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4)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처음 부딪힌 월맹 정규군(하)
[연재칼럼](4)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처음 부딪힌 월맹 정규군(하)
  • 박재균
    박재균
  • 승인 2022.01.0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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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시 제반조치를 강구하여 적의 살상지대 내로 들어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아침수색을 재개할 때까지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 분대별로 경계병 2명씩만 현 위치에 대기시키고, 전 소대원을 불러 모아 어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소대전술 토의를 간단히 실시하였다. 실시결과는 반드시 다음 작전에 참고하여 반영시키도록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사이 어제 나와 함께 논을 가로질러 뛰었던 무전병이 논바닥에 내려가서 중공제 방망이수류탄을 들고 왔다.

“이놈이 어제 우리 앞에 떨어진 수류탄인데 안전핀 제거용끈이 잡아당겨져서 없는 것을 보니 불발탄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지간히 재수가 좋아서 이놈이 안 터졌어요.”

그러면서 방망이수류탄 머리 부분을 자신의 머리에 툭툭 쳤다. 우리는 세열수류탄을 그렇게 많이 사용했어도 불발탄을 보지 못했는데 중공제 수류탄은 어찌나 제조과정이 조잡한지 약 20%정도가 불발탄이 발생하는지라 그 덕에 많은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

중대의 장교가 부상당해 후송되었다. 그리고 전사자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출발 전에 중대장님으로부터 적의 저격예측과 철저한 전방확인, 사격통제 및 정밀수색에 대한 각별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주간 수색 시 가장 무서운 것이 적의 저격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가 수색할 지역은 키가 작고 가시가 따가운 관목지대인지라 밀림지역 수색보다는 저격위험성이 훨씬 적은데 반해, 병사들이 조심성 없이 지나가면 나무 덩굴 사이로 설치해 둔 부비트랩에 의해 피해를 볼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소대는 분대별로, 분대는 다시 2~3개 소수인원으로 편성하여 구간전진을 해야 하고, 앞서가는 조는 거의 포복하듯이 나무 밑과 바위틈을 세밀히 확인하면서 전진해야했다. 적은 자연동굴의 이용과 비트식 은거지 구충 능력이 뛰어나서 세부적인 정밀수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나절 동안 많이 전진해야 겨우 2km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수색을 하다보면 20m정도만 전진해도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되고, 500m 정도도 전진하지 못해서 수통의 물이 바닥나므로 물을 마시는 데도 통제를 적절히 해야 했다.

VC(베트콩) 은거 움막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수색 시 자칫 일렬횡대로 서서 전후좌우를 확인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 부대지휘에 용이하여 주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색속도가 빠르고 지휘통제가 용이한 점도 있으나 정밀하지 못하고 한 번의 기습사격으로 동시피해가 많이 발생하는 단점 때문에 적정이 예측되는 지역에서는 채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수색방법은 언제 어디서나 적의 위치 발견이 용이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적정을 살피면서 부대지휘를 할 수 있도록 타수색조로부터 엄호를 받을 수 있는 구간전진을 실시함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때 유의할 점은 충분히 전방을 확인하고, 은폐 엄폐할 수 있는 전진로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전진을 해야 정밀하고도 철저한 수색을 할 수 있으며, 유사시 즉각조치 및 동시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의심나는 곳이나 적의 은폐가 예상되는 지역에는 앞서 전진해 간 조로 하여금 화력수색을 하게 함으로써 적의 응사를 유도하여 적의 위치를 탐지하거나, 저격요소를 사전에 탐지하여 적이 설치한 살상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바위가 산재한 지역에 도착했다. 바로 약 5m 정도 떨어진 맞은편 바위 밑에 한 명의 적이 보였다. 그는 우리가 위쪽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후면에서 올라오는 화기분대 요원 2명을 보면서 바위틈으로 숨었다. 얼핏 보기에 머리가 길었고, 군복색깔은 어제 잡은 적과 같았으며, 신발은 우리 군화가 아니었다.

“저 놈은 적이 아니냐! 쏘지 말고 생포해라!”

내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나보다 조금 위쪽에서 뒤 따라 오던 화기분대 병사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조준사격을 했다.

“땅, 땅, 땅”

말릴 틈도 없이 3발을 순간적으로 쏘았기 때문에 푹 주저앉더니 죽어버리고 말았다.

중대와 대대에서 지시가 왔다. 바위 지역이라는 말을 듣고는 어제의 전투와 연계하여 동굴이나 큰 은거지가 있을 것으로 예측, 야전삽으로 수색지역 일대를 파 가면서 정밀수색을 하라는 것이었다. 현장 감각이 없는 상급부대 지시로 거의 두 시간 정도를 뙤약볕 아래서 시간만 소모했다.

VC(베트콩) 동굴 입구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매 작전 종료 후 필히 전술토의를 하라

오후에 수색작전이 계속되었다. 날씨가 무더운 데다가 나무 그늘마저 없어 가시 많은 나무 밑을 기어 다니기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얼마나 땀이 쏟아지는지 땀 때문에 앞을 잘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큰 면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나무 밑을 전진해 나갔다. 벌떡 일어서서 쏠 테면 쏴보라고 만용도 부리고 싶었지만, 상황이 계속 발생하는 판에 사격을 받아 죽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땀 흘리며 나무 밑을 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다. 소대원이 투덜대는 것을 듣고도 모른 체했다.

“소대장님, 숨이 차고 더위에 쪄서 죽겠습니다.”

“개미들 때문에 못 나가겠습니다.”

“전갈과 거미가 많아요.”

“일어서서 가게 좀 해 주십시오.”

나는 등 뒤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소대장은 너희들 시체 치우고 싶은 생각 없어. 잔소리 말고 밑으로 기어가라!”

이제는 소대원은 고사하고 소대장인 내가 더위와 땀 때문에 질식해 죽을 판이었다. 앞서가던 분대장이 별안간 나를 불렀다.

“소대장님 이리와 보세요. 작은 동굴이 있는데 사람이 방금 들어간 흔적이 있습니다.”

박격포 사격 시 가랑잎이 쌓여 있던 곳이 불에 타서 거의 재가 되었는데, 그 재 위로 사람이 지나간 발자국 크기만큼 나뭇잎 재가 부서져 있었다. 우선 플래시로 동굴을 비춰보니 동굴바닥에는 선명한 흔적은 전혀 없었으나 5m정도 들어가서는 왼쪽으로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 같았다. 분대장이 안에다 대고 몇 번 소리쳤다.

“브이씨, 라이 라이(V, C, 나와라), 베트공 라이 라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우측 손에 대검, 좌측 손에 플래시를 들고 들어갔다. 분대장이 간신히 비비며 약 3m정도 들어가더니 아무 소리 없이 뒤로 나왔다. 왜 나오느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밖으로 완전히 나와서는 이렇게 보고했다.

“3m 정도 들어가서 플래시를 오른손으로 잡고 좌측의 텅 빈 곳을 향해 비췄는데, 몸은 안 보이고 맨발의 발가락 끝만 나란히 있는 것이 보입니다.”

좌로 꺾어진 쪽으로 굴이 길게 이어져 있다면 여러 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적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덤비는 날이면 부하들이 들어가서 다칠 것 같았다. 동굴 안에다 대고 M16 몇 발을 쏘았다. 작은 동굴 속에서 총소리와 실탄 박히는 소리를 듣고 다 포기하고 나오라는 뜻이었다. 전혀 반응이 없었다. 분대장이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겁이 났던지 M16 소총을 갖고 들어갔다. 플래시를 위에서 밑으로 비추어 가면서 들어갔다. 3m정도 들어가더니 분대장이 소리쳤다.

“어이, 브이씨 라이 라이, 기브미 쑹(총을 달라), 라이 라이.”

완전히 월남어, 한국어, 영어가 뒤섞인 국적불명의 말이었다. 이번에는 그 속에 숨어 있던 적이 대답을 했다.

“따이한 ×××.....”

내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한국군 아저씨 나갈 테니 살려 달라’는 소리였다. 그 녀석이 내미는 권총 손잡이를 잡아들고 분대장이 다시 기어 나왔다. 머리와 얼굴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무척이나 긴장했었던가 보다. 우리는 월맹 정규군 제3사단 18연대 통신대장을 생포했다. 그가 휴대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권총 한 정과 실탄 몇 발, 탄띠와 수통뿐이었다. 수통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그 안에는 구역질이 확 나는 오줌이 들어 있었다. 여러 날 쫓기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동굴 속에서 물이 떨어져 오줌을 받아먹으면서 며칠을 버티었으니 비록 적이지만 그의 인내력과 책임감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버텨온 용기가 가상스럽기까지 했다.

굶주림에 지쳐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드러누워 버린 월맹군 18연대 통신대장[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소총중대에는 권총장비가 없어서 동굴수색 시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노획한 중공제 권총을 반납하지 않고 계속 가지고 다니면서 유용하게 사용했다. 석식시간을 이용하여 소대원을 바위동굴 앞에 모아 놓고 주간 수색에 대한 결과를 약 30분 정도 상호 토의를 통해 전술교육을 했다.

우선 적이 비무장일 때, 저항의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사살하지 말고 생포해서 적이 갖고 있는 첩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살생유택이 우리 고유의 화랑도 정신이므로 손을 든 적이라든가 생포할 수 있는 적을 사살하는 것은 아주 비겁하고 졸렬한 행위이다. 비록 적이라 하더라도 같은 군인끼리 그런 짓을 하면 훗날 천벌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수색 시는 통상 적이 우리를 먼저 발견하게 되는데 저격의 표적이 되지 말아야 하고, 설령 발견되더라도 초탄에 쓰러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숨어서 전진하고, 피탄 면적을 줄이기 위해서 자세를 낮추어 행동하도록 주지시켰다. 그러고 나서 수색 시 불평하던 것을 호되게 꾸짖었다.

또한 동굴 수색 시 반드시 안에 들어가 잇는 적으로 하여금 싸우려는 의지를 말살시켜서 스스로 포기하고 저항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쳤다. 이를 위해서 사람이 들어가기 전에 사격이나 수류탄 투척 등을 반드시 해야 한다. 동굴사격 시 상체가 노출되면 적이 먼저 쏘게 되므로 입구 옆쪽에 숨어서 쏘도록 하고, 수류탄 투척 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는 집어던진 수류탄을 적이 다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핀을 뽑고 나서 ‘딱’하고 뇌관을 치는 소리가 난 후 던져야 한다. 이때 조심할 것은 이미 뇌관을 때린 이 수류탄을 멀리 보내기 위해서 팔을 뒤로 했다가 던지면 투척 자 가까이서 공중 폭발하여 다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두 번째는 동시에 두 발 이상을 넣어서는 절대 안 된다. 동굴의 형태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이번처럼 좁고 짧은 동굴의 경우 먼저 터진 수류탄의 폭풍에 의해 다른 수류탄이 동굴 밖으로 튀어나와 폭발하여 동굴 밖에 있는 우군이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똑같은 수류탄이라도 터지는 시간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빛이 완전히 차단된 동굴을 들어갈 때는 나뭇가지에다 플래시를 매어달고, 머리 위쪽이나 옆쪽에서 불을 비추도록 하며, 자세를 바싹 낮추어서 기어 들어가면 적의 사격을 상탄으로 유도할 수 있으며 초탄을 피할 수 있다.

바다로 빠져나가는 적을 발견하고

지난 이틀 동안 소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친 사람 없이 작전을 잘 수행하여 왔다. 소대의 사기도, 소대장에 대한 신뢰도 평상시보다 상당히 높아졌다. 소대는 해안선에서 100여m 떨어진 야산에 매복임무를 부여받아 대대의 맨 좌측 소대로서 해안선과 접하게 되었다. 매복지점을 선정하면서 중대장님이나 나나 야산에서 해안까지 100여m 지역에는 적이 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설사 적이 온다 하더라도 긴 모래사장이라 사전에 쉽게 발견될 것이므로 걱정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지역일대를 이틀간 수색하면서 해안까지 왔기 때문에 도주할 적은 이미 빠져 나갔고, 지역 내에 있어봤자 동굴 내부나 가시덤불 속에 숨어 있는 극소수 적들만이 잔존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대원들에게 잠이나 좀 재우고 쉬게 할 생각으로 산 윗부분에 원형으로 소대를 배치했다. 호 안에서 판초우의를 덮은 채 밤하늘의 별을 세며 고향 생각을 했다. 그날따라 하늘은 유난히 맑고 별빛 또한 선명했으며, 산 위쪽이라 시원한데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닷바람 냄새가 싱싱하기만 했다.

나는 옆에 세워둔 무전기의 ‘치익, 칙' 소리와 산 쪽에서 터지는 우군의 포탄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했다. 밤 12시 경으로 기억된다. 내 호 옆에서 근무하던 전령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소대장님, 소대장님.”

중대장님의 호출이 있거나 적이 나타나는 상황이 아니면 잘 깨우지 않는데, 내 팔을 흔들면서 부르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벌떡 일어나 전령이 내주는 야간조준경을 받아들고 그가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해안으로 40~50m 거리의 바닷물 속으로 사람 머리 같은 검은 물체 30여 개가 하나의 군을 이루어 이동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포위권을 빠져 나가기 위한 적들이 분명했다.

바닷가로부터 약 50m 정도 떨어져서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의 배치된 선을 지나면 포위권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낮에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몇 명의 병사와 함께 바닷가까지 가서 옷을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가 땀에 찌든 정글복을 문질러 빨기도 했고, 시원한 바닷물을 철모로 떠서 뒤집어쓰고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불과 10여m 정도 들어가 보았으나 경사가 아주 완만하고 모래가 비교적 단단하여 걸어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완만한 경사가 얼마나 계속 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50m정도 떨어진 물속이라면 무릎으로 기어서 오는 것이 분명했다. 중대장님께 보고를 드리니 지금까지 바닷물 속으로 빠져나가는 적을 본 일이 없다시며 지금 중대장이 있는 곳에서는 멀어서 관측이 되지 않으니 혹시 부유물인지 재확인하고, 사람일 경우 적이 분명하니 사격을 하라고 지시를 하셨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야간조준경이 장착된 소총은 두 정 뿐이었고 또 이것을 가지고 밤중에 300m 정도 떨어진 곳의 작은 머리들을 명중시킨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총소리가 나면 산 위에서 쏘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으면 조준을 할 수 없고, 소대가 집중사격을 한다 하더라도 병사들은 표적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사격을 한들 쓸데없이 실탄 낭비만 하는 꼴이 되고 말 뿐이었다.

적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난감하기만 했다. 현 위치에서 사격의 곤란함을 보고 드리니 중대장님께서도 중대본부 지역에서는 전혀 표적이 보이지 않아 박격포와 포병사격을 할 수 없고, 헬기에 의한 공격도 불가능하니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하셨다.

소대장으로 눈앞의 적을 보고 모른 체 할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1개 분대 규모의 병력과 기관총 한 정을 갖고 내려가 해안에 바싹 붙어서 일격에 기습사격을 하겠다고 건의했다. 자신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승낙하셨다. 나와 함께 있는 1개 분대 병력을 데리고 기관총 한 정과 수류탄 및 다른 분대에서 포대에 싼 실탄 몇 두름을 받아서 산 반대쪽으로 내려가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모래사장 지역에 도달하니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냇물이 있어서 지형이 낮았다. 상체만 숙이면 적에게 발견되지 않을 수 있었다.

부지런히 물가까지 도착하여 모래를 대충 밀어서 사대(射臺)를 만들고, 기관총을 거치하는 등 사격준비를 하면서 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았다. 산 위에 있는 소대 선임하사의 보고에 의하면 적은 우리가 내려간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똑같은 속도와 대형으로 같은 방향을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선임하사는 보인다는데 아래까지 내려온 내 눈에는 아무리 보아도 보이질 않았다. 내려오는 도중에 조준경이 고장 났나 싶어 우리가 있던 산 쪽을 다시 보니 아주 선명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그런데 적은 보이질 않으니 이게 도대체 웬일일까? 바닷물은 철썩 철썩 소리를 내면서 해변 가에 흰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데 적이 안 보이니 이건 완전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다른 방법법이 없었다. 이리 되는 저리 되든 기다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르고 소대장만 믿고 있는 대원들은 엎드린 채 모래를 철모와 손으로 긁어 순식간에 개인호를 소리 없이 다 만들다시피 했다.

고국 학생 위문단 방문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잠시 시간이 흘렀다. 중대에서 쓸데없이 자꾸 무전기로 이것저것 물어오길래 무전기도 꺼버렸다. 드디어 어떤 물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격준비를 시키고 집중사격을 가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배치된 곳의 정면 50m 정도 거리에 왔을 때 사격개시 명령을 내렸다.

“땅 땅 땅… 따르륵…”

수류탄을 집어서 힘껏 던졌다. 터지면서 불기둥이 튀어 올랐다. 시커먼 물체가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정신없이 쏘았다. 중대에서 띄워준 60mm 박격포 조명탄이 바로 머리 위에서 터졌고, 사격지대는 대낮처럼 밝았다. 적의 저항이 없어 사격을 중지시키고 상체를 들어 바다 위를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흔들흔들 출렁대는 물결 사이로 시커먼 물체가 대 여섯 개가 보일 뿐 30여 개의 머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시체가 떠내려갈지 몰라 잠시 후 일렬횡대로 전개하여 사격하면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여섯 구의 시체, 물속에 버려진 AK소총 몇 정과 수류탄, 비닐에 싼 작은 보따리들을 끌고 나왔다.

상황보고를 받으신 중대장님께서 다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니 현 위치에서 야간매복을 계속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중대장님과의 교신을 들은 선임하사는 우리가 소모한 실탄과 수류탄을 보충해 주기 위해 자기들이 휴대한 것 중에서 조금씩 거둬서 보내왔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서 끈끈하게 전우애가 깊어진다고 생각되었다. 그날 밤은 더 이상의 적 출현 없이 시체가 썩어가는 쾌쾌한 냄새와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보냈다.

FDC 제원은 정확한가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적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나는 이번 작전에서 비록 적이지만 그들로부터 몇 가지 새로운 전투교훈을 체득할 수 있었다.

첫째, 적은 해안에서 50m 정도 밖으로 이격해서 이동을 했다. 50m 라고 하는 거리는 수류탄의 사정거리를 벗어난 지역이다. 적의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서 물에 들어가 보니, 50m 거리 정도에서 바닷물은 무릎 조금 위에까지 찼다. 대략 1m 정도의 깊이였다. 수십 km의 긴 해안선이었지만 변화나 굴곡이 거의 없었고, 물 밑바닥도 평탄해서 별 위험 없이 물속에서 마음 놓고 움직일 수가 있었다.

우리 병사들이 수류탄을 던지면 대부분 40m 전후에서 떨어지니 50m 만 이격되면 수류탄 투척거리 밖으로서 적을 잡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수류탄이 물속에서 폭발하면 그 파편의 살상반경은 1m 도 되지 않으므로 웅덩이나 우물 같은 좁은 곳에서는 폭음 효과가 크지만, 바다에서는 물기둥만 조금 튀어 오를 뿐 폭음효과나 파편효과가 거의 없다.

바다에는 미군 경비정이 차단하고 있었으나 해안에서 2~4km 밖에 있었고, 더구나 그 배는 수심이 3m 이상 되지 않으면 다니지도 못했다. 경비정과 해안가 배치부대의 공간을 이용하여 포위권을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영리한 놈들이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급조진지를 파고 실제 사격을 하려고 조준하여 보니 바닷물이 출렁거려 적의 머리가 보였다가 안 보이고 안 보였다가 다시 보였으므로 코앞에 두고도 조준사격을 할 수가 없었다. 사격을 하더라도 실탄이 물속으로 박히는 것이 아니라 튀어서 물 위로 비상해 버렸다. 

처음 기습 사격 시 빨리 뛰어가려고 벌떡 일어난 겁 많은 적들만 쓰러지고, 물에 드러누워서 배영형태로 코만 물위로 내 놓고 침착하게 뒷걸음질 쳐서 달아난 적은 그대로 빠져나갔던 것이다. 야간조명 하에서도 적의 코는 명중시킬 수가 없었고, 설사 맞았다 하더라도 죽지는 않는다. 더구나 적들은 대나무를 교묘히 구부려 만든 스노클(Snorkel)을 휴대하고 다니다가 위험이 닥치면 물속에 교묘하게 숨어버리곤 했다. 우리는 그것을 대나무빨대라고 불렀다. 내 앞의 적도 상당한 인원이 그 스노클을 물고 기습사격을 피해 살상지역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처음 적의 머리를 약 30여개 정도 발견했는데 실제 대나무 빨래들 이용한 적들까지 포함하면 50~60여명은 족히 되니, 우리가 며칠씩 찾아 헤매던 적의 주력을 포착하였으나 바다에 대한 예측이 없어 계획과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대부분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미 해군의 책임지역인 바다와 보병부대의 책임구역인 육지 사이에 있는 취약지역, 즉 경비정도 접근하지 못하고 보병부대의 사격거리를 벗어난 곳을 이용하여 빠져나가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 당시 육군 중위의 전술지식과 경험이 적 지휘관의 영리한 꾀를 능가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모래사장에서의 사격이다. 처음 해변 가에 도착하여 급조된 호를 파면서 모래로 간단한 둔덕을 만들어 사대 대용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사격 시 총의 흔들림을 방지하고 정확한 야간고정사격을 위해 모래위에 총을 놓고 손으로 위에서 누르면서 사격한 사람은 몇 발 쏘지도 못했다. 모래가 소총의 활동부분으로 들어가 노리쇠가 콱 박혀버려서 약 1/3에 해당하는 인원의 소총에 기능고장이 발생하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기관총은 양각대를 이용하여 견착 사격을 했기 때문에 활동부분과 모래 사이에 간격이 있어 기능고장이 발생하지 않았고, 소총을 손 위에 올려놓고 쏜 병사도 이상이 없었다. 반드시 실전과 교육훈련에 참고해야 한다고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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