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3)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처음 부딪힌 월맹 정규군(상)
[연재칼럼](3) 서경석 장군의 "전투감각(Feel for Combat)" : 처음 부딪힌 월맹 정규군(상)
  • 박재균
    박재균
  • 승인 2022.01.04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소한 전술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 파이낸스 투데이는 월남전의 영웅 서경석 장군(예비역 중장)의 승락 하에 저서 '전투 감각(Feel for Combat)'을 연재합니다. '전투감각'은 월남전 파병 당시 소대장, 중대장 시절의 전투 현장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한 서경석 장군의 역작으로, 현재까지 초급장교의 전투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명저입니다. 월남전 파병 장병의 고뇌와 어려움, 전투 현장의 숨막혔던 순간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파병 애국 용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격려하자는 파이낸스 투데이의 취지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 서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하신 애국 장병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사진 자료를 제공해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 감사하며, 참전자회에 독자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젖바위산’은 우리 중대가 위치한 지역 내에서 가장 높은 고지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물이 많고 밀림이 우거지고 천연동굴이 산재해 있어 게릴라들이 은신하면서 생활하기에 편리했다. 산 주위의 주민이 비교적 부농이라 식량 및 의료품 조달이 용이하였고, 교통망 또한 남북을 잇는 1번 국도와 남지나해가 접해 있는 등 게릴라들에게는 비교적 유리한 지형이었기 때문에 이 산에는 월맹정규군 3사단 야전병원이 있을 정도로 적이 많았다. 그리고 총 둘레가 약 60km나 될 정도로 큰 산이었으며 특히 산속에는 폭이 평균 1~1.5km, 길이가 10km나 되는 긴 계곡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월남에 진주해 있던 일본군이 철수하자 프랑스군이 자기들의 식민지였다는 명분으로 재진주하면서 월남의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프랑스 정규군 1개 대대가 이 계곡에서 전멸한 바 있다. 그 이후 이 계곡을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러왔으며 우리는 이 계곡을 지날 때마다 그 당시 한 맺힌 원귀들이 혹시 우리를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곤 했다.

또한 이 산의 하단부에서 바다와 접한 지역까지는 평야지대가 수십km 펼쳐져 있었는데 이 평야를 ‘고보이 평야’라 불렀다. 바로 이 젖바위산과 죽음의 계곡, 고보이 평야에서 나는 월남 소대장 시절을 보냈고,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상당한 전과도 올렸으며 많은 피도 흘렸다.

 

와지선에 바싹 붙어라

(와지선; 밭이나 논같은 개활지와 산의 최 하단부가 만나는 선을 연결한 선)

우리 1연대 2대대 6중대가 헬기로 착륙한 곳은 평평한 논바닥이었다. 이곳은 밭과 논이 해안선까지 펼쳐져 있는 평야지대로서 뒤로는 60여 호의 농가가 있었다. 비교적 부유한 농민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 평화로운 풍경이었는데, 개들이 우리를 보고 전부 짖어대는 통에 동네와 그 지역일대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중대장님께서 앞쪽의 야산을 가리키며, 저 야산에 월맹정규군 3사단 18연대 3대대가 은거해 있으므로 수색을 한다고 일러 주셨다. 큰 야자수가 여러 그루 모여 있는 밭 한가운데에서 중대장님이 소대장들과 마주 앉아 작전회의를 주관하시며 걱정을 하셨다.

“저 야산에 무슨 적이 있겠나, 틀림없이 또 허탕치고 고생만 하는 것이 아닐까?”

소대장인 나도 적들이 정신 나가지 않은 이상 저런 야산에 대대규모의 병력을 데리고 은거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선 물이 한 방울도 없으니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큰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관목 지대로 뜨거운 염천에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무는 질기고 온통 단단한 가시투성이어서 도저히 사람 지낼 곳이 못되었고, 전술적으로 보아도 게릴라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숨을 곳이 전혀 없었다. 저런 곳에 대대병력이 은거하고 있다면 그 부대를 지휘하는 우두머리는 틀림없이 우둔할 것이므로 큰 어려움 없이 적을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대장님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소대원이 기다리는 집결지로 돌아왔다.

중대의 좌측은 1소대, 중앙이 3소대, 우측이 우리였다. 3소대장 서 소위가 전투경험이 가장 많아서 중앙의 기준소대를 맡았다. 배낭은 일단 현 위치에 전부 벗어 놓고 소대원들에게 목표와 분대별 진로를 정해주었다. 그리고 야산수색을 어느 정도 마친 후에 배낭을 옮기기로 했다.

단독군장에 수류탄은 개인당 두 발씩 휴대했다. 기관총은 현 위치에서 소대의 전진을 엄호하다가 소대가 개활지를 통과해 와지선에 도달하면 소대장 지시에 의해 전방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개활지는 위험하니 논둑과 물고랑을 이용, 분대별 각개약진을 하면서 와지선에 신속하게 달라붙으라고 명령했다.

1972년 5월 30일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1970년 5월 30일 청와대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논과 산이 맞닿은 와지선은 소대의 공격개시선에서 약 400m거리에 있었다. 와지선은 우리 키 정도의 낮은 절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군데군데 대나무들이 작은 군(群)을 형성하고 있었다. 개활지만 무사히 통과하여 와지선에 도달하기만 하면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쌍안경으로 와지선 일대를 따라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적의 진지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소대장, 중대장을 하면서 공격중이거나 수색 시에는 하얀 비닐에 싼 지도를 절대 꺼내 보지 않았다. 전장에서 흰색은 저격수의 표적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철모나 옷에도 계급장을 달지 않았다. 역시 근거리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계급장이나 견장을 달지 않은 채 작전 지역을 돌아다녀도 뭐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77 무전기의 짧은 안테나도 달지 않았으며, 달았다 하더라도 꾸부려서 무전기 뒤쪽으로 묶어버렸다.

지극히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로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예리한 예측과 판단을 해야 하고, 예측되는 상황에 아주 적절한 조치를 사전에 미리 해야 한다. 일이 터지고 나서 생각하면 이미 때는 늦는다. 공격개시선에 소대원을 전개시켜 놓고 중대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공격개시선이래야 훤히 다 보이는 논둑에 불과했다. 그 위에 쭉 엎드려 있거나, 벌렁 누워서 하늘을 보거나 , 뒤쪽에 있는 마을을 바라보면서 기다렸다.

아마도 다른 중대의 포위권 형성이 늦어지는 모양이었다. 헬기가 대대로 전부 이동했기 때문에 중대별로 도착 시간이 달라서 먼저 도착한 우리 중대는 한참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공격한다는 실감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적이라고는 한 놈도 보이지 않는데 공격한다는 자체가 우습기도 하고, 더구나 개가 짖는 이 평온한 동네에 전투 분위기는 전혀 걸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족히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렸나 보다. 소대원들 사이에 ‘뭐, 이러냐’고 투덜대고, 오줌 누러 돌아다니고, 벗어둔 배낭에서 깡통을 꺼내다가 까먹는 병사도 있었다. 끼리끼리 엎드리거나 누워서 담배 피우며 잡담하고, 씨름도 하고, 깽깽이도 하고 도대체 공격개시선의 전장군기와는 거리가 먼 비전술적인 행동이 속출했다. 그렇게 엄격하신 중대장님도 김이 빠지신 것 같았다.

 

사소한 전술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드디어 공격개시 명령이 하달되었다.

3소대가 먼저 앞으로 나갔다. 마치 시골길을 걷던 사람들이 수박이나 참외 원두막에서 쉬었다가 그냥 ‘자, 갑시다’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걸어가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좌측의 1소대도 보니 마찬가지였다. 중대본부 요원들은 우리가 공격하는 동안 야자수 밑에 위치해 있었는데, 곧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호도 파지 않은 채 나무 밑에 무전기를 기대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나는 3소대가 100m이상 전진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방정맞은 중대교육계가 안 나간다고 성화였고, 중대장님도 큰소리로 “서 중위, 안 가나!”하고 다그치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소대원들에게 논둑과 물도랑을 이용하여 분대별로 신속하게 와지선까지 뛰라고 지시하고, 나 역시 무전병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내가 와지선까지 50~60m정도까지 뛰어왔을 때, 3소대 쪽에서 적이 쏘는 자동화기 소리가 “따다딱․․․ 따다딱․․․”하고 들려왔다.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던 3소대장과 무전병 등 3~4명이 논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 나는 논둑을 은폐물로 하여 엎드린 채 전방을 주시했다.

총소리가 나자 중대원 가운데 움직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 논둑을 이용해서 엎드려 버렸다. 이러다간 조준사격을 당할 판이었다. 중대장님도 별안간 닥친 일이라 그런지, 아무 말이 없으셨다.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소대원들에게 “빨리 와지선에 붙어라!”하고 소리 지른 뒤 무전병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면서 뛰어갔다. 좌측에서 “따르르․․․따르르”하면서 연발사격이 날아왔다. 귀 옆으로 실탄이 “피이”하면서 지나갔고, 우리 병사들이 뛰어나가는 좌우측에 실탄이 박혔다.

순간적으로 이것은 기관총의 묵직한 사격소리가 아니라 AK 소총을 자동으로 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방망이 수류탄 한 발이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붕 떠서 날아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바로 우측에 흐르는 물도랑에 몸을 내던지고 머리를 처박았다. 숨을 쉬지 말아야 했는데 어찌나 급했던지 그걸 잊어버렸다. 코와 입으로 도랑물이 들어왔다. 갑자기 물을 들이키게 되자 컬럭 컬럭거리고 숨이 차서 고개를 다시 들었다.

좌우측 분대장들이 대원들을 이끌고 이미 와지선에 붙어서 산 쪽으로 사격을 하고, 수류탄을 던지고, 전투를 벌이면서 “소대장님! 빨리, 빨리 뛰십시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무전병과 함께 정신없이 와지선까지 뛰어갔다.

노출된 공격개시선에서 소대장들은 일거수일투족을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전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든지, 지도를 들고 전방을 확인한다든지, 무전병을 옆에 데리고 다니면서 송수신하는 일련의 행위는 모두 적에게 포착된다.

적의 저격수는 지휘자를 표적으로 하기 마련이다.

적들이 숲속에서 조준한 채로 우리가 접근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소대가 적의 기습사격에 피해를 받지 않았던 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우리는 분대전투나 각개전투 시간에 배운 그대로 논둑과 도랑을 이용하여 분대별 내지 각개약진으로 뛰어갔기 때문에 적이 정조준해서 사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기 전면으로 뛰어오는 우리를 보자 적들은 당황한 나머지 연발 사격을 할 수밖에 없었고, 사격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50m정도의 근거리였지만 명중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고보이 평야를 누비는 맹호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전투는 평시 훈련한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며 다만 실제 적과 부딪치는 것만이 훈련과 다를 뿐이다.

1~2m의 얕은 절벽이었지만 산 쪽이 보이지 않았다. 분대장들은 튼튼한 병사들을 골라 벽 쪽에 바싹 붙어 서게 하고는 어깨 위에 발을 딛고 올라서서 안쪽을 바라보면서 사격했다. 전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상황에 아주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나도 전령의 어깨에 올라서서 전방을 관측했다. 약 30m전방에 있는 나무사이로 넓적하고 시커먼 바위가 하나 보였는데 검은 머리가 슬그머니 올라오면서 AK 소총을 바위 위쪽으로 올려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놈은 내 부하가 아니다.’

M16소총을 나뭇가지에 거치한 다음, 턱 밑의 목을 조준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땅” 총소리와 함께 실탄이 사람의 살을 꿰뚫으면서 내는 반사음이 “퍽” 하고 들려왔다. 맞은 것은 분명한데 바위 뒤로 미끄러져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소대원들이 하나, 둘 절벽을 기어올라 산으로 전개하면서 지역수색이 시작되었다.

바위 뒤쪽에는 우측 턱 밑을 맞고 귀 뒤쪽으로 실탄이 관통해버린 적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시체는 체온도 식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날 한나절은 더 이상의 전진이 없이 해가 저물었다. 우리는 곧이어 야간매복을 준비했다.

낮에 있었던 전투에서 나와 파월동기인 인접 8중대의 박 중위가 적의 저격사격으로 허리를 다쳐 후송되었고, 3소대장 서 소위는 좌측 어깨에 AK 3발을 맞아 어깨뼈가 부서지고 출혈도 많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주간전투로 수류탄과 실탄이 많이 소모되어 저녁 해가 질 무렵에 탄약과 수류탄, 식량 등을 진지로 옮겼고, 다른 사람은 크레모아를 설치하고 호를 파면서 야간작전에 필요한 제반조취를 취했다.

월광상태가 좋았고 관목지대라 밤에 사람이 움직이면 나무 꺾어지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조명지뢰는 일체 설치하지 못하게 하고, 야간조준경 운영요원을 다시 임명하고 관측구역을 중복해서 설정해 주었다.

소대원들이 다 나르지 못한 보급품 중 식량만 논바닥 가운데 쌓아 놓고, 수류탄 2상자는 너무 무겁고 거의 어두워진 뒤라서 미처 분배하지 못해 소대장호 옆에 그냥 놔두었다.

중대본부는 그대로 개활지 야자수 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후에 적과의 교전으로 인해 대대 전체가 포위권 형성을 완료하지 못한 채 중대와 중대 사이에 많은 공간이 있는 상태에서 야간 작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자! 힘차게 베트공 소굴로 [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적 재출현. 적은 아군의 배치 공간을 노린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전투현장을 무심히 구경하는 사람들의 꼴은 그때 처음 보았다. 우리가 오후에 싸우는 동안 동네 사람들, 특히 꼬마들이 밭둑에 엎드려서 그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별의별 일들이 많이 있다지만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독 월남에만 있었던 웃지 못 할 일들이 아닌가 싶었다.

매복준비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산 안쪽으로 달아난 적들이 주간에 우리 대대의 활동을 전부 관측할 수 있었으므로 중대와 중대 사이의 매복공백을 이용하여 탈출할 것 같았다.

나는 적이 죽었던 바위 바로 밑에 호를 파서 소대 본부로 정하고, 2개 분대는 우리가 최초로 전투했던 와지선 부분에 배치하여 적들이 낮은 절벽에 바싹 붙어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또한 와지선 하단부에는 크레모아를 막대기에 매달아 대나무에 묶어서 나무 위로부터 아래쪽으로 크레모아 공격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호 앞에 수류탄 상자를 전부 뜯어서 던질 준비를 해 놓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무전병을 근무 대기시켜 놓고 중대본부와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무전기 소리가 가물가물하게 들리는 가운데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우측에 있는 분대장과 이상 유무 확인을 위해 발목에 매어 놓은 확인 줄에 적 출현 신호가 왔다. 벌떡 일어나 무전병을 쳐다보니 내 입을 막으면서 야간조준경을 건네주며 방향을 가리켰다. 야간조준경의 희끗희끗한 가는 미립자 선이 좌우로 움직이는 그 속에 적의 움직임이 보였다. 산 위쪽으로부터 와지선에 바싹 붙어 내려오면서 몇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그대로 쌓아 놓은 전투식량(C-RATION)을 한 상자씩 들고, 다시 와지선 절벽 부분으로 돌아와 와지선을 따라 살금살금 빠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 중대가 있는 곳에서부터 산 위쪽으로는 5, 7중대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우리 중대보다도 뒤늦게 이곳에 도착하여 충분히 포위권 형성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중대 간 또는 소대 간 간격이 생기자 그 사이로 빠져나온 적들이 분명했다. 우리가 산악지역에 투입되니까 인접 마을지역으로 이동하거나 해안을 이용해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려고 이동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너무 근거리여서 중대장님께 상황보고조차 할 수 없었다. 바위 뒤의 화기분대장을 바라보니 이미 기관총 사격준비를 완료하고 명령만 떨어지면 그대로 쏴댈 자세였다.

수류탄을 집어 들고 안전핀을 뽑았다.

나는 산 위쪽에 있었고 적은 바로 발아래 절벽을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개략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야간에 행동을 한다면 속도가 주간보다 느릴 것이 틀림없으므로 우리가 설정한 살상지대 내에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사격명령을 내렸다. 분대장에게 대나무에 설치한 크레모아를 누르라고 지시하니 순식간에 7~8발의 크레모아가 동시에 터졌다.

“꽝 꽝 꽝․․․” 수타식 조명탄이 “쉬이익”떠올랐다. 적이 내려오는 쪽에다 대고 정신없이 수류탄을 집어 던졌다. 바로 좌측 뒤의 기관총이 “따르륵, 따르륵” 불을 뿜기 시작했고 절벽 위에 배치된 대원들에 의해 수류탄공격이 계속되었다.

60mm 조명탄이 중대본부에서 “퍽․․․퍽” 올라오면서 천지가 대낮보다 더 환했고, 폭음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다. 적은 앞뒤 머리 위에서 수류탄과 크레모아가 터지자, 우리가 낮에 혼이 났던 논바닥으로 10여 명이 뛰어 달아났다.

기관총과 M16 소총 그리고 M79 유탄발사기를 신나게 쏘아댔다. 중대본부에서도 달아는 적을 발견하고 사격을 해대니, 적은 뒤쪽과 우측방 양쪽에서 동시에 사격을 당하는 꼴이 되었다.

조명만으로 보아도 시커먼 적들이 논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때 중대본부의 전령이 아래쪽 절벽에다 대고 쏜 66mm 로켓포가 상탄이 나서 내가 있는 호 2m정도 우측 아래에서 폭발했다. 그러나 나는 경사진 위쪽에 있었기 때문에 파편은 흙에 파묻혀버렸으며 나는 무사할 수 있었다.

강변좌우 협공을 유의하라(약진14호)[사진: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제공]

하마터면 무전병과 함께 아군이 쏜 로켓포에 의해 폭사당할 뻔했다. 어지간히 쏘아대고 나서 사격중지 명령을 내리고 중대장님께 보고 후, 개활지와 절벽 아래에 대한 수색을 실시하면서 확인사살을 했다. 상당한 인원은 바다 쪽으로 도주했으나 월맹정규군 1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아침에 어둠이 가신 후, 나는 소대원들을 데리고 적이 쓰러져 있는 지역에 대한 정밀수색과 전리품 정리를 위해 수색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논 가운데 반쯤 왔을 때였다. 약 100m전방에 파인애플과 선인장이 몇 그루 있는 곳에서 월맹군 한명이 소총 끝에 피 묻은 하얀 천을 매달아 흔들면서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따이한, 따이한!”

긴장은 되었지만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총을 쏘지 말고 생포하라!”

동작 빠른 병사들이 어느새 후다닥 뛰어서 논둑에 엎드렸다. 쓰러진 채 우리를 쳐다보는 적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주위를 돌아보니, M79 유탄발사기 파편에 머리통이 벌집이 된 2명의 적이 더 쓰러져 있었다.

아직 생명이 붙어있는 이 친구는 상의와 속내의를 벗어서 소총 끝에 매달아 흔들면서, 다른 손으로 기관총에 맞아 다 부서진 우측 엉덩이 부분과 장단지의 총 맞은 자리를 틀어막아 지혈을 시키고 있었다. 구급법 교육을 제대로 받아 응급처리를 잘해서 그나마 목숨이 붙어있었지 도저히 살아있을 상처가 아니었으며, 눈동자나 얼굴색은 이미 변해버린 상태였다. 수색이 전개되자 오로지 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우리를 부른 것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상처 때문에 겪는 고통이 애처롭기에 고이 잠들게 했다.

M79 유탄발사기에 의해 사살된 적, 우리는 적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고개 숙여 명복을 빌었다. [사진:서경석 장군 제공]

시체 15구를 한군데 모아 놓고 M16소총을 착검시켜 논바닥에 거꾸로 박고 철모를 얹은 채, 잠시 고개 숙여 적의 영혼을 위해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풀을 베어다가 대충대충 덮어준 뒤, 나머지 전리품은 중대본부에 인계하고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내 호로 돌아왔다.

전날 논바닥에 쌓아 놓았던 C-레이션과 물 백을 운반해 보니 전부 터져서 물을 하나도 없었고, 깡통은 수류탄과 M79 유탄발사기 파편에 맞아 스프나 국물은 사라지고 건더기만 남아있었다. 음식물을 한곳에 털어 놓고 파편을 골라내 가면서 주워 먹고, 물은 중대본부와 화기소대의 것을 가져다 마셨다. 소대원들은 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너도 나도 잘 했다고 전투 상황에 대해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날이 어두워져서 전부 분배하지 못하고 소대장호에 보관해둔 수류탄이 고마울 정도로 유용하게 쓰였다. 일이 잘 풀리려면 잘못된 조치도 유리하게 전개되는 모양이다.

<계속>

 

후원하기

Fn투데이는 여러분의 후원금을 귀하게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파이낸스투데이
  •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사임당로 39
  • 등록번호 : 서울 아 00570 법인명 : (주)메이벅스 사업자등록번호 : 214-88-86677
  • 등록일 : 2008-05-01
  • 발행일 : 2008-05-01
  • 발행(편집)인 : 인세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인수
  • 본사긴급 연락처 : 02-583-8333 / 010-3797-3464
  • 법률고문: 유병두 변호사 (前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서울중앙지검 ,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 파이낸스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파이낸스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1@fntoday.co.kr
ND소프트 인신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