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영결식 엄수…영웅의 마지막 배웅
백선엽 영결식 엄수…영웅의 마지막 배웅
  • 전호일 기자
    전호일 기자
  • 승인 2020.07.1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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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故 백선엽 장군 '현충원 안장 금지' 가처분 각하

[전호일 기자]'6·25 전쟁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는 고(故) 백선엽 장군의 영결식이 오늘(15일) 엄수됐다.

오늘 오전 7시 30분쯤 서울아산병원 영결식장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서욱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유가족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 로버트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역대 육군참모총장, 보훈단체 관계자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국회 국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 등도 자리했다.

군악대의 비장한 연주와 함께 육군 의장대원과 미군이 위패, 영정, 고인이 생전에 받았던 태극무공훈장과 미국 은성무공훈장, 태극기로 감싼 백 장군 관을 들고 영결식장으로 들어왔다.

장의위원장인 서 총장은 조사에서 "작년 5월 장군님을 예방했을 때 더 강한 육군을 만들어 달라시던 그 말씀은 아직도 제 귓가에 맴돌고 있다"며 "장군님이 사랑하는 전우들과 함께 피와 땀과 눈물로 지킨 대한민국을 굳건하게 지켜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1사단장을 지낸 송영근 예비역 중장은 추도사에서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 승리를 이끌었던 고인의 공로를 상기하며 "당시 패배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고 저나 여러분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송 중장은 추도사에서 "지금도 국가장으로 동작동 서울현충원에 모시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서 추도사를 한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고인을 "철통같은 동맹의 창시자 중 한 분"으로 평가하며 "한국전쟁 지상 전투의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암울한 순간에서 유엔군 전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국군을 이끌었고, 한국군의 기초를 다진 분"이라고 추모했다.

그는 "전우여, 안녕히 가시라(Farewell, friend)"는 인사와 함께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를 대표해 삼가 조의를 표했다.

역대 연합 사령관들도 추모 영상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존 틸럴리 전 사령관은 고인이 "한미동맹을 지원하고 장병들을 사랑하는 군인 중의 군인이었다"며 "백선엽 대장의 전설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터 샤프, 제임스 셔먼, 빈센트 브룩스 등 다른 전임 사령관들도 잇따라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백 장군 장남인 백남혁(67)씨는 "아버지는 모든 전우의 이름을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다"며 "이제 아버지의 꿈이 이뤄졌다. 저 하늘에서 모든 전우와 만나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인 노인숙 여사를 시작으로 주요 참석자들의 헌화 및 분향이 끝난 뒤 영구차는 봉송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장식이 열리는 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한 보수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이 영결식장 주변에 모였고, 영결식을 생중계하려는 유튜버들도 몰렸다.

한편 고(故)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 역시 ‘퇴짜’를 맞았다. ‘과는 과대로, 공은 공대로 공정하게 평가돼야 한다’는 사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전지법 행정1부(부장판사 이영화)는 15일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가 정부를 상대로 “백선엽 장군의 대전현충원 안장을 금지해달라”며 낸 가처분신청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제기의 법률적 요건 자체를 갖추지 못해 더 이상 심리할 것도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처분을 뜻한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민사 가처분 형태로 행정행위 금지를 구할 수 없고,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의 경우 본안소송이 제기된 상태여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그렇지 못해 부적법하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백 장군은 정부 계획대로 대전현충원에 모셔져야 한다는 의미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가 가처분신청을 낸 것은 백 장군이 20대의 초급장교 시절이던 1943∼1945년 일본 괴뢰국 만주국의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하며 항일독립군과 싸웠다는 이유에서다. 즉, ‘친일파’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선 이견도 제기된다. 간도특설대의 원래 임무가 무엇이든 백 장군이 만주군에 몸 담고 있던 시절엔 항일독립군과 싸울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는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193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만주는 일본의 강력한 관동군 통제 아래에 들어선다”며 “따라서 흔히 말하는 무장 항일은 거의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소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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