마치 우리나라 산간시골의 마을 앞 개울에 빨래를 하기 위해 비스듬히 놓아 둔 돌들과 비슷했다. 그 돌들은 이끼가 끼어 있지 않았고, 다른 돌처럼 색깔도 검지 않아 희끗희끗하게 드러나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 근처에 무엇이 있구나! 이것이 바로 환자의 옷을 세탁한 흔적이구나. 환자들이 휴양삼아 쉬는 곳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생활유기물이 흩어져 있기 마련인데 흔적제거가 잘 되어있는 것을 볼 때 적들의 전장군기가 매우 훌륭하다고 판단했다.

수색작전 시 적의 생활유기물 흔적은 하나라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대변, 밥찌꺼기, 담배꽁초 등…... 따라서 이번 수색은 머리를 써서 잘 해야지 잘못하다가는 크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기관총을 포함한 2개 분대규모로 능선을 먼저 점령했고, 나의 엄호 하에 선임하사가 2개 분대규모로 평평한 지역을 정밀 수색하기로 계획을 세운 후 소대를 좌우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낮은 자세로 이동하면서 수색대형을 갖추어 전진로를 확인하는 순간, “꽝”하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우측을 보니 우리 병사 한명이 공중으로 약 2m정도 튀어 올랐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부비트랩이 터졌구나’ 생각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그곳을 기어갔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된 부비트랩의 사례 [사진:위키미디어]

 

“무슨 일이냐?”

내가 무릎을 꿇고 서 있던 곳에서 우측으로 8m정도 옆으로 가서 확인해 보았더니 병사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소로 옆에 있는 큰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넝쿨을 적들이 부비트랩 인계철선으로 이용, 소로목에 T.N.T 폭약가루로 만든 급조식 지뢰를 묻었는데 바로 그 위에 엎드리자 나무넝쿨을 잡아당기게 되어 안전핀이 빠지면서 폭발한 모양이었다. 같은 조에 있던 다른 병사는 바로 2~3m 우측에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춘 채 전방을 함께 주시했다가 폭음에 고막이 파열되기까지 하였으나, 다행히 옆에서 전사한 전우가 폭약을 전부 안아버리는 바람에 얼굴과 온몸이 피투성이만 되고 화상을 조금 입은 것 외에는 다친 곳이 없었다. 내 철모와 전투복에도 죽은 부하의 핏덩이가 튀어와 붙어있었다. 수색도 하기 전에 전사자가 생기니 맥이 빠졌고, 소대원들도 초장부터 사기가 떨어져 어쩔 줄 몰라했다. 전사자의 유품을 정리하고 흩어진 살점을 전부 모았다. 개울에서 판초우의를 깨끗이 씻은 다음 시신을 잘 싸서 놓았다. 그리고 2개 분대를 남겨 후방경계를 시키고, 필요시 예비로 사용토록 복안을 수립했다.

고엽제 살표 중인 항공기[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천연동굴에는 숨지마라. 쉽게 잡힌다

전우가 전사한 직후라 소대장과 선임하사가 앞장서서 끌고 나가지 않으면 소대의 전진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 불과 50여m 전진하는데 30분 이상 걸릴 정도로 신중하기만 했다. 선임하사가 있는 쪽에서 먼저 바위지역에 도착하여 산재한 작은 동굴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전진로 전방에 60mm 박격포사격을 요청하여 수십 발을 터뜨렸지만 나뭇가지에 부딪혀 공중폭발하니 땅굴 속에 숨어있는 적을 잡는데는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수색하는 우리 병사들에게 우군 포탄이 작렬하는 소리는 용기 진작과 불안감 해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선임하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과연 그곳에는 크고 작은 바위덩어리들이 산재해 있었는데 물은 없고 굴과 굴이 서로 연결되어 출입구가 여러 개나 있었다. 출입구를 자세히 보니 덩치 큰 우리 병사들은 들어가기 힘들겠으나 몸집이 작은 적들은 충분히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각 출입구에서 동굴 안에다 대고 총을 몇 발씩 쏘아보았다. 아무 소식이 없었다. 총 몇 발 쏘았다고 쉽게 기어 나올 적들이 아니었다.

정글도로 나뭇가지를 잘라서 그 끝에 백린연막탄과 수류탄을 매어 달았다. 안전핀고리를 부비트랩 제거기에 있는 전화야전선으로 붙들어 매고, 안전핀 끝을 잘 펴서 야전선을 잡아당기면 빠지도록 조정한 후 나무가지를 동굴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백린연막탄, 세열수류탄, 폭풍수류탄의 순으로 동굴안에 밀어넣고 줄을 잡아당겨 터뜨렸다. 어떤 형태의 동굴이건 백린연막탄이 최적이었다. 파편의 효과도 있었고 백린 때문에 가연성 물질이 있으면 불이 붙고, 사람의 신체에 닿으면 지글지글 타기 때문에 사살하지 않고 생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연막 또한 냄새 때문에 그 효과도 컸다. 아무리 지독한 적이 동굴 안에 숨어 있더라도 작은 동굴에서 이런 형태의 수류탄 공격을 받으면 모두 기어 나오게 되어있었다.

동굴 수색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동굴입구가 너무 좁아서 몸집이 가장 작은 병사 두 명을 골라 대검과 플래시만을 휴대시켜 각기 다른 입구로 들여보냈다. 동굴에 들어갈 때는 기어들어 가고 플래시를 위로 비치고 들어가야 한다. 안에서 저항을 할 때는 플래시 불빛을 보고 총을 쏘기 때문에 내 머리위로 총알이 날아오게 즉 상탄으로 유도해야 첫발에 맞지 않는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긴장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잠시 후 동굴 안으로 들어갔던 두 병사가 각기 배낭 하나씩을 들고 나왔다. 동굴의 뚜껑을 여는 경우 바로 총알이 날아오는 경우가 있다. 직사탄에 맞지 않게 자리를 잡고 뚜껑을 열어야 한다.

대소변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는다

내가 처음 있었던 좌측 지역에서도 연락이 왔다. 적이 사용하던 공중변소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산 밑에 둥글고 깊게 변소통을 파고 그 위에 나무를 엮어 대변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나뭇가지로 푹 찔러보니 대변의 깊이가 2m정도나 되었다. 대변이 검푸르게 썩은 것으로 보아 초식을 많이 한 것 같았고, 굵은 고구마 같은 대변덩어리 서너 무더기가 아직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단단한 대변은 그 모양이 그대로 오래 남아 있다가 서서히 변형이 되는데, 아직 대변의 모양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여기에 적이 있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늘 조심해야 한다. 이 지역의 적이 자기들이 배설한 대변으로 우리가 적이 몇 시간 전까지 여기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알아내리라고 생각을 했을까? 이 근처에서 바로 며칠 전까지 수십 명의 적이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며, 우리가 찾고 있는 야전병원임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우전방에 집채만 한 바위 세 개가 있었는데 그 밑에도 큰 자연동굴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바위 밑의 공간은 폭이 2~5m정도이고 길이가 40m정도였다. 측방으로도 굴이 뚫려 있었고, 대나무나 나뭇가지 혹은 덩굴이나 나일론 끈 등으로 엮어서 높은 곳에는 3층까지 침대를 만들어 전체 100여명 정도의 환자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내부시설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 나무로 엮어 만든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의사나 간호원이 있었던 곳으로 추측되었지만 약품이나 의료도구는 동굴 안에서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의사와 간호원은 물론 환자까지 모두 도망가고 의약품 및 의료도구도 다른 곳에 숨겨둔 것이 분명했다.

선임하사가 있는 지역에서 재수색을 하기로 했다. 우리 병사가 꺼내 온 배낭이 백린에 의해 일부가 타버린 것을 보면 좁은 동굴 안에 숨어 있던 적이 배낭으로 자기 앞을 막아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병사가 들어가다가 배낭이 앞을 막으니까 배낭만 잡아당겨 뒤로 기어 엉덩이로부터 빠져나온 것이 분명했다. 동굴에 들어갔던 두 병사에게 기어들어간 방향과 거리를 땅위에서 확인시켜 보았더니 이 작은 동굴이 서로 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간에 상당한 거리만큼이 미처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략 예측한 장소를 위에서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수류탄을 몇 발씩 다시 넣어 터뜨리면서 폭음 소리를 들어봤더니 동굴의 두께도 그리 두껍지 않은 것 같았다. 야전삽으로 파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땅속에서“따이한…따이한”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두 명의 적을 생포하게 되었다. 이 두 포로는 이미 다리 부분에 파편상을 입었고, 그 중 한명은 총상으로 피고름이 흘러나오면서 썩어가고 있었다. 전부 넋이 빠져서 어리벙벙한 바보로 변해 있었고 고막이 폭음과 폭풍에 터져버려 말조차 통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곧바로 중대로 후송시켜 버렸다.

적들은 항생제가 없어 더운 날씨에 총상을 입으면 치료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보급은 대부분 현지에서 조달하다 보니 조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모기나 해충에 대한 대비가 없어 옷을 벗겨보니 모기에 물린 자리가 아예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 새로 전입온 신병들에게 수류탄을 좁은 동굴에 넣는 방법을 실습시키고 실제로 동굴 속에 기어 들어가 실체험훈련을 하도록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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