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칼럼]공포의 기억을 되살린 탄소중립 흑백TV쇼
[박한명 칼럼]공포의 기억을 되살린 탄소중립 흑백TV쇼
  • 박한명
    박한명
  • 승인 2020.12.1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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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의도를 빗나간 실패한 정치쇼

[글=박한명 파이낸스투데이 논설주간]지난 주 문재인 대통령의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 선언’ 생중계 연설 장면이 KBS 방송에서 흑백 화면으로 흘러나오자 많은 시청자들은 의아했다. ‘방송사고인가?’ “대통령 표정이 왜 저래?” 그도 그럴 것이 탄소중립선언이라는 유럽 선진국형 비전을 제시하는데 대통령의 표정 자체가 꽤 심각하고 무거워 보여 이 흑백 화면이 연출인지 아니면 방송사고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날 연설이 연출된 장면으로서 “컬러 영상의 1/4 수준 데이터를 소모하는 흑백 화면을 통해 디지털 탄소 발자국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는 차원”이었다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의도와 지시에 따른 것임을 KBS 공영노조의 폭로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효과가 있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방송 당시 대통령의 경직된 표정을 극적으로 연출한 흑백화면은 저탄소 환경문제에 경각심을 갖기보다 문 대통령이 마주하고 있는 음울한 현실을 먼저 떠올리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하는 정부여당의 코미디 같은 부동산 정책과 윤석열 검찰총장 제거를 위해 폭주하는 여권의 정치공작. 그리고 나꼼수 등 정권을 세운 공신들의 내부 분열과 암투, 차츰 드러나는 K방역의 실체 등. 그 여파로 30%대까지 떨어진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 추락이란 현실을 극적으로 강조한 효과가 바로 어두운 흑백 화면이었다.

탁 행정관 기대와 달리 흑백은 여권의 거침없는 폭주 그 정점에 선 문 대통령의 완고함과 불통, 독재적 이미지를 강화하는데 소모됐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뭔가 괴기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럽다고나 할까. 연출 능력이 탁월하다는 탁 행정관이 만일 현 시국에 대해 좀 더 고민했더라면 오히려 흑백 화면은 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중의 일반 여론도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KBS가 청와대의 연설을 중계하기보다 화면 구성까지 청와대 지침에 따랐다는 공영노조의 폭로를 전한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이 역효과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들로 보인다.

“진짜 별쑈를 다한다 생각했는데 탄소 발생줄인다고 흑백촬영했다고 하던데 탁현민 대XX서 나온 아이디어였네요.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서 탄소를 없앤다고 공언을 하면 뭘로 어떻게 먹고살겠다는건지.” “XXX 장례방송인 듯” “어제 내 티비가 고장난줄 알았다. 뜬금없이 흑백으로 나와서....그런데 자세히 보니 티비가 고장난건 아니더라. 장난하심? 적당히 좀 해라.” “상복입은 영정 사진 같더구만.” “문XX 앞날은 흑백이 아니라 암흑 그 자체일거다” 물론 소위 대깨문이라 불리는 정권의 극렬 지지층들은 방송연설이 흑백이든 컬러이든 대통령의 말씀이라면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라는 이 문장 하나면 충분할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문 대통령이 끝까지 믿는 수호신 아니겠나. 그러나 모택동의 홍위병이나 나치의 유겐트처럼 악명을 떨치던 권력의 수호신들도 때가 되면 패망하고 사라졌다.

낡은 흑백 사진이 인류 역사의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탁현민, KBS 모두 방송법 위반 혐의

탁현민 행정관의 탄소중립 흑백 TV쇼는 이러한 공포를 우리의 기억에서 끄집어내 다시 소환했을 뿐이다. 공영노조가 괜히 “괴벨스의 선동선전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또 한 가지 지적해둘 게 있다. 탁현민 행정관과 양승동 사장의 KBS는 청와대가 지시한게 아니라 사전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며 “이번 탄소 중립 선언은 청와대 기획, 청와대 연출, KBS 제작대행, KBS 송출의 역할 분담에 따라 제작됐다”며 “KBS 역할은 외주제작사만도 못한, 인력공급 대행 및 송출업체로 전락했다”는 공영노조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흑백화면에 어떠한 컬러 자막이나 로고 삽입 불허” “탁현민 의전비서관 요청사항이며, 행사2시간 전까지 엠바고(필수)”와 같은 청와대 발 지시 의혹에 분명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KBS 내부의 누가 청와대 지시를 받았는지 조사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 때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보도국장에 전화를 걸어 세월호 보도에 있어 편집권에 개입했다는 죄목으로 올해 초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정상적인 공보활동 과정에서 일부 청탁성 발언을 했다고 이걸 법적 영역으로 끌고 가 유죄판결을 받게 만들었다. 이런 식의 매우 기계적이고 경직된 판례를 만드는 게 언론자유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필자가 수차례 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잣대는 같아야 한다. 청와대와 KBS가 사전협의 했으니 문제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럼 사전협의를 하다 들키거나 문제가 생기면 불법이고 들키지 않거나 문제가 없으면 불법이 아니란 말인가.

방송법 제4조 등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탁현민 비서관과 KBS도 모두 불법의 영역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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