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칼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전정희 칼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 전정희 소설가
    전정희 소설가
  • 승인 2020.10.0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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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

고향은늘
가난하게 돌아오는 그로 하여 좋다.
지닌 것 없이
혼자 걸어가는
들길의 의미.

백지에다 한 가닥
선을 그어 보아라.
백지에 가득 차는
선의 의미…….
아 내가 모르는 것을
니가 모르는 그 절망을
비로소 무엇인가 깨닫는 심정이
왜 이처럼 가볍고 슬픈가.

편히 쉰다는 것
누워서 높이 울어 흡족한
꽃그늘
그 무한한 안정에 싸여
들길을 간다.

 

<들길>의 저자인 이형기 시인은 고향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향은 어머니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우리가 삶에 지쳤을 때, 희망을 잃어버렸을 때, 외로울 때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바로 어머니가 있는 고향이다.

시인은 늘 가진 것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다 텅 빈 들길을 보고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신의 삶도 들길처럼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들길은 도시의 길처럼 화려하지 않으나 여유가 있고 고향을 찾는 이를 반겨 주며 또한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그래서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은 끈 떨어진 연처럼 이리저리 갈 곳을 몰라 헤매며 공허함을 달래기 힘든 것이다.

곧 추석이다. 해마다 우리나라 명절에 이동하는 인구는 거의 3,500만 명 이상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간 도심은 갑자기 텅 비어버린다. 물론 추석 당일 차례를 마친 후에는 다시 고속도로가 돌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몸살을 앓지만…….

그러나 코로나19 재확산이 정점에 이르면서 이번 추석 연휴(9월 30일~10월 4일)에는 ‘민족 대이동’을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소 꺾였지만, 아직 안심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추석 연휴 때 자발적으로 이동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번 추석 연휴를 없애 달라’는 게시글까지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래도 인구 이동이 줄면 코로나 확신을 막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추석은 설,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절 중 하나다. 추석이 되면 한더위도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든다. 넓은 들판에는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하다. 그래서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말이 전하고 있는 듯하다.

원래 명절에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일가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코로나 덕에 이번 명절은 가급적 만남을 자제하고 있으니 코로나가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많이 바꾸어 놓은 것 같아 씁쓸하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꼭 인사를 드려야 할 곳 몇 군데를 찾았다. 가는 도중 하늘을 쳐다보니 바야흐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실감났다. 들판에는 누렇게 벼가 익어가고, 길옆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지나가는 사람을 유혹하고 있다. 인사고 뭐고 다 팽개치고 이형기 시인의 <들길>을 읊으며 마냥 들길을 걷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풍요로워야 할 계절에 시름이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필자의 동네만 해도 문을 닫은 상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걱정이 앞선다.

이번 추석에도 둥근달은 어김없이 떠오를 것이다. 우리나라의 명절은 서양과 달리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날이 많고 특히 보름달과 연관이 많다. 그중에서도 음력 팔월의 보름달은 일 년 중 가장 밝은 달이 뜬다.

추석날 달을 바라보며 어서 이 몹쓸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두 손 모아 빌어야겠다. 그래서 내년 추석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평화로운 추석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전정희 소설가 / 저서 하얀민들레, 묵호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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