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서적] 심아진의 짦은 소설 "무관심 연습"
[신간서적] 심아진의 짦은 소설 "무관심 연습"
  • 신성대 기자
    신성대 기자
  • 승인 2020.11.1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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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의 내면, 무수한 찰나의 표정을 밝히는 짧고 깊은 이야기

 

무관심 연습 ㅣ 심아진 지음 ㅣ 나무옆의 자

 

“내가 사랑하는 문학은, 나만 옳고 나만 소중한 치졸한 그릇이 아니다.

과도한 자기애, 자기연민을 우주 밖으로 던져버린 후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젖과 꿀을 나눠주는 호방한 그릇이다.”

(‘작가의 말’에서)

[신성대 기자] 본지는 유망 작가의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코너를 마련했다. 심아진 작가의 무관심 연습을 소개한다. 

소설이 주는 힘은 여러 갈래다. 그러면서 그 속에는 비밀처럼 숨겨진 온갖 기운들이 펄떡거린다. 소설의 장치는 독자들이 해제 시키기도 하고 봉인 시키기도 한다.  심아진의 신간 소설에 문학평론가 임정연은 추천사에서 소설 <무관심 연습>은 “기발하다가 아찔하다, 과감하다가 집요하다, 날카롭다가 서늘하다, 쓸쓸하다가 아득하다. 호모 라크리모수스(Homo Lacrimosus)와 호모 리덴스(Homo Ridens), 그 사이에서 무수히 스러져간 찰나의 표정들이 심아진의 격조 있는 문장을 통과하면 제 스스로 의연해진다. 심아진처럼 품 넓은 시야를 가졌거나 심아진처럼 균형 잡힌 호흡을 가지고도 심아진만큼 이야기를 짧고 깊게 벼리는 이를 보지 못했다”며 “그러니 이 잔향 짙은 이야기들이 짧은 소설이든 ‘그 무엇이든’, 기어이 읽지 않고서야 배길 수 있으랴.”는 극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날렵한 감각이 우아하게 착지한 스물여덟 편의 이야기

199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모순적이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부딪히고 견뎌내며 길을 찾는 인물들을 섬세하고 집요하게 그려온 작가 심아진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짧은 소설집이다. 등단 초기 10년을 해외 이주 등으로 독자 곁에서 떠나 있었던 작가는 그 시간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지난 10년간 세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펴내고 사이사이 동료 작가들과 함께하는 작품집에도 신작을 발표하며 부지런히 독자를 만났다. 『무관심 연습』은 세계의 이면과 인간 심리의 뒤편을 탐구해온 작가의 날렵한 감각이 짧은 형식과 우아하게 결합한 어쩌면 가장 심아진다운 소설집이라 하겠다.

모르는 만남

1부 ‘모르는 만남’에서는 낯선 세계, 모르는 존재와의 대면을 각기 다른 스타일로 전개한다. 상처를 안고 스스로 섬에 들어가 고립된 여성이 뒤뜰에 나타난 여우가 다시 찾아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여우」, 짖는 개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하지만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이방인 여자를 그린 「산책」은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이국의 장소가 배경이다.

쉬운 어긋남

2부 ‘쉬운 어긋남’에서는 친구, 연인, 부부 사이에 나타나는 균열과 어긋남의 지점들을 포착한다. 균열은 끝내 상실로 이어지고 치명적인 파국을 불러오기도 한다. 프러포즈를 받은 호텔에서 남편의 배신을 목격하는 방식으로 과거 몸담았던 도시와 재회하는 「우연의 도시」, 자상함이라는 탈을 쓴 지배와 통제를 다룬 「도끼는 도끼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소유욕을 보여주는 「비밀」, 사랑이 착착 치워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남자의 망연함을 그린 「징후」 등이 수록되었다. 「사과」에서는 단 한 번의 어긋남으로 인생 전체가 흩어져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아프게 묘사한다.

따가운 얽힘

3부 ‘따가운 얽힘’은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노화와 질병과 죽음의 문제와 돌봄을 주고받는 가족에 주목한다. 몸이 불편한 언니에게 거짓말을 가득 담아 외출 보고를 하는 동생과 그 말을 들으며 찡그렸다 웃었다 하는 언니의 하루를 따라가는 「두 자매」, 치매에 걸린 큰언니와 그를 돌보는 두 동생, 한집에서 의좋게 사는 60대의 그들에게 차례로 ‘그 병’이 닥친다는 기막힌 사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세 자매」, 남편이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줄도 모르고 병상에 누워 간병인이 읽어주는 아들의 문자를 듣는 아내의 현실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왕 놀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딸의 고뇌를 인간을 명명하는 수많은 말의 무용함으로 표현한 「호모 그 무엇이든」 등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가족이야말로 가장 따갑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임을 새삼스럽게 일깨운다.

희미한 열림

4부 ‘희미한 열림’은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는 모종의 ‘간격’이 줄어들거나 허물어지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상황을 입주 도우미의 시선으로 위트 있게 그린 「낙차」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의 엄연한 격차를 보여주면서도 뜻밖의 교감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엉뚱한 사건이 때로 가슴 뭉클한 연대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랍스터 도난 사건」).

그러나 그 열림의 가능성은 또 다른 벽에 부딪혀 언제든 멈출 수 있다. 수년 만에 우연히 만난 옛 친구를 다시 보기 위해 지리산 골짜기로 다른 세 친구와 함께 떠난 ‘나’는 길을 헤매다 결국 포기하고 친구가 보고 싶다는 사실마저 부정한다.

얕은 던져짐

5부 ‘얕은 던져짐’은 일상의 바깥, 경계 너머를 상상하는 작품들이다. 여러 생명체의 몸속을 드나들면서 죽을 위기를 넘겨가며 번식하고 알을 낳는 간질(肝蛭, 간디스토마)의 한살이(「그저 우연일 뿐이겠는가」), 지루한 연대기적 시간을 끊어내고 기회의 세계로 뛰어든 개와 그 개를 보아온 한 사람(「개와 사람」), 흥 많고 재주 많은 두두리(도깨비)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려는 역사적 모의(「모의」) 등의 이야기는 답답한 현실에 묶여 살아가는 독자에게 위로와 해방감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우리를 위한 공간을 더욱 넓혀줄 ‘무관심 연습’

작가 심아진은 짧은 분량 안에 삶의 속내를 날카롭게 잡아내는 이 장르의 고수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서사는 문학평론가 임정연의 표현대로 “기발하다가 아찔하다, 과감하다가 집요하다, 날카롭다가 서늘하다, 쓸쓸하다가 아득하다.” 작가는 이 작품들을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며 썼다. 그래서 “나를 덜 보고 덜 찾고 덜 만지”는 ‘무관심 연습’을 하며 우리를 위한 공간을 더 넓히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문학을 행하한 일이기도 하다.

한권의 소설을 잉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의 민낯에 생채기를 냈을까? 어쩌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면을 삭여내고 또 삭여내는 수도승처럼 다듬고 다듬어 나를 찾아가는 신선한 작품 하나를 만난 듯 하다. 심아진 작가의 말처럼 “나는 아직도 혁명을 꿈꾼다. 젊어서라거나 지나치게 철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내 혁명은 바깥이 아니라 안을 대상으로 하니까. 언제나 나를 전복시키는 게 유일한 목표”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무관심을 연습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삶은 연습이다 아니 연습할 수 없는 실제이고 삭막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작가는”내게 무관심하면, 의도적으로 나를 외면하면 우리를 위한 공간이 분명 더 생기리라 믿는다.“며 ”나를 포함한 우리이니만큼 별반 손해 볼 것도 없다. 그래서 계속 무관심을 연습할 생각이다. 사소한 나, 나, 나를 잠시만 묶어두면 더 큰 나, 자유로운 나, 혁명에 성공한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내밀 듯 소설 한권을 살포시 건넨다.

▶지은이 심아진은 1999년 『21세기 문학』에 중편소설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가벼운 인사」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었다. 소설집 『숨을 쉬다』, 『그만, 뛰어내리다』, 『여우』, 장편소설 『어쩌면, 진심입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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