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정월 대보름날의 추억
[전정희 칼럼] 정월 대보름날의 추억
  • 전정희 소설가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21.02.2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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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은 한국의 전통 명절로 음력 1월 15일을 의미한다. 즉 설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로 우리 조상들은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지냈던 명절이었다. 옛날에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축제일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보름에는 오곡밥, 약밥, 귀밝이술, 김과 취나물 같은 묵은 나물 및 제철 생선 등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소원을 빈다. 지역별, 마을별로 제사를 지내는 곳도 있다. 또 정월 대보름에는 한 해의 계획을 세웠는데, 이 과정에서 한 해의 운수를 점치기도 하였다.

삼국유사 기이 제 1편에는 정월 대보름의 기원과 관련된 사금갑(射琴匣)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신라 시대, 임금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에 천천정(天泉亭)으로 행차하기 위해 궁을 나섰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쥐는 사람의 말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임금은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다. 신하가 까마귀를 따라가다가 어느 연못에 이르자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신하는 돼지 싸움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그런데 잠시 후 연못에서 노인이 나와서 신하에게 편지 봉투를 주고는 말했다.

“그 봉투 안의 글을 읽으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신하는 궁에 돌아와 임금에게 편지 봉투를 주면서 연못의 노인이 한 말을 전했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편지를 읽지 않으려 했는데 옆에 있던 일관이 말하였다.

“전하,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은 전하를 말하는 것이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일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은 편지를 꺼내서 읽어 보았다.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射琴匣(사금갑: 거문고 갑을 쏘시오)’

임금은 곧 거문고 갑을 활로 쏜 다음 열어 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숨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왕비와 어떤 중이었는데, 중이 왕비와 한통속이 되어 임금을 해치려 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해서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으며 이후 찰밥이 발전해 약밥이 되었다.

대보름 전날 밤에는 아이들이 집집마다 밥을 얻으러 다녔다. 또한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믿었기 때문에 잠을 참으며 날을 샜다. 잠을 참지 못하고 자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몰래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 놀리기도 했다.

필자도 대보름날 아침에 일어나 부럼을 깼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전날 피땅콩이나 호두 등을 미리 준비해 머리맡에 놓아주셨다. 우리 형제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럼을 깨서 먹으며 한 해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빌었다. 이를 ‘부럼깨기’라 하는데 사실 견과류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고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고, 적은 양으로도 높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기에 날을 정해 먹는 풍습을 만들어 건강을 지키려 했던 옛어른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 대보름 하면 생각나는 것 중에 남에게 더위를 파는 풍속인 ‘더위 팔기’가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친구나 이웃을 찾아가 먼저 이름을 부르는데, 이름을 불린 사람이 무심코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라고 외친다. 그러면 이름을 부른 사람의 더위가 대답한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다. 반대로 더위를 팔려는 것을 눈치채고 대답 대신 “내 더위 사가라”라고 먼저 외치면 이름을 부른 사람이 오히려 더위를 사게 된다. 옛날에는 감당 못할 정도로 더위를 많이 산 사람이 엉엉 울다가 그 더위를 키우던 똥개에게 팔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져 온다. 지금도 대보름날 아침에 더위를 팔기 위해 서로 눈치를 보며 즐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보름 음식으로 가장 손꼽히는 것은 오곡밥과 나물이다. 견과류와 마찬가지로 갖은 나물들도 사실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다. 대보름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해서 많이 먹는 것은 곧이어 다가올 농사철에 대비하여 영양을 보충하자는 뜻도 있었다.

오곡밥(찰밥)은 찹쌀, 기장, 수수, 서리태, 붉은팥을 섞어 밥을 짓는데, 이는 가을 추수 때 가장 잘 자라던 곡식들을 모아 한 밥공기에 담으며 풍년을 기원하는 풍습이다. 그리고 나물은 대부분 건나물을 썼는데 박, 버섯, 콩, 순무, 무잎, 오이, 가지 등을 만들어 먹었다.

또 이른 아침에 부럼을 깨는 것과 동시에 귀밝이술(이명주)을 마시는 관습도 있다. 귀밝이술은 이름처럼 귀가 밝아지고 귓병을 막아주며 1년간 좋은 소식만을 듣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주기 위한 술이다. 그 외에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팥죽을 먹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 놀이로는 다리를 밟아 밟은 사람의 다리가 튼튼해지는 다리밟기가 있다. 특히 밤에 다리를 밟으면 다리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또 초저녁에 보름달이 떴을 때 소원을 비는 달맞이, 대보름날 달이 뜰 때 모아놓은 짚단과 생소나무 가지를 묶어서 무더기로 쌓아올린 달집태우기가 있다. 달집태우기는 달집을 세운 다음, 불에 태우고 놀며 풍년을 기원한다. 복토를 훔치기도 했는데 부잣집이나 번화가의 흙을 가져다가 자기 집의 부뚜막에 발라 한 해 동안 생업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풍속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쥐불놀이도 생각난다. 평소 불장난을 하면 혼이 났지만 이날은 풍속이라는 핑계로 동네 아이들이 공식적으로 불장난을 할 수 있었기에 함께 몰려다니며 들판에서 쥐불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집집마다 돌며 밥과 반찬을 얻어다가 함께 모두 넣고 비빔밥을 해 먹었던 기억도 새록새록난다. 반찬이 맛있기도 했지만, 어울려서 먹어서인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꿀맛이었다. 돌이켜보면 바로 엊그제 일만 같은데 벌써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올해도 보름날 둥근 달이 떠오르면 두 손 모아 새해 소망을 빌어야겠다.

 

소설가 전정희 / 저서 '묵호댁' '하얀민들레' '두메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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